비 내리는 봄날 늦은 오후 구형 프린스는 통영 캠퍼스로 달린다 차창을 스치는 환한 슬픈 벚꽃들 아랑곳하지 않고 쭉 뻗은 고성 가도의 가등은 아직 파란 눈을 켜고 있다-이상옥의 디카시 <고성 가도 固城 街道>이 디카시는 2004년 작품이고, 이것을 표제로 최초의 디카시집 <고성 가도 固城 街道>를 출간했다.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10년 전 2004년 봄날 디카시 '고성 가도'를 썼던 그곳을 지난 주말 자동차로 달리며 스마트폰으로 찍어보았다.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으나 그 당시 봄날의 풍경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나는 지난해부터 고성 가도로 돌아왔다. 고성 시골집을 리모델링하고 그때처럼 다시 창원으로 출퇴근한다. 2014년 올해는 내가 디카시라는 신조어로 디카시 운동을 한 지 10년이다. 디카시 10주년을 맞은 것이다.
올해는 디카시로는 큰 획을 긋는 해가 될 것 같다. 디카시 10주년을 맞는 뜻깊은 올해, 지금 고성문화원 부설 디카시연구소 창립을 추진 중이다. 이미 이 건은 고성문화원 총회에서 도충홍 고성문화원장이 올해의 사업으로 발표를 했다. 며칠 전에는 고성문화원 이사회에서 통과되어 디카시연구소 창립 준비위원회도 구성되어 오는 24일에는 준비위 1차 회의를 열기로 확정했다.
5월경 고성문화원 부설 디카시연구소 개소를 목표로 부지런히 창립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동안 디카시 관련 사업들은 디카시문화콘텐츠연구회가 싱크탱크가 되어 앞장 서서 진행해 왔으나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많았다. 물론 인터넷 카페 디카시동인회가 든든한 우군이 되어 주어 그간 많은 사업들을 할 수 있었다.
디카시는 이제 대내외적으로 든든한 조직을 갖출 만큼 인프라도 구축되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연구소 같은 걸 만들어서 전문연구원도 두고 해서 디카시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의 장르로 정착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고성지역의 첨단 문화자원을 넘어 한류로서의 문화콘텐츠화로 글로벌화하는 것이다.
가칭 디카시연구소는 '문화자원 정립을 위한 공동 활동', '학술대회 개최', '소식지 발행', '문화 강좌', '해외 교류' 등 기타 연구소의 목적에 부합되는 다양한 사업들을 할 예정으로, 이에 걸맞는 인적 네트워크 구성을 준비 중이다. 비록 변방인 경남 고성이 디카시의 발원지이지만, 디카시에 있어서는 고성이 중심이다. 그래서 앞으로 서울지소, 경기지소, 해외지소도 둘 요량의 큰 포부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해외교류 사업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 '하이쿠'와의 교류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 둘은 경물의 순간 포착과 짧은 압축된 언술로 드러나는 소통의 미의식을 공유하고 있기에 디카시와 하이쿠의 교류에 기대가 큰 것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생각하고 있고, 미국, 유럽 등으로 뻗칠 것이다. 그간 이런 여러 가지 좋은 안들이 있었지만 디카시문화콘텐츠연구회라는 개인 연구단체로서는 이런 큰일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디카시연구소는 사업체와의 산연협력, 대학과 학연협력 등 공동 프로젝트 사업도 기획하여 연구과제를 따와 고성문화원 부설 디카시연구소가 새벽까지 불을 꺼지 않는, 무늬만의 연구소가 아닌 역동적인 꿈을 현실화시키는 연구소가 될 것이다.
지난 10주 전 달렸던 그 고성 가도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위와 같은 구상을 했다. 너무 과로 했는지 지난 주말부터 지독한 감기몸살로 밤마다 끙끙 앓았다. 지금은 좀 몸이 나아지는 느낌이다.
지난 일요일 집에 사두었던 지게를 지고 앞산에 가서 쓰러져 있는 나무를 잘라 한 짐 지고 집에 와서 내 창고서재 나무난로에 불을 지피며 그 뜨거운 화력을 온몸으로 받아 들였다. 그 뜨거움으로 나는 디카시연구소 창립 작업에 더욱 매진하려 마음을 다져보았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