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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씨앗이 말라버렸어 [2014년 2월 17일 월요일]

씨를 뿌린지 5일만에 여기 저기에서 떡잎이 올라온다.
▲ 고추씨가 싹을 틔우다 씨를 뿌린지 5일만에 여기 저기에서 떡잎이 올라온다.
ⓒ 박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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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면티에 싸서 바닥에 두고 하루 밤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만져보았더니 뽀송뽀송하다. 거실의 따뜻한 기운 때문에 물이 모두 증발해서 고추씨가 말라버렸다. 그 안에 들어있던 씨앗들은 처음에 불리지 않았던 원래 상태로 돌아가 버린 듯하다.  '그래, 처음하는 일인데 아무 일 없이 진행되는 것이 이상하지' 속으로 되뇌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다리미질 할 때 쓰는 스프레이에 물을 담아서 옷 위에 충분히 뿌려주었다. 두 시간 정도 지나니 다시 또 물이 증발해 버린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물을 뿌려 주었지만 20%도 안 되는 거실의 습도 때문에 금방 말라 버리고 만다. 2, 3일이면 하얀 실뿌리가 나온다고 하는데, 나흘이 지나도록 변화가 없다. 씨앗은 살짝 누르면 부서질 정도로 말라 있었다.

안 되겠다. 스프레이로 점잖게 뿌려주는 물로는 잠들어 있는 씨앗들을 깨울 수 없는 모양이다. 공기로 한 대접의 미지근한 물을 받아다가 두 개의 옷 위에 흥건하게 뿌려주었다. 서너 시간 동안 충분히 젖어있다. 그래 이런 식으로 해야 해. 그렇게 또 이틀을 보냈다.

2월 17일의 아침. 이번에는 물이 너무 많아 씨앗이 썩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어찌되었든 흙 속에 씨앗들을 묻어줘야겠다. 준비해 둔 모판 위에 원예용 상토(농협에서 구입 5,500원)를 절반 정도 펴서 깔고 스프레이로 물 반병을 뿌려서 흙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다. 그 위에 씨앗을 뿌렸다. 심각한 기후 조건 속에서도 몇몇 고추씨앗에서 2, 3 mm의 하얀 실뿌리가 뻗어 나와 있었다. 아내와 함께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역시 식물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살려는 의지가 강하다. 악조건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최대한 씨앗을 골고루 뿌려서 흙이 몸에 닿도록 한 뒤에 다시 상토를 덮고 물 반병을 더 뿌려주었다. 그리고 흙물이 거실바닥으로 빠지지 않도록 스티로폼 상자 속에 씨앗 상자를 아늑하게 자리 잡아 주었다. 이제 물 관리 하는 일만 남았는데, 농사 준비를 위해 음성의 무일농원으로 가야 한다. 무일(기자의 호)이 없는 동안에는 아내가 물 관리를 해 줄 것이다. 아파트를 육묘장으로 만들겠다는 무일의 생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오로지 씨앗들의 생명력에 기대를 건다.

고추씨가 떡잎을 물고 있다 [2014년 3월 2일 일요일 - 파종 15일째]

역시 식물은 여리지만 강했다. 초보 농부의 어설픈 보살핌에 곰팡이나 피우고 썩을 줄 알았더니 흙을 슬며시 들어 올리면서 떡잎을 조금씩 내밀기 시작한다. 처음 한 두 개가 연녹색의 머리를 드러내더니 금방 온 모판을 뒤덮어 버린다. 2월 17일에 씨를 뿌리고 15일이 지나자 떡잎 두 장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줄기의 길이는 4cm ~ 5cm에 달할 정도로 쑥쑥 자란다. 매우 드물지만, 떡잎 두 장 사이에서 본잎 한 장이 올라오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떡잎 사이에 고추씨를 물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 신비롭다.

씨앗은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몸 안에서 뿌리도 내고 줄기도 내고 떡잎도 낸다. 사랑이 깊어서인지 훌쩍 자란 새싹에게서도 떠나지 못하고 떡잎들을 물고 있다. 씨앗들의 최종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좀 더 지켜 보아야겠다.
▲ 떡잎을 물고 있는 고추 씨앗 씨앗은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몸 안에서 뿌리도 내고 줄기도 내고 떡잎도 낸다. 사랑이 깊어서인지 훌쩍 자란 새싹에게서도 떠나지 못하고 떡잎들을 물고 있다. 씨앗들의 최종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좀 더 지켜 보아야겠다.
ⓒ 박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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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속에서 자라 나온 떡잎이 씨앗을 벗어나 커가는 것인데, 마치 씨앗이 떡잎을 보내지 않으려고 물고 있는 것 같다. 뿌리도 씨앗에서 나왔을 텐데, 그 작은 뿌리가 씨앗은 물론 줄기와 떡잎까지 쑥쑥 밀어 올리고 있다. 거실의 유리창을 통해 남쪽에서 빛을 받고 있으니 약 5도 정도 몸을 기울여 햇빛을 받으려 애쓰고 있다. 그 각도가 거의 일정한 것도 신기하다.

곧게 자라도 햇볕은 골고루 충분하게 받을 수 있는데, 굳이 해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받아야겠다는 식물들의 강인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 해를 향해 5도 기울어진 새싹들 곧게 자라도 햇볕은 골고루 충분하게 받을 수 있는데, 굳이 해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받아야겠다는 식물들의 강인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 박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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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커버린 형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크고 있는 작은 떡잎(1~2cm)들도 보인다. 아직까지는 수돗물 말고는 아무 것도 뿌린 것이 없다. 다음 주에는 EM 용액(주민자치센터에서 무료로 공급)이라도 받아다가 영양제로 뿌릴 수 있도록 공부해 두어야겠다. 아파트는 밝아서 밤에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신문지를 덮어서 완전히 깜깜하게 해 주었다. 편히 잘 자라.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다음 블로그 무일농원에 이 기사의 초안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태그:#무일, #무일농원, #아파트육묘장, #고추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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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없이 살아도 나태하지 않는다. 무일입니다. 과학을 공부하고, 시도 쓰며, 몸을 쓰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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