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직장으로 학교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 갔다와" 하면서 떠나 보내는 생활을 한 지 3주다. 맞벌이를 하던 때 아내가 "내가 아침에 얼마나 바쁜지 알아?"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제는 당당히 "그래 잘 알아"라고 대답할 수 있다.
아이들 밥 먹이기, 세수하기, 책가방챙기기, 옷고르기, 머리묶기(배우기 포기함), 그리고 등교직전 간식먹이기 등을 매일 한다. 오전 6시40분에 집을 나서는 아내 때문에 우리가족은 6시면 아침을 먹는다. 그래서 등교직전 간식을 꼭 먹여야 한다.
아내의 특명이다. 아이들은 내말보다 맞벌이 하던때 세 아이들 키웠던 장모의 말을 더 잘 듣는다. 혼자서 아침을 감당하려 했지만 아침시간만큼은 장모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많이 익숙해졌는지 '함께 살아도 어떨까'라고 생각이 들곤한다.
20일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마음에 드는 우산을 차지하기 위해 둘째와 막내간의 치열한 갈등이 있었지만 무사히 해결됐다. 5식구가 밥 먹고 남긴 설거지, 어질어질한 거실, 이것저것 정리를 하였다. 금연상담을 하는 날이다. 생략했던 세수하기를 실시하고 아이패드와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다.
보건소에서 금연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막내가 돌아오는 4시까지만 집으로 가면 되는데~~ 어딜 가 볼까'하는 순간 1009번 좌석버스가 저 멀리 보였다. 교통카드로 1700원을 결재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김해공항을 거쳐 종점인 가덕도 선창마을까지 가는 동안 평균 승차인원은 4명이었다.
11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선창마을에 두 사람이 내렸다. 갈맷길의 안내판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요즘은 어딜가나 길들이 너무 많다. 사람의 흔적이 너무 느껴지는 갈맷길을 걷으며 예전의 자연스럽던 길이 더 그리웠다.
연대봉에 등산하려 온 아주머니 한팀이 비 때문인지 일정을 취소하고 가덕도를 떠나고 있었다. 그 후로는 이곳을 떠날때까지 외지인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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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과 말걸기에 성공혼자 길을 걷다 어구를 손길하시는 노부부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말걸기에 성공했다. "같이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너무 좋습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어구를 손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물어보았다.
그렇게 성공한 말걸기는 집 한쪽에 자전거를 무상으로 빌리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자전차 타도 되는데 조심해야 돼. 젊은 양반, 타보면 뭘 조심해야 하는지 알거요"라고 말한다. 비도 그치고 간간히 햇살도 구름사이을 비집고 내려오고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자전거의 단 한가지 단점이 있기는 했다. 브레이크가 거의 듣지 않았다. 멈추기 위해서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멈추었다가 다시 타야되는 불편이 있었다.
낯선 만남은 계속되었고 사진찍기도 하였다. 가덕기도원을 끝으로 4시에 돌아올 막내의 간식을 챙기기기 위해서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신델렐라가 파티에서 돌아갈때 아쉬움이 지금같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이 여행의 경험을 추억으로 남기는데 한 몫 하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 간식은 고구마랑 자두효소에 물을 탄 음료수이다. 며칠전 컵라면으로 간식을 대체하다가 아내에게 발각되어 지적받은 적이 있다. 오늘은 뭘 먹지 하는 주부들의 고민이 어느듯 나에게도 찾아와 있엇다. 실직후 처음한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경비는 왕복차비 3400원이다. 2014년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은게 행운인것만 같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