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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초등학교 시절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청소년 드라마가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탤런트 조경환씨가 무서우면서도 사랑이 넘치는 우리네 선생님의 모습을 잘 연기한 드라마로 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호랑이선생님이 현실에 존재한다. 바로 (사)한국과학기술캠프협회 성수목 회장이다. 풍채 또한 호랑이 선생님 역할을 했던 조경환씨와 비슷하다. 그는 회장이라는 호칭보다는 호랑이교장으로 통한다.

성수목 회장은 우리 청소년들이 어려서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고 다양한 과학체험 및 진로체험을 통해 큰 꿈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호랑이교장' 직업·진로 체험프로그램이다. 어떻게 보면 최근 우리 교육현장의 화두가 되고 있는 진로교육의 선구자인 셈이다.

지역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고 있는 '호랑이교장' 프로그램

'호랑이교장' 프로그램은 2009년 전남 해남군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으로 확대 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보건복지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가 후원하고 (사)한국과학기술캠프협회가 주관하고 있으며, 1년 단위 프로그램으로 매월 1회씩 연 12회의 다양한 직업·진로체험을 할 수 있다.

전직 대학입학사정관으로서 진로교육에 관심이 많은 기자는 지난 22일부터 23일까지 목포시·해남군 청소년 110명을 상대로 진행된 '호랑이교장'프로그램에 직접 동행하여 이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의 진로교육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취재해 보았다.

'호랑이교장'프로그램은 매월 1박2일 전국을 돌며 체험을 하기 때문에 기본 경비가 많이 들어간다. 소득수준에 따라 자부담이 있긴 하지만 거의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 선발에 있어서도 그 기준이 명확하고 공정해야 한다.

워낙 좋은 프로그램이어서 인지 공고가 나간 지 하루 만에 신청자가 정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기자도 초등학교 자녀가 있기에 신청서를 냈었지만 안타깝게도 탈락하였다. 하지만 공정한 선발과정을 보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다만 더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만을 가져 보았다.

새벽밥 먹고 나왔지만 피곤하지 않아요!

한국잡월들에서 각 자 원하는 직업에 대한 체험을 하고 왔다. 아직은 첫 날이라 서먹서먹하다. 목포에도 이런 체험장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한국잡월드 방문 한국잡월들에서 각 자 원하는 직업에 대한 체험을 하고 왔다. 아직은 첫 날이라 서먹서먹하다. 목포에도 이런 체험장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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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남단 해남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새벽밥을 먹고 출발해도 점심이나 돼야 서울에도착할 수 있다. 해남에선 오전 7시에 출발하고 8시 경에 목포에서 합류하여 전세버스 3대로 대 장정의 길을 올랐다.

서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서먹서먹하기는 인솔교사나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기자도 인솔에 동참 하여 중학교 1, 2학년 10명을 맡게 되었다. 병중에서도 가장 고치기 힘든 병이 바로 중2병이라고 한다. 아마 일선 교육현장에 근무하는 중학교 선생님들은 이 말 뜻을 알 것이다.

우리 조 아이들은 영락없이 도축장에 끌려온 가축의 모습이다. 부모의 욕심에 의해 소중한 주말을 빼앗겼다는 불만이 얼굴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얘들을 어떻게 이틀이나 데리고 다녀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촌놈들이 맨 처음 접수한 곳은 '한국 잡 월드'였다. 지역 아이들에겐 직업체험이라야 기껏해야 공공시설 방문이나 아니면 대학교 방문이 전부다. 이런 아이들에게 '한국 잡 월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자는 먼저 이런 좋은 시설은 왜 모두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지 지역민으로서 안타까웠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초등학생들은 어린이관에서 중학생들은 청소년관에서 각자 원하는 직업체험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조 아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곳은 법원 체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검사와 의사였다. 편향된 직업선호 현상만큼이나 체험관 부스마다 참여자들의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40여개가 넘는 청소년 관 부스엔  한 명의 참여자가 없는 곳도 많았다. 

약간 썰렁한 청소년관과는 달리 어린이관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마치 인형나라에 온 듯하다. 요리사복장을 한 아이들, 수술실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아이들, 소방관 복장 아이들 등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웃고 떠들고 부모들은 연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새벽밥 먹고 4시간을 달려와서 피곤할 법도 한데 촌놈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 나오면 어른스러워 지는 아이들

어느새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게임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 밤 이녀석들과 같이 자야하는 기자는 걱정이 앞선다. 이녀석들아 어서 자자!
▲ 파자마 파티 중? 어느새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게임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 밤 이녀석들과 같이 자야하는 기자는 걱정이 앞선다. 이녀석들아 어서 자자!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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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밤 8시가 넘었다. 한 방에 예닐곱 명씩 배정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집에서는 한 없이 어린양 부렸을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도 스스로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는 다는 것이다.

막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대부분의 부모들은 알 것이다. 물기도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그대로 두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둘러 앉아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보니 기자 또한 초등학교 5학년이나 된 아들을 너무 어린애 취급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시 30분에 소등을 하기로 하였지만 말이 통할 아이들이 아니었다. 각 방에 배치된 인솔교사들이 아무리 소리쳐 봐야 얘들의 귀에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베게 싸움, 동물게임등 아랫방이 무너질 듯 뛰어 다닌다. 아파트에선 층간소음 때문에 상상도 못했을 행동이지만 아랫방도 같은 처지일 것이니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에 어떻게 합격했어요?

12시가 넘어서 겨우 잠든 아이들이 일찍도 일어났다. 오히려 인솔교사들이 늑장이다. 오전 7시 30분 식당 문이 열리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은 KBS와 서울대학교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목포에도 KBS가 있지만 역시 서울 KBS가 짱입니다! 그런데 연예인이 없기는 마찬가지네요!
▲ KBS 앞에서 단체 사진 한 컷! 목포에도 KBS가 있지만 역시 서울 KBS가 짱입니다! 그런데 연예인이 없기는 마찬가지네요!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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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서울대보다는 KBS 방문에 더 기대가 컸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연예인에게 싸인을 받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방송국에 가면 무조건 연예인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에게 차마 일요일엔 연예인들도 쉰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연예인은 비록 만날 수 없었지만 방송국 체험은 아이들은 신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잘 꾸며진 체험관을 돌면서 아나운서도 되어 보고 만화 더빙도 해 보았다. 특히 카메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미래 방송인으로서의 꿈을 키웠을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점심은 서울대 학생식당에서 먹기로 하였다. 이 번 서울대 방문 임무는 각자 기자가 되어 서울대 학생을 인터뷰 하는 것이었다. 직업 기자들도 인터뷰 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데 아이들이 과연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까 걱정이 앞섰지만 이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대 언니 오빠들과 인터뷰 하고 즐거워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밝다.
▲ 우리가 인터뷰 해냈다! 서울대 언니 오빠들과 인터뷰 하고 즐거워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밝다.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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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울대 캠퍼스를 누비면서 인터뷰 사냥을 나간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의 모습이었다. 무서운 호랑이 교장선생님의 특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혹 쌀쌀맞게 아이들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깍쟁이 대학생들도 있었지만 멀리 목포에서 왔다고 하자 흔쾌히 아이들의 질문에 응해주는 서울대생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되었다.

무릎까지 꿇고 친절하게 서울대 비법을 소개해 준 서울대 형 너무 고맙습니다.
▲ 친절한 서울대 형 무릎까지 꿇고 친절하게 서울대 비법을 소개해 준 서울대 형 너무 고맙습니다.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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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이 오히려 숫기가 없었다. 자기들 끼리 있을 때는 예쁜 누나와 인터뷰 하고 싶다더니 막상 현장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보다 못한 기자가 나섰다. 그러나 예쁜 여대생은 실패하고 멋있는 남학생을 섭외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서울대생 또한 지방에서 유학 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순수하긴 우리 아이들과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했어요. 그리고 평소 면접 준비도 해야 됩니다. 제가 서울대 다녀서가 아니라 정말 서울대 합격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저의 후배가 되세요."

아이들의 질문에 서울대생은 친절하게 자신의 공부법을 설명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역으로 아이들이 서울대 형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형은 졸업하고 무엇이 되고 싶어요?"

어제만 해도 말 한마디 않고 혼자 놀던 녀석이 대뜸 말을 걸었다. 기자도 잠시 변화된 아이의 모습에 놀랐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서울대 남학생 또한 자신의 진로에 대해 명확한 설계가 안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겸연쩍어 하는 서울대생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진로교육의 현 주소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우리 조 한 녀석이 기자에게 다가오더니 엄마가 서울대 정문에서 사진 찍어 오라고 했단다. 대한민국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들이 통과하기를 원하는 대학교의 정문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서울대가 뭐길래! 평소 서울집중현상과 서울대 출신들의 권력 독점을 비판해 왔던 기자이지만 오늘 만큼은 우리 아이들이 서울대라는 상징에 의해서 자신의 꿈을 키웠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박2일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목포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이것은 이 번 '호랑이 교장'프로그램에 대한 기자의 만족도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시기보다 진로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 시점에서 '호랑이 교장'프로그램은 민·관이 협력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단지 대학입학을 위한 진로교육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기자는 전국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기소개서 평가 나 면접 시 지원자가 진로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호랑이 교장' 프로그램에 1년 동안 참여 하였다면 믿어도 된다고!  그리고 오늘도 우리 아이들을 미래과학기술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성수목 호랑이교장 선생님에게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성수목 호랑이 교장선생님으로 부터 수료장을 받았어요
 성수목 호랑이 교장선생님으로 부터 수료장을 받았어요
ⓒ 이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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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목포지역 호랑이교장 프로그램은 (사)한국과학기술캠프협회 목포교육원(원장 최만록)에서 주관하며 목포 청소년의 진로교육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랑이교장, #성수목회장,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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