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분야에서 유명한 말이 있다. 200여년 전, 애덤 스미스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이루는 시장 기능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자유경쟁시장에서는 재화에 관련되어 계획하고 조정하는 사람 또는 시스템의 존재가 불필요하며, 시장 스스로가 조정을 한다고 보았다. 이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작은 정부론의 중추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학 분야의 시장을 설명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세계 역사를 설명하는 데에도 통용되고 있다면? 더군다나 그것이 버젓이 실체를 띠고 있다면?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라 칭하는 이유는, 이것이 실체를 띠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체를 알아차린 몇몇 사람들이 역사를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극작가, 어부, 항만 노동자, 법률가 보조원, 요리사, 제빵사의 직업을 거쳐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마크 쿨란스키'는 <대구>(RHK)라는 책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를 변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대표적 어류 중 하나인 '대구'라고 밝혀내고 있다.
작년에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부키)를 펴낸 물고기 박사 황선도에 따르면, 대구(학명 Gadus macrocephalus. Cod)는 명태와 더불어 우리나라 대구과 어류를 대표한다. 참고로 명태에는 '왕눈폴락대구'라는 다른 이름이 있다.
대구는 최대 크기가 1미터가 훌쩍 넘는 대형 어종인데, 2000년대 들어 어획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본래 제일 흔한 어류임에도 맛이 일품이라 많은 사랑을 받았었는데, 어획량이 1990년대에 급감해서 침체기를 겪었다고 한다.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는 바로 이 대구의 어획량이 급감했던 1997년에 출간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어획량이 급감한 1990년대 현재의 비루한 어부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들은 더 이상 예전의 자유경쟁시장으로서의 어업을 행하는 어부가 아니다. 이제는 정부의 보조를 통해, 대구를 잡아 파는 것이 아니라 대구를 잡아 정부 소속 과학자들에게 보고함으로써 대구 어족의 발달 여부를 측정하도록 보조한다. 잡아도 잡아도 끝없이 잡힐 것만 같았던 대구. 이들은 지난 1000년간 흥청망청 이어진 대구 어업에서 하필이면 제일 끝물에 있었다.
이 책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결국 대구와 연관이 있다. 즉, 지난 1000년간의 세계가 '대구'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순간을 연출한 위인들, 전 세계를 호령했던 강대국들, 그리고 인류의 진보를 이끈 세기적 기술들까지. 보다 많은 대구를 낚기 위해 나선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고, 보다 많은 대구를 낚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다 보니 항해와 관련된 기술이 수직으로 상승 발전했다. 또한 이 '대구' 때문에 전쟁과 혁명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중세 내내 유럽인이 막대한 양의 고래 고기를 먹을 때, 바스크 인은 머나먼 미지의 해역으로 나가 고래를 잡아왔다. 이들이 그처럼 멀리까지 다녀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엄청난 대구 어족을 발견했고, 그걸 잡아서 소금에 절였다. 그래서 긴 항해에도 불구하고 상하지 않고 영양가도 높은 식품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스크 인이 사상 최초로 대구를 소금에 절인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여러 세기 전에, 노르웨이에서 출발한 바이킹이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거쳐 캐나다에 도착했는데 이 경로가 대서양대구의 서식 범위와 정확히 같았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본문 중에서)독립전쟁 후 협정 당시, '대구잡이 권리'를 논의대구와 관련된 대표적 전쟁으로, 20세기 중반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대구 어업권을 둘러싸고 벌였던 일명 '대구 전쟁'이 있는데, 그 결과 아이슬란드가 승리 아닌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8세기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미국 독립혁명의 예를 들 수 있다. 당시 미국 식민지는 본국 영국의 과도한 세금 수탈 등으로 인해 불만이 터졌고, 이를 결정적 계기로 독립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미국 식민지가 영국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점 중에는 과도한 세금 수탈 말고도 '대구 무역 제한 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결정적인 사항은, 독립 전쟁이 끝나고 협정을 맺을 때 가장 중점적으로 논의했던 사항이 바로 '대구잡이 권리' 였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데 일자리가 세금보다 중요하지 아니한가? 그들에게 있어 대구 어업은 생존과 직결된 사항이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아이슬란드의 200마일 영해가 전 세계의 승인을 얻은 이후로 대부분의 국가는 저마다 200마일 영해를 선언하고 나섰다. 전 세계의 기존 어장 가운데 90퍼센트는 최소한 한 나라의 해안에서 200마일 범위 안에 속했다. 이제 어민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법률에도 따라야 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물고기를 가능한 한도 내에서 많이 잡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범위 내에서 많이 잡는 것으로 바뀌었다." (본문 중에서)결국 이 책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즉, 대구의 위상이 땅바닥으로 떨어진 현실로 돌아와 1000년 왕국의 끝물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영원할 것만 같은 자연에 대한 재인식. 한 마리가 수백만 마리의 새끼를 낳을 정도로 엄청난 개체 수를 자랑하는 대구가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면, 이 세상 어느 누가 멸종을 면할 것인가 하는 명확하고도 섬뜩한 메시지인 것이다.
또한 인간에 의한 일방적인 자연에의 수탈 다시 보기. 끝물에 와서 비로소 인식하고 보호를 하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와서 자연과 소통하려 해보았자,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자연이 받아줄지 의문이다. 대지의 어머니 답게 언제든지 와서 모두 가져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도움을 청하고 그 품 안에서 마음껏 뛰어 놀다가 무한으로 주는 것들을 받고... 그런데 고마워할 줄은 모르는 인간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저자는 이런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해묵은 시선을 '대구'라는 흔하디 흔한 어류를 통해 형상화 시키고 있다. 10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돌아 왔듯이, 전하고자 하는 말도 돌고 돌아서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타 인문서처럼 진중하게 그리고 지식욕이 충만하게 읽히면서도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대구'를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이 책의 부록 부분을 살펴보시길. 정말로 다양한 대구의 조리법이 50여 쪽에 걸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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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RHK 펴냄/2014년 2월/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