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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음식을 잘게 씹어서 촉촉한 곤죽으로 만들고 꿈틀대는 위에서 위산을 섞어 덩어리로 반죽한 다음 구불구불한 긴 통로를 통해 내려보낸다. 이곳에서 덩어리는 인류 역사에서 모두가 쉬쉬해 온 뭔가로 바뀐다. 수저를 드는 행동은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본문 11쪽)

'먹다'와 '소화'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위 문장은, '달콤 살벌한 소화기관 모험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타난 신간, <꿀꺽, 한입의 과학, 메리로치 지음, 최가영 옮김, 을유문화사>의 집필의도를 대신하고 있다. 저자 메리로치는 '뇌, 심장, 눈, 피부, 남녀의 생식기를 다룬 책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위장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라고 책을 지은 이유에 부연한다.

소나 코끼리의 위가 쓰레기통 만큼 큰 이유는 먹는 풀들이 영양분이 없기 때문에 일단, 대량으로 먹은 다음 소량씩 영양분을 추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꿀꺽, 한입의 과학> 표지 소나 코끼리의 위가 쓰레기통 만큼 큰 이유는 먹는 풀들이 영양분이 없기 때문에 일단, 대량으로 먹은 다음 소량씩 영양분을 추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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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문명화된 우리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물적 욕구'에 대한 금기 때문에 놓치기 쉬운 사실들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아리송하고 흥미로운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음식을 꼭꼭 씹어 먹으면 나랏빚을 갚을 수 있을까? 침에는 박테리아가 득실득실한데 동물들이 상처를 혀로 핥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살 폭탄 테러범들은 왜 폭탄을 항문에 숨기지 않을까? 위는 음식을 분해하는데 위 자체가 온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바삭바삭한 음식은 왜 그렇게 맛있게 느껴질까? 엘비스 프레슬리가 정말 변비 때문에 죽었을까?'

꼭꼭 씹어먹기

'음식을 꼭꼭 씹어먹어서 가능한 한 많은 영양소를 섭취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1900년대 초의 영양경제학자 호러스플레처는 "샬롯 양파의 심지 5.7그램은 형태가 없어져 저절로 식도로 넘어갈 때까지 722회 정도 씹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플래쳐는 당대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까지도 그의 이론을 몸소 실천할 정도로 유명한 학자였다고 한다.

왜만한 음식들이 어지간한 저작활동을 거쳐 위에 도착하면 위산의 활동으로 대부분 소화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저자는 프레처의 이론이 19세기 20세기 초, 예산이 적었던 이유로 유행한 엉터리 구호 사업을 추진하던 사람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것일 뿐이라고 비꼬고 있다.

꼭꼭 씹어먹는 일이 도움이 되지 않을 리야 없겠지만, 영양성분을 2배로 흡수하기 위해 양파 한 입을 플레처 방식대로 먹으려면 10분이상 걸리는데 이쯤 되면 먹으면서 배가 고파질 수도 있다. 모든 음식을 수백 번씩 씹는 일은 시간낭비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음식의 표면을 촉촉하게 만들어 덩어리 상태에서도 식도로 잘 넘어가게끔 하는 것일 뿐"이라고 1800년대 초반 보몬트라는 군의관이 말하고 있는 것은 타액, 즉 침이다. 현대의 타액 연구가 에리카 실레티의 설명을 들어보자. 볼과 귀의 이하선에서 만들어지는 침은 보통 사람이 하루 1.1~1.7리터를 흘린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침에 아밀라아제(탄수화물 소화), 프로테아제(단백질 소화), 리파아제(지방 소화)라고 하는 소화효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급 세탁세제에는 이 세가지의 소화효소가 들어 있다고 한다. 탄수화물 얼룩을 없애고(아밀라아제), 단백질을 지우고(프로테아제), 기름때를 없앤다(리파아제)는 것이다.

목구멍을 조심하라

2008년 7월호 <국제 소아 이비인후과학회지>에는 기도를 막아 어린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음식 목록이 수록되었는데, 핫도그 소시지, 포도, 둥근 사탕 등이 그 주역이다. 동전이나 둥근 사탕모양의 장난감 등이 음식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입으로 가져가기 쉬운 음식(?)들이다. 건강한 성인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위험음식은 찹쌀떡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10명이 이것 때문에 사망한다고 하니 말이다.

위 속의 가스 위험할 수도 있다. 뱀 전문가 스티븐 세커의 아프리카와 중국 남부에서 전해 내려오는 불 뿜는 용에 관한 전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추론을 들어보자.

"지금 비단뱀의 몸속은 가스로 가득합니다. 비단뱀을 구워먹으려고 모닥불 근처에 두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누군가 비단뱀을 발로 차거나 실수로 밟으면 뱀 입에서 가스가 한꺼번에 방출되겠죠. 수소농도가 4퍼센트를 넘으면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이야 상식이지만 원시시대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게다가 비단뱀이 물고 있던 가젤처럼 부패한 동물의 몸 안에는 수소농도가 10퍼센트 정도로 훨씬 더 높아요. 화염방사기처럼 비단뱀 입에서 불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237쪽)

1890년 맨체스터의 청년노동자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려고 성냥을 그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 트림을 했다가 불이 붙어 입과 얼굴에 화상을 입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위에서는 수소나 메탄이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트림을 할 때 나오는 가스에 인화성은 없다고 하니 안심하자. 그 청년은 유문협착 즉, 소장으로 넘어갔어야 할 발효된 음식물이 위에 남아있어 생긴 극히 드문 일을 겪은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돌연사' 엘비스프레슬리... 진짜 사망원인은

1977년 사망한 엘비스프레슬리, 검시소견서에는 하나같이 사망원인이 '돌연사'로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사실은 '결장의 비활동성' 즉, 대장의 신경 일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히르슈스프룽병(거대결장)이 사망원인일 것이라는 가설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사망장소는 화장실이었고, 심장마비나 뇌졸중의 흔적도 없었으며, 약물과다 복용 설이 있긴 했지만 조사결과 치사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레슬리가 평생 변비로 고생했다는 것이다. 18세기 19세기의 해부학 수업에서는 시체의 배를 가르자마자 냄새가 지독하다는 이유로 대장을 잘라 내어 쓰레기통에 던졌다고 하는데, 1970년대까지도 결장에 관한 의학지식수준이 낮았던 이유다. 프레슬리와 그의 팬들에겐 다행일 수도 있겠다. 변비가 아닌 돌연사로 사망원인을 발표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꿀꺽, 한입의 과학>은 흥미롭다. 우리의 소화기 세상을 여행할 수 있도록 저자가 여행가이드가 되어 독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에서 침으로 목구멍을 거치면서 먹는 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식도를 거쳐 위로 들어갈 수 있다. 소장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대장에서 쓰레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코를 막기도 하지만, 책은 흔치 않은 경험을 통해 우리 몸 속을 구석구석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꿀꺽, 한 입의 과학>/ 메리 로치 (지은이)최가영 (옮긴이)/ 을유문화사



꿀꺽, 한 입의 과학 - 달콤 살벌한 소화 기관 모험기

메리 로치 지음, 최가영 옮김, 을유문화사(2014)


태그:#침, #엘비스, #메리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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