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7일 오후 3시 55분]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청와대 앞에까지 찾아가 박 대통령에게 '기초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관련 회담을 요청하고 꼬박 나흘이 지났다. 안 대표가 회답의 기한으로 정한 7일, 청와대의 대답은 역시나 거부였다. 기초 선거 공천제도 폐지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양해나 사과의 말도 없었다.
이날 오후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 같은 청와대 입장을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에게 전달한 후 10분 만에 국회를 빠져나갔다. 안 대표는 "(면담에서 나온 얘기는) 지난 주 청와대 방문시 정무수석이 한 내용과 같다"라며 "사과나 양해의 말은 아니"라고 전했다.
박 수석이 면담에서 "기초공천제 폐지사안은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로서 여야 간 논의를 통해 국회에서 합의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라는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말했다. 박 수석은 또 "각 당이 선거체제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만나는 건 선거중립 등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박 수석이 같은 입장을 반복해 전달하자 김한길-안철수 대표는 침묵을 지켰다고 금태섭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전했다. 면담에서 박 수석이 "박 대통령만큼 공약을 지키려 노력하는 분은 없다"고 하자, 김한길 대표는 "우리와 정말 생각이 다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 안철수 대표는 "지금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를 만난다고 해서 누가 선거개입이라고 하거나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 삼겠느냐"라고 반문했다고 금 대변인은 전했다.
박 대통령이 회담을 공식 거부함에 따라 이제 활시위는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 손에 들려졌다. 결정의 몫은 오롯이 둘에게 맡겨졌다.
두 대표는 '무공천 재검토'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 여당 역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고민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 내에서는 '4월 국회 보이콧', '지방선거 보이콧' 등 여러 갈래의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영호남만 무공천'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금태섭 대변인은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부탁드렸으니 제 1야당 대표의 제안에 성의껏 답을 하실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제안을 거절하고 야당을 무시하는 걸 가정하고 대응책을 세우지 않았다"라며 "향후 어떻게 할지 논의해 내일부터 대응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김한길-안철수 '결단' 압박 목소리 거세져
이에 앞서,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기초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입법 촉구 결의대회'에서는 김한길-안철수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청와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경우 두 대표가 결단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원식 최고위원은 "기초 선거 무공천이 그대로 진행돼 탈당해야 하는 분들, 얼마나 당이 원망스럽겠냐, 그런 마음을 갖고 출마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며 "똑같은 룰을 가지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방선거 관철을 위해 13일 동안 단식해서 제도를 만들어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두 대표를 향한 압박이다.
우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이 우리 요구에 답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당의 명운을 걸고 싸워야 한다"라며 "두 대표가 앞장서고 최고위원들이 뒤에 서 우리 당 전통을 다시 만들어내자"라고 소리를 높였다. 현재 서울 시청광장에서 '기초 선거 공천제도 폐지 입법화' 거리 투쟁에 나선 우 최고위원은 "오늘 밤까지 (청와대) 대답 오는 걸 보고 (변화가 없으면) 더이상 시청으로 나가지 않겠다, 여러분이 살아 돌아올 때까지 손 잡고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이목희 의원은 "길 찾기가 어려울 때 정당은 당원에게 길을 물어보고 그 뜻을 따라야 한다"라며 "갈 길이 정해지면 모든 걸 바쳐서 노력하자"라고 외쳤다. 전당원을 대상으로 '기초 선거 무공천'에 대한 뜻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기초 선거 공천 폐지 입법화를 위해 남은 시간 동안 죽을 힘 다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았다.
박영복 인천시당 공동위원장은 두 대표를 향해 "오늘까지 청와대가 묵묵부답이면 두 대표가 중대 결심을 해주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는 멋쩍은 듯 웃음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반면, 대회에 참석한 구청장·구의원들은 박 위원장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결의대회에서 김한길 대표는 "새정치연합은 4월 국회에서 정당공천 폐지 법안을 관철시켜야 한다, 선거 규칙이 두 개일 수는 없다"라며 "여러분의 고통을 당이 방관하고 있지 않겠다, 앞으로 우리가 나갈 길을 박 대통령의 태도를 보고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대표는 "기초 공천을 하지 않는게 정당으로서 얼마나 큰 희생인지 국민이 점차 알아가고 있다"라며 "누가 국민을 존중하는 후보고 누가 국민을 기만하는 후보인지 국민이 판단해줄 것이다, 국민을 믿고 국민의 바다로 갈 것이다, 내가 앞장서겠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두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기초 선거 출마자들을 다독이려 애썼다. 그러나 두 대표보다는 거리에 나선 우원식 최고위원, 대회에 참석해 가볍게 목례를 한 정청래 의원이 기초선거 출마자들에게 더 큰 호응과 박수를 받는 기현상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