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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모를 살인죄로 기소하라" 아동학대근절시민단체 '하늘소풍'회원들이 재판부의 판결을 비난하고 피고인 임모씨의 학대행위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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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곡계모사건'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1일 오전, 법정 앞은 취재진과 방청을 원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칠곡계모사건'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1일 오전, 법정 앞은 취재진과 방청을 원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 박윤정

의붓딸을 학대하고 상습적으로 폭행해 상해치사혐의로 기소된 임아무개씨에 대해 재판부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또 계모의 학대를 방관한 친부 김아무개씨는 아동학대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칠곡아동학대치사사건'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11일 오전, 대구의 하늘은 회색빛 구름으로 덮여 있었고 쌀쌀했다. 연무가 팔공산 중턱까지 내려왔다. 새벽 사이 내린 비로 땅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구름에 가려 해는 보이지 않았고 대구지방법원 마당은 물론 '칠곡아동학대치사사건' 공판이 열리는 법정 내부도 컴컴했다.

전날 대구지법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다수의 이해관계인이 방청을 희망할 것으로 예상되나 법정이 협소하므로, 질서유지를 위하여 부득이 방청권을 배부한다"고 공지했다. 방청희망자 36명만 선착순으로 입장시킨다는 방침이었다. 이날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일반 시민, 시민단체 회원 등 80여 명이 몰리면서 법정 앞은 잠시 소란스럽기도 했다.

방청권이 배부될 쯤, 한 여성이 법정 앞으로 왔다. 숨진 김아무개양의 친고모였다. 그는 법정서기관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서기관은 고모를 데리고 빈 법정으로 이동해 안정시키기도 했다.

재판 시작 전부터 눈물 흘린 김양의 친고모

오전 10시, 공판이 시작됐다. 법정 안에는 김양의 친고모와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 취재진, 일반 시민들로 북적였다. 24개의 의자는 가득 찼고 30여 명의 사람들이 서서 재판을 지켜봤다. 김 양의 고모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었다. 이명숙 변호사는 김씨의 어깨를 다독이며 울음을 달랬다. 고요한 법정에는 고모의 울음소리만 나지막이 울렸다.

법정 문이 열리고 청바지에 파란색 추리닝 점퍼를 입은 한 남성이 들어왔다. 숨진 김양의 친부였다. 김씨가 들어서자 시민들은 "쳐 죽일 놈", "친부가 어쩜 저렇냐"라며 비난했다. 경호원들은 시민들에게 자제를 부탁했다. 김씨는 피고인석에 앉아 추리닝 점퍼에 코와 입을 묻은 채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김양의 고모는 동생의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계속 흐느꼈다.

잠시 뒤, 판사가 입장했다. 법정 내를 정돈하자 계모 임아무개씨가 쑥색 수의를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법정에 들어왔다. 임씨의 등장에 시민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한숨을 쉬거나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큰딸은 처음 피고인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지만 (계모가) 동생을 폭행했다는 마지막 증언이 신빙성이 있으며, 증거도 있기에 (피고인의) 상해치사혐의를 인정한다. (하지만) 부검 결과 피고인이 무차별적으로 폭행해 김양이 숨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김성엽 대구지법 제11형사부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판결문을 듣던 고모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고모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마시던 물을 게워냈다. 그리고 오열했다. 경호원들이 고모를 부축해 나가려하자 고모는 "안돼요, 다 들어야 해요"라며 버텼다.

"임OO(계모)를 상해치사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한다, 김OO(친부)은 아동학대로 징역 3년을 선고한다."

시민들 "판사는 도대체 어떤 놈이냐"며 재판부 질타

판사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렸다. 고모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꺽꺽거렸다. 고모는 "이건 아니잖아, 차라리 나를 죽이세요"라며 오열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 몇 명도 눈물을 훔쳤다.

이윽고 "사형시켜라, 죽여야 한다", "10년이 뭡니까? 우리나라 법이 고작 이정도 밖에 안 됩니까", "(임씨를 향해) 죽일 년"이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로 법정 안이 가득찼다. 판사가 친부 김씨에게 "할 말이 있냐"고 묻자 김씨는 고개를 땅으로 떨군 채 침묵했다. 임씨는 법정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방청권을 얻지 못해 밖에서 재판 결과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재판이 끝나자마자 "어떻게 됐냐"며 궁금해했다. "계모는 징역 10년, 친부는 3년"이라고 누군가 말하자 "판사는 도대체 어떤 놈이냐", "법도 XX같다"라며 재판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칠곡계모사건'1심 선고 공판이 끝나자 시민단체 회원들은 "형이 너무 짧다, 살인죄로 기소하라"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칠곡계모사건'1심 선고 공판이 끝나자 시민단체 회원들은 "형이 너무 짧다, 살인죄로 기소하라"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 박윤정

법정관 앞은 아동학대근절시민단체 '하늘소풍' 회원과 시민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임씨를 태운 호송차량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계모는 극악무도하다", "상해치사가 아니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늘소풍 회원들은 준비해온 피켓 등을 들고 "임씨가 아이를 계단에서 밀려고하자 아이가 난간을 잡으니 손발을 묶어서 밀기까지 했다"라면서 "검사님은 그 아이가 어떨지 생각해봤어요? 재판장님은 생각해봤어요?"라고 외쳤다.

그들은 임씨가 가한 학대행위를 낱낱이 말하며 "재판부는 각성하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옳소, 사형시켜야 한다"라고 외치거나 울음을 터뜨렸다.

하늘소풍 회원들이 계속해서 발언을 이어나가던 오전 10시 30분쯤 대구지법 법정관 앞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이윽고 오열하다 실신한 김양의 고모가 들것에 실려나왔다. 고모는 구급차에 실리면서도 "이건 아니다, 너무하다"라며 울먹였다.

시민들은 "고모가 죽은 애를 6년이나 키웠다는데 그 마음이 오죽하겠냐"라며 눈가를 닦았다. 그러면서 "판사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판결을 내렸냐"라고 말하며 법정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협의는 무슨... 아침부터 기다린 사람들은 어쩌라고"
[현장] 방청권 두고 시민-법원공무원 '살랑이'

'칠곡아동학대치사사건' 1심 선고 공판을 한 시간 여 앞두고 법정 앞에서는 방청권을 받으려는 시민들과 법원공무원간의 작은 마찰이 있기도 했다.

법원 측은 사전에 일반시민 36명에게 방청권을 배부한다고 공지하였으나 "36개의 방청권에는 피해자 가족 및 '하늘소풍'회원 등도 포함돼 있어 시민들에게 36석까지는 돌아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명숙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피해자 가족과 하늘소풍 회원들에게 우선 방청권을 주고 남은 방청권은 기다리시는 분들끼리 협의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한시간 가량 줄서서 기다리던 시민들은 "협의는 무슨 협의냐"라며 "아침부터 기다린 사람들이 있다"라고 반발했다. 한 시민은 "피해자 가족이야 그렇다쳐도 하늘소풍 회원들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방청권을 준다는 게 말이 되냐"라고 따졌다.

이명숙 변호사와 법원 공무원들은 잠시 상의를 거쳐 "17석 정도는 남으니 먼저 온 사람부터 (방청권을) 선착순 배부하겠다"라고 말해 소동은 일단락됐다.



#칠곡계모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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