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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되어 남아 있는 추억속의 경의선 간이역 일산역, 바로 앞에서 일산 오일장이 열린다.
 문화재가 되어 남아 있는 추억속의 경의선 간이역 일산역, 바로 앞에서 일산 오일장이 열린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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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북한의 개성·평양·신의주를 잇는 길이 518.5km의 긴 철도다.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철도 부설권을 얻은 일본이 대륙 침략과 우리나라 자원의 신속한 수탈을 목적으로 1906년에 완공하였다.

현재 남한의 최북단역은 임진강역 또는 도라산역이다. 경의선이 다른 열차와 달리 보이는 건 이 기찻길의 종점이 북한의 신의주라는 좀 특별하고 애틋한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문산, 파주를 지나 임진강역까지 짧은 여행을 갈 때마다 "북한 땅이 참으로 가깝구나"를 실감하게 해주는 철도이기도 하다.

​기차들이 쉬어 가는 백 살이 넘은 기차역 수색역, 교외선 기차길이 이어지던 아직도 교외 풍경이 물씬한 대곡역, 작은 건널목을 품고서 이름만으로도 낭만적인 추억이 떠오르는 백마역, 아파트 숲 속 사이로 오일장이 열리며, 문화재로도 등재된 간이역이 남아 있는 일산역, 역 앞에 '여로 이발관'이 정다운, 그 이름이 너무 정겨운 나머지 그냥 내리고픈 금촌역, 가을이면 노랗게 물은 넓은 들판으로도 배부른 임진강역 등 경의선 여행은 다채롭기만 하다.

지난 2009년 경의선이 복선 전철화 되면서 대부분이 작은 간이역이었던 기차역만의 정취는 사라져갔다. 다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 경의선 여행을 하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오일장터다.

백 년이 넘은 전통의 일산역 일산오일장(매 3일/8일)이 가장 큰 형이고, 금릉역 앞 공릉천가에서 펼쳐지는 조리읍 봉일천장(매 2일/7일), 금촌역 앞 금촌 오일장(매 1일/7일), 문산역 앞 문산 오일장(매 4일/9일) 등이 서로 겹치지 않게 조화로이 열리고 있다.

요즘 같은 봄날 팍팍한 도시인의 마음을 더욱 따사롭게 어루만져 주는 소중한 공간이요 살아있는 문화재다. 소읍과 장터를 좋아하는 여행자에겐 보물과 같은 경의선 오일장터가 아닐 수 없다. 지난 8일 애마 자전거를 타고 경의선 옆길을 따라 경의선의 대표 오일장터 일산 오일장을 찾아갔다.

경의선 옆에 숨어있는 정다운 마을 길

경의선 곡산역 뒤로 백석동, 마두동, 풍동의 전원풍경이 이어진다.
 경의선 곡산역 뒤로 백석동, 마두동, 풍동의 전원풍경이 이어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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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변에서 봄나물로 먹을 거라며 민들레를 캐는 동네 아주머니.
 개천변에서 봄나물로 먹을 거라며 민들레를 캐는 동네 아주머니.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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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열차가 경기도 일산으로 들어서는 들머리의 곡산역에 내렸다. 곡산역에서 경의선 철길 옆으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파주까지 계속 이어져 있어서 자전거 타고 달려가기 좋기 때문이다. 곡산역은 물론 이어지는 경의선 전철역마다 무인 자전거 대여소가 마련되어 있어 대여와 반납이 편하게 되어있다. 자전거 타고 일산과 파주의 도시 여행하기 좋겠다. 이날도 여러 청춘 남녀들이 경의선 역에서 대여 자전거를 타고 일산 호수공원에 놀러가고 있었다.

일산 신도시처럼 쾌적한 자전거 도로도 좋지만, 경의선 옆에는 이름 없는 개천가의 풋풋한 마을길이 숨어있는 듯 존재하고 있다. 곡산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마치 신도시 속의 비밀의 길처럼 이름 없는 개천길이 나타난다. 푹신한 흙길은 아니지만 사람과 자전거가 지나가기 딱 좋은 마을길로 백석동, 마두동, 풍동의 옛 풍경이 남아있는 길이 참 반갑다. 신도시와 상가들이 미처 닿지 못한 전원마을이 이어진다.

풋풋한 흙냄새가 나는 밭들과 초록의 채소들로 가득한 비닐하우스와 함께 아름다운 자목련이 피어난 단층의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자전거 핸들을 돌려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게 한다. 친근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줘봐야 "이건 뭥미?" 하는 표정으로 짖어대는 동네 개들도 오랜만에 만났다.

이름 모를 작은 개천 변에서 동네 아주머니가 주저앉아 자전거 여행자가 가까이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초록 풀을 뜯고 있다. 이맘땐 보통 쑥을 캐던데 의외로 민들레란다. 노랑 꽃잎이 예쁜 봄의 전령사인줄로만 알았던 민들레가 봄나물로 무쳐서 먹는다니 그 향미가 무척 궁금하다. 민들레 나물 무침 요리법을 상세히 알려준 아주머니 말로는 쌉싸름하다고. 좀 있다가 도착한 일산 오일장에서도 할머니들이 캐온 민들레가 흔했다.    

이름의 유래를 궁금하게 하는 백마역

이름만으로도 추억과 함께 낭만적인 기분을 들게 하는 백마역.
 이름만으로도 추억과 함께 낭만적인 기분을 들게 하는 백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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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리 건널목, 아파트가 들어찬 신도시 속에서 건널목의 '땡땡땡~' 소리는 무척 이채롭게 들린다.
 백석리 건널목, 아파트가 들어찬 신도시 속에서 건널목의 '땡땡땡~' 소리는 무척 이채롭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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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에 20대를 통과한 이들에게는 연인과 발을 동동 구르며 신촌행 기차를 기다리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경의선 백마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도 치기어린 학창시절 동네 대학생 형들을 흉내 낸다고 친구들과 함께 백마역에 찾아가 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고, 통기타를 들려주던 카페촌에 종종 놀러가곤 했다. 1990년대 초반 일산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백마역 일대의 주점과 카페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춰버렸다.

백마역(白馬驛), 언제 봐도 이름이 참 낭만적이고 예전 이 부근에 말목장이 있었을까 궁금하게 하는 역 이름이다. 혹시나 해서 백마역 개찰구 앞에 서 있던 나이 지긋한 역무원 아저씨에게 물어 보았다. 아저씨는 미소를 짓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역 위치가 백석동과 마두동 사이에 있어서 두 동네 이름에서 따와 '백마역'이라고 이름 지었을 거란다. 누가 역의 이름을 지었는지 절묘한 '네이밍'이다.

말 마(馬)자가 들어가는 이유는 알고 보니 인근에 목장이 있어서라 아니라 동네의 모양이 말이 머리를 길게 내밀어 한강의 물을 마시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란다. 마두동은 순우리말 이름인 '말머리'로 아직도 동네의 어르신들은 마두동 지역을 말머리라고 부른다고.

주변은 개발되어 아파트촌으로 변모했고 작은 간이역이었던 백마역도 말끔한 전철역으로 바뀌어 세월의 무상함과 추억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옛 흔적은 남아 있었다. 깃발을 들고 서 있는 초로의 역무원 아저씨들이 일하고 있는 건널목. '백석리 건널목'이라고 써있는 것으로 보아 건널목이 위치한 현재 백석동은 예전엔 백석리였나 보다.

2009년 12월 경의선이 전철로 바뀌기 전엔 기적 소리를 내는 아담한 경의선 기차가 지나가던 정겨운 기찻길 건널목이었을 풍경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경의선 전철이 오려는지 빨간 띠를 두른 긴 막대기인 차단봉이 "땡땡땡~" 소리를 내며 내려간다. 지나가던 사람들과 차량들이 양편에 얌전하게 서서 기다린다.​ 주변의 높다란 아파트들과 골프 연습장 사이에 있는 건널목이라 그런지 더욱 이채롭게 다가오는 곳이다.

이웃사촌들을 만나는 곳, 일산 오일장

시골 장터의 풍경이 남아있는 백 년이 넘은 전통의 일산 오일장.
 시골 장터의 풍경이 남아있는 백 년이 넘은 전통의 일산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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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진 한산했던 경의선 전철역 주변들과 달리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철역이 나타났다. 바로 일산 오일장이 열리는 일산역. 3일, 8일 날은 이 오일장에 오기 위해 일산은 물론 파주지역의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 경의선 전철을 타고 일산역으로 모여 든다. 과거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 먹거리 해결은 물론 서로를 이어주는 이웃 공동체 역할을 했던 오일장이 이렇게 도시 속에 남아 있다는 게 그냥 고맙고 흐뭇하다.

​일산역에 내리면 시골 역사 같은 소담한 대합실이 아직도 눈에 선한 경의선 간이역 일산역이 보인다. 다른 경의선 옛 기차역들은 다 헐리고 새 전철역이 생겼지만 일산역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덕분에 다행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밖으로 철창이 둘러쳐져 있어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까치발을 들고 안을 들여다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2009년 경의선이 전철화, 현대화되기 전에 와보았던 덕택에 나무 의자로 길게 이어진 대합실 모습, 칭얼대는 손자를 등에 업고 달래며 기차를 기다리던 할머니며 동네 주민들이 오가던 작은 간이역 풍경이 눈에 선했다.

문화재다보니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해놓았겠지만 옛 일산역도 남한강변의 능내역(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처럼 폐역으로 방치하지 말고 작은 갤러리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철책으로 둘러쳐진 모습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자주 찾는 문화공간이 문화재로써 더욱 가치가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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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오일장터엔 할머니들이 들녘에서 캐온 봄나물이 지천이다.
 봄날의 오일장터엔 할머니들이 들녘에서 캐온 봄나물이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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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역 앞에서 펼쳐지는 일산 오일장 또한 일산역의 나이처럼 백 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래된 장터다. ​아직도 오일장이 펼쳐지는 동네는 도시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온 터라 고향이 없는 내게 고향의 정감을 나눠주는 곳이다. 어릴 적 시골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 편하지만 팍팍한 도시생활이 왠지 내 삶 같지 않은 도시의 이방인들에겐 오일장은 더더욱 고향 같은 편안함과 함께 회한을 느끼게 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오일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일산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쾌적함과 편리함을 얻었지만, 인간미와 마을 공동체 그리고 정다운 이웃사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도시 문명의 편리함과 바꾼 것들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들이 모여 이런 오일장터가 남아있게 된 것일 게다.

​귀여운 강아지, 토끼들과 보기 드문 멋진 수탉과 암탉들을 볼 수 있는 가축장, 작은 트럭에 별별 것들을 다 싣고 다니는 만물상 아저씨, 뻥튀기 아저씨가 쇠 통을 개조해 만든 신식 뻥튀기 기계 앞에서 가져온 각종 곡물을 양철 통에 넣어 놓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아주머니들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장터다.

종종 일산 오일장터를 구경 올적마다 느끼는 건 장터 규모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커지고 북적이는 분위기다. 뻥튀기 기계를 돌리는 아저씨가 몇 분 더 생겼고, 장터의 먹거리 좌판은 포장마차에서 큰 먹거리 장터가 되어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일산시장은 물론 큰 차도 양옆으로, 골목으로 노점과 좌판이 꽉 찼다. 역시 봄날이라 그런지 장터엔 할머니들이 파주의 들녘에서 캐왔다는 원추리, 미나리, 고들빼기, 민들레들로 지천이다.

경기도 일산, 파주 지역에 있는 오일장 장터들을 알게 된 건 정영신 작가의 사진집 <한국의 장터>를 읽고서인데, 경의선 가까이에 여러 오일장들이 서고 있다는 사실과 사진들을 보고 놀라웠다. 이미 전국의 소읍까지 들어선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들 세상에서 이런 오일장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자생하고 있다는 게 고맙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태그:#자전거여행, #경의선, #일산오일장, #일산역, #백석리 건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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