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14일 오후 5시] 인권·여성단체가 지난해 10월 직속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군 장교 고(故) 오혜란 대위에 대한 군사법원의 판결이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며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군 인권센터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여성미래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오 대위 사건 판결문의 일부를 공개했다.
이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군사법원(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가해자 노아무개 소령에 대해 '징역 2년·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신상정보등록 대상자인 노 소령에게 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고,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상 신상정보등록에 관한 사항도 판시하지 않았다. 군인 등 강제추행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2조 제1항에 의해 신상정보등록 대상범죄에 해당한다.
이들은 또 재판부가 노 소령의 강제추행 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판결 주문과는 달리 양형 이유에선 '부서 일이라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 또한 참작해야 한다'는 등 가해자 입장을 대변하며 사실상 무죄인 것처럼 적었다고 비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사법원의 판결문은 앞뒤가 맞지 않는 누더기"라면서 "특히 신상정보등록 사항을 누락해 고지명령까지 부과하지 않은 것은 가해자 봐주기식 판결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명백한 위법행위"라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또 "가해자를 대변하려고 편파적인 위법 행위를 서슴치 않는 군사법원이 과연 존재할 이유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향후 군사법제도 개정운동에 나설 것을 천명했다.
그는 이어 "조만간 대법원과 법원 행정처, 법무부, 대검, 각 지방 변호사회 등에 이와 같은 함량 미달의 판결을 내린 군 법무관이 제대 후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거나 변호사로 등록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군인권센터 등은 노 소령에 대한 선고공판 직후 육군이 가해자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주심 군 판사는 영전시키고, 실형 선고를 고수했던 부심 군판사는 전방 사단으로 사실상 좌천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임 소장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선고 공판 전 재판부 평의에서 재판장과 함께 집행유예 의견을 냈던 김아무개 소령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실로 영전했고,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또 다른 김아무개 소령은 대위급 보직인 전방 사단 법무참모로 전출되었다는 것.
임 소장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공교로운 일"이라면서 "이런 지적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군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군인권센터 등은 군사법원이 1심 공소장·판결문 등 소송 진행에 필요한 서류의 열람권을 제한하고 있어, '알 권리'를 침해당했을 뿐 아니라 유족측의 항소심 준비에도 지장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 인권센터와 오 대위의 유족은 군 검찰의 공소장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1심 공판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강제추행·폭행·직권남용가혹행위 등을 공소사실에 추가해 항소심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달 20일 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가해자 노 소령의 범죄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하고도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솜 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고 있다. 징역 5년을 구형했던 군 검찰과 가해자 노 소령 측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 지난달 25일 항소했다.
한편, 군인권센터측의 의혹 제기에 대해 육군은 "법무장교 인사 관리 규정에 따라 행해진 적법한 인사"라면서 "부심판사였던 김아무개 소령이 대위급 보직인 사단 법무참모로 간 것이 좌천아니냐는 주장도 올 1월 1일부로 상비사단의 법무참모를 소령이 맡게 됨에 따라 취해진 조치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