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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입구 '쉬린 네샤트' 전시와 '예스퍼 유스트' 대형전시홍보물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입구 '쉬린 네샤트' 전시와 '예스퍼 유스트' 대형전시홍보물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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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서울관에서 아시아프로젝트(MAP) 첫 기획전으로 동서 문명을 융합해 예술로 꽃피운 이란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작가 '쉬린 네샤트(Shirin Neshat 1957-)'의 그간 작품을 망라한 회고전이 국내최초로 7월 13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알라의 여인(Women of Allah 1993-1997)'을 비롯해, 2채널 비디오 3부작 '격동(Turbulent 1998)', '황홀(Rapture 1999)', '열정(Fervor 2000)' 그리고 영화 '여자들만의 세상(Women without Men 2004-2008)'과 근작 '왕서(The Book of Kings 2012)' 등 영상미와 시적 서정성이 넘치는 대표작을 선보인다.

네샤트는 자신의 정체성을 "한 여성으로, 한 이란인으로, 한 예술가로 마주하는 이슈들 사이를 항해하는 것이 내 작업의 본령이다"라고 밝히면서 이슬람역사와 서구문명의 공통점을 찾아 거기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권력과 젠더, 인권과 사회정의, 휴머니즘 등 인류 보편적인 주제의 미학을 발굴한다.

이 작가를 더 알아보면, 그녀는 이란 '카즈빈'에서 서구취향의 의사 딸로 태어나 17살이 되는 1974년에 미국으로 이주한다. 버클리대에서 회화와 미술이론을 공부한 후 뉴욕에 정착한다. 1979년 이란혁명 후에는 17년간이나 조국을 방문할 수 없었다.

1991년에야 이란을 방문할 수 있었으나 1996년부터는 반체제인사로 분류돼 테헤란공항에서 구금되기도 했다. 이슬람원리주의 아래 억압받는 여성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이런 시련은 그녀의 예술 활동에서 오히려 자양분이 되어 창작욕을 더 높인다.

1999년에는 '격동'으로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그녀의 작품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2009년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장편영화 '여자들만의 세상'이 은사자상을 수상해 그 명성을 떨친다.

강인한 여전사와 율법에 억압된 여성

 쉬린 네샤트 I '알라의 여인들' 연작_무언의 애도(Speechless)' RC 프린트와 잉크 46×33 inch 1996. ⓒ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작가 및 글래드스톤 갤러리(뉴욕, 브뤼셀)]
 쉬린 네샤트 I '알라의 여인들' 연작_무언의 애도(Speechless)' RC 프린트와 잉크 46×33 inch 1996. ⓒ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작가 및 글래드스톤 갤러리(뉴욕, 브뤼셀)]
ⓒ 국립현대미술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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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현대사는 단순치 않다. 1951년 영미(英美)의 지원을 받던 팔레비왕정이 흔들리자 왕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모사데크(Mossadeq)'를 수상으로 선출했다 2년 후 내쫓는다. 1957년엔 '비밀정보부'가 생겨 22년간 이란의 지식인·작가·언론인이 감시당했다. 결국 1979년 이란혁명이 터지고 하지만 그 체제도 여성에겐 여전히 가혹했다.

이런 정치적 배경 속에서 네샤트의 논쟁적 작품인 '알라의 여인' 연작이 나온다. 흑백사진에 검은 '베일'을 쓴 채 얼굴엔 총열이 닿아있고 정면을 '응시'하는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강인한 여전사의 모습과 율법에 억눌린 모습이 교차한다. 사진위에 아픈 역사의 흔적을 기록하듯 파르시어로 반체제작가 등의 시를 빼곡히 적는다.

네샤트는 여성을 한 가지로만 묶어 보는 정치적 관점을 거부하면서 이란 여성 중 이슬람공화국에 대해 자기희생적인 면을 보이는 측면도 있고, 여성의 자유를 옹호하고 권위적이고 강압적 통치에 반대하는 측면도 있어 이 양쪽 입장을 다 반영한다.

그녀의 흑백사진에서 중요한 소재는 '총'이다. 그런데 그녀에겐 또 하나의 총이 있다. 바로 결기가 느껴지는 이슬람문자다. 그러나 쏠 수 없는 평화적 도구다. 일종의 문화충격 같은 효과를 주려한 것인가. 작가는 이렇게 이념적인 걸 최소화하고 거부감이 없는 시적 메타포나 시각언어로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표출한다.

7천년 역사 속, 시(詩)가 융성한 나라

 쉬린 네샤트 I '격동(Turbulent)' 2개 스크린 비디오설치(Two-screen video installation) 10분 1998. 이 작품은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작
 쉬린 네샤트 I '격동(Turbulent)' 2개 스크린 비디오설치(Two-screen video installation) 10분 1998. 이 작품은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작
ⓒ 국립현대미술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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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한국에 보내온 영상인사말에서 "오래 전에 한국을 몇 번 방문한 적도 있고, 한국남자와 결혼한 적도 있어 한국문화가 친숙하다"며 "이번에 한국 관객에게 선보일 서울전시는 시기마다 대표작을 모은 것으로 서울관에서 처음 열려 기쁘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이란은 정치적 격동을 겪었지만, 시가 아름다운 나라"라며 "풍부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라로 한국과 닮았다"며 "이슬람 고전미술에서 쓰이는 서예도 그렇고 정치적 이슈, 페미니즘 등에서 한국관객이 공감하리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위 '격동'은 한 이란 남성이 13세기 페르시아시인 루미(Rumi)가 작사한 전통가요를 풍성한 감성과 고도의 테크닉으로 열창하는 장면이다. 뒤로는 넋을 잃고 이에 몰입한 관객이 보인다. 이걸 보면 이란이 오랜 시 전통을 가진 나라임을 짐작케 한다.

2채널인 위 작품은 반대편에도 여성이 노래하는 비디오도 있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데 이란에서는 1979년부터 여성이 공개석상에서 시낭송이나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돼있어 이 가수는 관중도 없는 곳에서 노래한다. 이걸 보면 이슬람사회에서 여성은 터무니없이 배제되고 표현의 자유가 차단된 채 차별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별분리 사회와 이란식 페미니즘

 쉬린 네샤트 I '열정(Fervor)' Gelatin silver print, 18×22 inches 2채널 비디오 10분 2000. ⓒ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쉬린 네샤트 I '열정(Fervor)' Gelatin silver print, 18×22 inches 2채널 비디오 10분 2000. ⓒ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 국립현대미술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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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이렇듯 전통적으로 서구인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남녀문제에서 엄하고 보수적이다. 이런 점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열정'이다. 두 남녀는 사원을 갈 때도 다른 길로 가고 중간교차로에서 만나도 모른 척하고 마음이 서로 끌려도 물끄러미 바라볼 뿐 표현하지 못한다. 사원가운데는 칸막이 있어 남녀가 유별이다.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은 조선시대의 풍속이 아직도 이슬람사회에 남아있다니 놀랍다. 서로 보고 싶은 남녀의 애틋한 표정이 2채널에 담겨있다. 네샤트 작품은 이처럼 남과 여, 흑과 백, 동양과 서구, 과거와 현대 등으로 대조시키는 게 특징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란 여성은 남성처럼 되려고 경쟁하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정체성과 남성으로서의 정체성 간 균형을 잡은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완벽한 세상은 남녀가 평형을 이루는 때다!"라며 서양처럼 남녀의 동등한 대우보다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시스템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이란식 페미니즘이라고 정의한다.

이슬람과 서구를 연결시키는 예술셔먼

 쉬린 네샤트 I '독백(Soliloquy_터키 편)' 2채널 비디오/오디오 17분 30초 1999. ⓒ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쉬린 네샤트 I '독백(Soliloquy_터키 편)' 2채널 비디오/오디오 17분 30초 1999. ⓒ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 국립현대미술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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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샤트는 동서의 확연한 문화차이를 넘어 정치나 외교로 풀 수 없는 걸 국경도 없고 번역도 필요 없는 비디오와 영화와 사진을 통해 소통하려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두 문화를 받아들여 그 다름과 차이를 융합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1999년에 네샤트가 이런 의도로 만든 비디오가 2채널로 된 '독백'이다. 하나는 터키에서 다른 하나는 뉴욕에서 촬영했다. 위 작품은 터키에서 찍은 것으로 이슬람의 건축과 느린 문화를 보여준다. 그녀가 터키에서 비디오를 찍은 건 이란입국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여자 몸에 물을 붙는 건 이슬람에서 무슨 뜻인지 신비한 분위기다.

 쉬린 네샤트 I '독백(Soliloquy_뉴욕 편)' 2 채널 비디오·오디오 17분 30초 1999.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찍은 사진
 쉬린 네샤트 I '독백(Soliloquy_뉴욕 편)' 2 채널 비디오·오디오 17분 30초 1999.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찍은 사진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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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독백'은 뉴욕 편으로 서구의 현대건축과 도시의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을 보여준다. 한국의 샤먼은 죽은 사람마저도 불러내 산 자와 화해시켰는데 네샤트는 예술을 통해 동서 문명의 징검다리를 놓는 예술무당이다. 한쪽에선 고통을, 다른 쪽에선 소외를 받는 그녀는 이란작가도 미국작가도 아닌 그 중간점에 있다.

낯설고 복잡한 문명 간의 매듭을 풀기에는 정치보다는 예술이 더 적합하다. 사실 한국 사람이 이란에 관심을 두기 쉽지 않는데 작가가 그걸 예술의 그릇에 담아 보여줘 연일 매진이다. 이번 전시의 의의는 무엇보다 예술을 통해 거부감 없이 이슬람문화를 수용하고 이해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예술의 힘이다.

빼어난 영상미 연출한 영화제작자

 위로부터 '뮤니스' 싱글채널 12분 2008, '자린' 싱글채널 20분 2005, '마도흐트' 14분 3채널비디오 2004. Film Still Copyright Shirin Neshat ⓒ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위로부터 '뮤니스' 싱글채널 12분 2008, '자린' 싱글채널 20분 2005, '마도흐트' 14분 3채널비디오 2004. Film Still Copyright Shirin Neshat ⓒ Courtesy the artist and Gladstone Gallery, New York and Brussels
ⓒ 국립현대미술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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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사진과 비디오를 하던 네샤트는 2000년 초반부터 50년대 이란의 정치상황을 배경으로 세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3편의 영화를 묶은 '여자들만의 세상'을 선보인다. 이 영화는 2009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 받아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위 사진 순서대로 보면 첫째 주인공은 정치 활동가를 지망한 '뮤니스', 둘째 주인공은 신령한 어머니가 되고픈 '마도흐트', 셋째 주인공은 창녀인 '자린'이다. 혼란한 사회에 사는 이란여성의 복잡한 심리와 디테일한 감정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배경화면은 현장이 체감될 정도로 사실주의적이나 그 흐름은 초현실주의적이다.

이 영화에서 작가가 보여준 페미니즘은 미술평론가 이선영의 말대로 '신화적 원형'이 아니라, '역사적 전형'에서 추출된 여성들이다. 민주투사인 '뮤니스'나 대지신인 '마도흐트'뿐만 아니라 창녀인 '자린'마저도 정치적으로 각성한 잔 다르크였다.

작가는 영화작업을 하면서 비주얼아트의 영역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알게 되었고, 사진에서 하는 개념 만들기와 다르게 여러 팀과 어울려 협업을 통해 이야기 만들기를 배웠고 미술 관련자와 다른 일반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랍의 봄'에서 영감 받은 '왕서(王書)'

 쉬린 네샤트 I 왕서(The Book of Kings) 연작 중 '군중(The Masses)' 36명 2012.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작품을 설명하다
 쉬린 네샤트 I 왕서(The Book of Kings) 연작 중 '군중(The Masses)' 36명 2012.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작품을 설명하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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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왕서'는 2009년 이란의 '녹색운동'과 2010년 아랍전역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을 목격하면서 민중사관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사진 위에 텍스트는 원래 왕을 찬양하는 시였으나 여기선 민중을 찬양하는 시로 바꾼다. 역사의 주인이 왕이 아닌 민중이라는 걸 '아랍의 봄'을 통해 체득한 것인가.

작가는 위 연작에서 사람을 '군중(혹은 민중)'과 '애국자'와 '강도'라는 의미심장한 3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여기서 '강도(The Villains)'는 아마 매국노를 뜻하리라.

'왕서' 연작이 전시되는 방 정면을 보면 다양한 연령층의 인물 36명으로 구성된 '군중(위 사진)'이 있다. 역사의 증인으로 현실을 직시하며 세상을 감시하는 다중들이다. 모델은 여러 계층의 사람이 참여했고 그 중엔 작가가 잘 아는 지인도 있다. 작가도 이 연작을 자신의 정치색을 가장 많이 노출시킨 작품이라고 자평한다.

 쉬린 네샤트 I 왕서(The Book of Kings) 연작 중 역사 다시쓰기, '애국자 로자(Patriots_Roja)' Ink on LE silver gelatin print 153×114×5cm 6명 중 한 사람 2012. ⓒ Courtesy Galerie Jerome de Noirmont, Paris
 쉬린 네샤트 I 왕서(The Book of Kings) 연작 중 역사 다시쓰기, '애국자 로자(Patriots_Roja)' Ink on LE silver gelatin print 153×114×5cm 6명 중 한 사람 2012. ⓒ Courtesy Galerie Jerome de Noirmont, Paris
ⓒ 국립현대미술관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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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실 왼쪽엔 6명의 '애국자' 사진이 보인다. 투옥돼 죽어간 민주열사와 지식인을 추모하며 결연한 표정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이다. 위 사진은 그 중 한 여성이다. 그 위에는 이란 현대작가들이 쓴 고대페르시아어 시가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엔 '강도'가 보이고 그의 몸에는 황제군대가 창으로 주민을 학살하는 모습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자신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 전쟁과 이념을 이용해 국민을 괴롭힌 자의 전형을 형상화한 것이다. 하긴 이런 인물은 언제 어디서나 있었다.

한 대담에서 사회운동가냐 예술가냐를 묻은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으로 글을 맺는다.

"내가 먼저 운동가가 아니라 예술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내가 페미니즘에 접근하는 각도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다. 나는 때론 모든 여성의 대변자와 같은 위치에 선 것이 불편하다. 나는 사회 문제를 알리는 것보다 여성이 겪는 정신적 문제와 그에 맞서는 방식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롭다."

덧붙이는 글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6전시실 및 창고갤러리에서는 2014년 4월 19일부터 8월 3일까지 덴마크 비디오 작가의 '예스퍼 유스트(Jesper Just)'의 <여성의 은밀한 욕망의 투사>전이 열린다. 국내 최초개인전으로 최신작 '왓 어 필링' 등 최근 10여 년간 주요작품 13점 감상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은 표 한 장만 끊으면 전체 전시의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료 4000원 [참고] 국립현대미술관 대표번호: 02-2188-6000 홈페이지: http://www.mmca.go.kr



#쉬린 네샤트#이슬람문화#알라의 여인#베니스비엔날레#베니스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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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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