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조합연맹 (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 ITUC) 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ITUC는 2006년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과 세계노동연맹(WCL)을 합병하여 결성된 세계 최대의 노동조합 단체인데, 이 단체에서 지금 흥미로운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Vote for the worst boss in the world", 세계에서 가장 나쁜 경영자를 뽑는 행사입니다.
ITUC가 선정한 최악의 경영자 9명 중 인터넷 투표를 통해 가장 나쁜 경영자를 가려서 5월 18일부터 24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TUC 세계총회 (ITUC World Congress) 에서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나쁜 경영자는 과연 누가 될까요? 그 전에 후보에 오른 9명의 후보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찾아 봤습니다. 투표사이트 (
http://congress2014.ituc-csi.org/boss) 에 이름, 사진, 재산 및 특이사항과 함께 후보에 오른 이유를 간단하게 적어 놨습니다.
저와 함께 한 명씩 확인해서 누가 세계에서 가장 나쁜 경영자로 선정이 될 지 미리 예측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죠.
첫 번째 후보는 카타르 항공(Qatar Airways)의 CEO 인 아크 바르 알베이커(Akbar Al Baker)입니다. 카타르 항공은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특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합니다. 출산휴가도 없고 결혼 전에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네요.
남자친구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도 있었답니다. "파업의 권리가 없다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 나쁜 경영자들은 궤변을 즐기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쇼핑회사 아마존(Amazon)의 CEO인 제프 베조스 (Jeff Bezos) 가 두 번째 후보입니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팔에 디지털 감시 장치를 차고 일하기 때문에 모든 행동이 다 기록되고 감시의 대상이 된답니다. 아마존의 빠른 배달 뒤에는 기계처럼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있었군요. 노동자들끼리 대화를 하거나 잠깐 한눈을 팔아도 질책을 받는답니다.
세 번째 후보는 골드만삭스그룹(Golman Sachs Group)의 로이드 블랭크파인(Lloyd Blankfein) 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세계금융위기 때 고객에게는 모기지 상품을 권유하면서도 스스로는 모기지 시장 하락에 배팅을 해 많은 돈을 벌었고, 그것을 믿었던 고객들은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이와 관련된 증언을 할 때 모든 것을 고객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을 보였다고 합니다.
네 번째 후보 역시 미국 금융회사의 CEO로 JP모건 (JPMorgan Chase)의 제이미 다이몬(Jamie Dimon) 입니다.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JP모건이 130억 달러의 벌금을 내던 그 해 크리스마스에 다이몬은 직원들에게 카드를 보냈는데, 그 카드에는 값비싼 장식품으로 둘러싼 아파트에서 아무렇게나 테니스를 하는 사진이 담겨 있었답니다. 직원들을 조롱하는 의미였답니다.
다섯 번째 후보는 세계 최대 원자재 무역 회사인 글랜코어(Glencore Xstrata)의 CEO 아이반 그라센베르그(Ivan Glasenberg) 입니다. 글랜코어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권침해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인구의 60%가 하루 1달러 이하의 수입으로 사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구리광산 운영으로 부를 축적하면서도 정작 세금은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비난을 함께 받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비상장회사인 코크인터스트리(Koch Industries)의 CEO 이자 2014년 기준 세계 5위의 부자인 챨스 코크(Charles Koch)가 여섯 번째 후보입니다. 코크는 ALEC(미국입법교류협의회)와 같이 부자와 기업들의 이권을 추구하고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보수단체에 많은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찰스코크재단에서는 일년에 $34,000 를 받으면 세계의 1% 이내에 든다는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미국에서 3인 가정의 경우 기초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48,000 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무력화 하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드디어 한국인 후보입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일곱 번째 후보입니다. 이건희는 2009년에 양도소득세 456억 원에 대한 조세포탈과 횡령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곧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활동 등을 이유로 대통령 단독 특별사면을 받았고 2010년에는 삼성 회장으로 복귀했습니다. 무노조 정책이나 삼성반도체에서의 벌어진 노동자들의 죽음 등을 빼고도 후보가 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여덟 번째 후보는 월마트(Wal-Mart Stores)의 C. 더글라스 맥밀론(C. Douglas McMillon)입니다. 월마트는 관리자들을 시켜 노조활동은 돈 낭비이며 월마트에 손해가 되는 일이라는 걸 노동자들에게 주입시키는 등 노조에 적대적인 기업입니다.
맥밀론은 "정직이 회사의 DNA" 라고 말 하지만, 창업자인 샘 월튼(Walton)은 "난 임금을 적게 주고 그걸로 인해서 우린 성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본은 노동자들에 대한 낮은 임금과 혜택이다" 라고 말했답니다.
마지막 아홉 번째 후보는 글로벌 미디어 그룹인 뉴스코퍼레이션(Newscorp) 의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이 차지했습니다. 머독은 영국 대처 정부 시절, 그의 인쇄소의 노조를 깨기 위해 대처 정부와 손을 잡고 용역을 썼습니다.
인수합병을 통해 폭스뉴스를 포함해서 여러 보수매체들을 손에 넣은 머독은 매체에 실을 화제거리를 찾기 위해 도청을 하다 발각되어 영국에서 청문회에 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청 사실을 몰랐다고 잡아뗐죠.
어떻습니까? 아홉 명의 후보 가운데 누가 세계에서 가장 나쁜 경영자로 선정이 될 것 같은가요? 여러분도 투표에 참여하고 싶으면 링크를 따라 가서 해당 경영자를 선택하면 됩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며 1등만 원하는 이건희에게 1등 안겨 주려고 마음 먹었다면 굳이 투표 안 해도 됩니다. 투표를 하면 현재 결과를 알 수 있는데 이건희가 95%로 압도적인 1위니까요.
전 사실 아홉 명의 후보들의 후보 선정 이유를 찬찬히 읽으면서 화가 났습니다. 후보들 개개인의 행위에 화가 난 게 아니라, 겨우 그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나쁜 경영자 후보로 올라 왔다는 사실 때문에 화가 난 겁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 중 이름이 떠오르는 그 누구를 갖다 대도 그 아홉 명보다 덜 나쁜 경영자가 없을 것 같습니다.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탈세, 횡령, 배임, 비자금 조성, 폭행, 담합, 노조탄압, 정경유착, 산업재해 등과 관련해 자유로운 사람 누가 있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나쁜 경영자 후보 아홉 명보다 훨씬 더 나쁜 경영자가 수두룩한 한국도 오늘이 노동절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은 그런 노동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