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단짝 친구와 교실과 복도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등학생이 초등학생처럼 놀았구나 싶을 만큼 유치했지만, 그때는 그랬다.
따뜻한 봄의 어느 날, 점심시간에 친구와 도시락을 나눠 먹고, 다른 친구들처럼 교실을 들쑤시며 뛰어 다녔다. 그런데, 어제까지도 잘 놀던 그 친구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책상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심장병이 있었던 것 같았다. 바닥에 누워 숨쉬기 힘들어하는 친구를 붙잡고, 왜 그러냐고, 왜 그러냐고, 이 말만 했다. 친구를 끌어 내 품에 안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 사이 같은 반 친구들이 선생님을 모셔왔다. 하얀 얼굴에 금색 안경을 쓴 선생님이 친구를 들쳐 업고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침통한 얼굴을 한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을 때, 마음 한켠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할지 머뭇거리던 선생님의 입에서, 그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뛰어 놀던 그 친구가 이제는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며, 점심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뛰어 놀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선생님이 우셨다. 그날부터 나는 꼬박 일주일을 울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친구의 이름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보다 조금 키가 큰, 까까머리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썼다는 것 밖에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2주가 넘었다. 이국 땅에서 SNS나 뉴스를 통해 접하는 소식은 아직까지도 참담하다. 아니, 화가 난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을 떠나 보내고 살아 남은 단원고 학생들에게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희 잘못은 하나도 없어. 너희는 죄인이 아니야. 살아 남은 것이 죄가 아니야. 그러니, 살아 남았다고 자책하지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주저 앉지마. 문득 문득 슬퍼해도 돼. 하지만, 남은 고등학생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 너희들이 있는 교실은, 떠난 자들이 그토록 머물고 싶어했던 곳이야. 그들의 삶까지 두배로 더 열심히 살아. 잊지마. 떠난 자들을 잊지 마. 2014년 봄,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잊지마. 다시는 너희들이 경험한 것을 너희의 동생들이나 미래의 자녀들이 겪지 않도록 해. 미안해. 한국의 다음 세대라고 추켜 세우면서,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이라고 큰소리 쳐놓고, 이토록 슬픈 경험을 하게 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20년이 지나도, 가끔 내 곁에서 삶을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던 그 친구가 기억난다. 어쩌면, 내 품 안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그 친구가 원했던 것은, 이 땅에서 내가 그의 몫까지 살아가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산다.
덧붙이는 글 | 생존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른으로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