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송전탑 공사가 진행중인 밀양 부북면 위양리 127번 움막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적는다. - 기자 말

밀양 송전탑 공사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7번 철탑 현장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으면서, 129번 철탑(원안) 현장 쪽에 새로 움막을 설치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7번 철탑 현장에 움막을 설치해 농성하고 있으면서, 129번 철탑(원안) 현장 쪽에 새로 움막을 설치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봄이다. 새싹이 움트는 생명의 계절이다. 그러나 영국의 시인 엘리엇은 장편시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3월을 뜻하는 'March'의 어원 역시 전쟁의 여신인 'Mars'라고 한다.

4월 14일, 누군가에게는 벚꽃구경을 준비하는 따뜻한 봄날이었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한겨울 한파보다 더 춥고 시린 그런 날이었다. 밀양의 봄이 그러했다.

4월 13일 부북면 위양리에 위치한 127번 움막을 찾았다. 이곳은 한전이 아직 공사에 들어가지 못한 현장 6곳 중 한 곳이다. 늦어도 4월 말부터 공사를 재개하려는 한전은 이미 3월 31일 각 농성장에 공고문을 붙였다.

공고문에는 "불법 시설물인 움막은 송전탑과 송전선로 건설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주어 철거가 불가피하다, 4월 14일까지 움막 등을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 한전이 직접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쓰여 있다. 다른 움막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주민과 연대자들은 14일 이후로 예상되는 한국전력의 강제철거를 우려하고 있었다.

4월 14일 월요일, 오전 9시~ 9시 28분

아침이 밝았다. 해가 뜨고 나면 바로 강제철거를 하러 들어올 수 있다는 말에 오전 6시 전에 모두가 기상해서 아침을 먹었다. 위 움막으로 이어진 산길로 들어올지, 아래 움막으로 이어진 여러 갈래 길로 들어올지 알 수 없었다.

저마다 맡은 장소에서 한전이나 경찰 등 낯선 이들이 나타나지 않는지 경계를 섰다. 오전 9시에 6명의 남자들이 127번 농성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주민에 따르면 공사 감독을 비롯하여 송전탑 건설과 관계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공사현장을 확인하겠다며 올라오고 있었고, 주민들은 그들을 저지했다. 28분 동안 실랑이가 벌어졌으나, 주민들과 연대자들의 강한 저지에 그들은 돌아갔다.

오전 9시 48분

한전 직원들이 돌아가고 나서야 주민들은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휴식을 깨버린 것은 헬리콥터였다. 평소 자재를 실을 때보다 더 낮게 비행하여 바로 옆 사람의 말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소음을 일으켰다. 헬리콥터는 무거운 공사 자재를 실은 상태에서 사람들이 있는 움막 위를 가로질러서 갔다. 저 위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4월 15일 화요일, 오전 10시 18분~10시 29분

여경 2명, 사복 경찰 1명을 포함한 총 12명의 경찰이 127번 움막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앞장서던 정보과 형사는 연신 "공무집행 중"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언급한 공무집행이 무엇인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고, 그저 움막을 보러왔다고만 했다.

20분도 채 안 되는 순간에도 인권을 침해하는 모습은 여럿 포착됐다. 3명 이상의 경찰들은 개인 소유의 스마트폰으로 증거수집(아래 채증)활동을 계속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개인 소유의 스마트폰으로 행해지는 채증활동이 초상권 및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한다는 이유로 개선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관등성명을 대지 않고 개인의 스마트폰으로 연대자와 주민들을 얼굴을 찍고 있었다.

심지어는 채증 활동을 그만두라고 항의하는 연대자에게 경찰 한명이 접근하여 몸을 부딪친 뒤, "폭행죄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주민들을 보호하는 연대자와 영상 활동가들이 있어서인지 경찰들은 무리하지 않고 돌아갔다. 그 와중에도 경찰은 오묘한 말을 남기고 갔다.

"내일 아침에 봅시다!"
- 밀양시, 행정대집행 계고장 발부

'14일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강제로 철거하겠다'는 한전의 경고는 사실상 법적 효력을 획득하지 못한 경고문에 불과했다. 한국전력이 움막을 강제로 철거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이 거주하는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내 소유의 주차장에 누군가가 함부로 차를 주차한다고 해서, 함부로 그의 차를 부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밀양시가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신청하거나, 한전이 법원에 움막에 거주하는 주민의 퇴거 및 움막 철거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면 공권력에 의해 강제 철거가 가능해진다. 이날 발부한 행정대집행은 바로 공권력을 얻기 위한 전자의 방법이었다.

한전의 철거 경고문의 한계를 밀양시는 재빠르게 보완한 것이다. 밀양시청은 4월 15일 자로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각 농성장에 보냈다. 계고장은 '산림 및 도로구역 안에 허가 없이 무단으로 설치한 움막 및 컨테이너 등 시설물을 4월 22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 위 계고에 대해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한전과 밀양시에 의해 규정된 '현저히 공익을 해칠 것으로 인정되는' 밀양 주민들의 목소리는 법치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4월 16일 수요일, 오전 10시 57분

한국전력공사는 밀양 구간의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송전철탑 공사를 벌이고 있는 속에, 127번 철탑 현장에 있는 움막농성장에 지난해 10월 17일 오후 배영근.박다혜 변호사가 찾아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밀양 구간의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송전철탑 공사를 벌이고 있는 속에, 127번 철탑 현장에 있는 움막농성장에 지난해 10월 17일 오후 배영근.박다혜 변호사가 찾아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한전관계자 5명이 아래 움막으로 이어진 등산로로 올라왔다. 경찰 신분이 아님에도 그들 중 한 명의 사내는 본인 소유의 스마트폰으로 채증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후 1시 16분

국가인권위원회 소속 인권조사위원단이 방문했다. 전날 인권조사위원단 안에 정체불명의 사복경찰이 끼어 있어서 주민들은 그들의 신분확인을 꼭 하라고 말했다. 그들의 방문에도 주민들과 연대자들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장면이었다. 인권 침해 현장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주민들에게 쓴소리를 듣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주민들은 여전히 그들을 '암행어사'라고 불렀다.

처음 그들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주민들은 억울하게 당했던 순간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바뀌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경찰들은 주민이 아니라 한전을 위해 공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는 인권관련 단체들이 매주 1회 인권침해 보고서를 제출하였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주민들은 이날 다시 힘을 내어 한전의 직원들이 할머니의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할매가 농성장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질 것"이라고 겁박한 이야기와 공무원을 준비하는 손자에게 "넌 절대로 공무원 안 될 것"이라고 협박한 이야기들 등을 인권위원회에게 다시 전달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앗아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4월 17일 ~ 23일

특별히 한전 직원이나 경찰이 나타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가슴 아픈 사고 때문에 경찰과 한전이 공권력을 투입하는 데 눈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대화나 협상을 위한 평화가 아니라 일시적인 유예일 뿐이었다. 낮에는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그늘에 자리 잡아 경계를 섰고, 밤에는 불침번을 서며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4월 24일 목요일

한동안 잠잠하던 이곳에 3~4분에 한 대꼴로 다시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리는 컸다. 127번 위와 아래의 움막 위를 날아다니며 주민들과 연대자들의 동태를 파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도 헬리콥터는 공사를 위한 자재를 실은 채 우리들의 머리 위를 거쳐 가고 있었다.  

4월 29일 화요일, 밀양에서의 마지막 밤

어쩌면 이 글은 언론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객관과 중립적인 시각을 결여한 기사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4월 12일부터 30일까지 밀양의 127번 농성장에서 지내면서 밀양 송전탑 문제를 진보나 보수라는 이념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이것은 철저하게 상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전력 수급이라는 공익을 위해서 소수의 할매, 할배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생명권, 재산권, 인권 등을 요구하는 그들의 합리적인 목소리는 님비라는 이름으로 덧칠되었다. 물론 때로는 공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라도 해당 주민들과의 대화는 필수다. 대화를 통해 그들에게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밀양의 문제는 민주적인 절차와 대화 없이 밀양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는 데 있다.

거의 유일한 대화였던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주민은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5개 면의 인구 2만 1069명 중 136명에 불과했다. 무늬만 대화였을 뿐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최근 밀양법으로 알려진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법' 역시 대화와 협상이 아닌 오로지 보상이라는 돈으로 문제를 덮는다는 문제가 있다.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금 나는 서울로 간다. 이 모든 짐을 밀양의 조그마한 할매, 할배들에게 던져버리게 될 것이다.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5월 1일

나는 지금 서울에 있다. 예상대로 모든 짐과 부담을 밀양 주민에게 던져버리고 도망치다시피 올라왔다. 그러나 마음만은 여전히 밀양에 있다. 밀양에서 또 다시 우울한 소식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대책위에서 낸 행정대집행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결국 법원이 기각했다는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25일)에 발표해야 하지만, 미뤄지다가 4월 30일에서야 발표가 났다. 이 결정으로 밀양시는 4개 농성장에 대해 언제든지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주민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대화를 열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의 성격이 컸다.

자유를 빼앗긴 밀양에 봄이 올 수 있을까. 아주 조그마한 희망의 씨앗이라도 지키고 싶다. 그래서 이번 주말 다시 밀양으로 간다. 이름 모를 그대에게 어떤 대학생이 말한 것처럼 묻고 싶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번 황금연휴를 밀양에서 보낼 생각은 없으신지요. 산 좋고 공기 좋고 사람 좋은 밀양을 응원하러 저와 함께 그곳으로 가지 않으실는지요.'


태그:#밀양, #행정대집행, #127번 농성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글을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