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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대의 문명이 공존하는 경복궁 담자락길 여행.
과거와 현대의 문명이 공존하는 경복궁 담자락길 여행. ⓒ 김종성

종로의 핫플레이스(Hot Place) 서촌 동네와 북촌 동네 사이의 경계처럼 자리한 경복궁. 조선시대 왕의 가족이 살던 궁궐이자 현대엔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가 인접해 있어 그런지 주변에 유무명의 명소들이 참 많다. 경복궁의 담자락을 따라 영추문, 청와대 앞의 신무문을 따라 삼청동 삼청공원까지 자전거 타고 달리기 좋은 길이 이어져 있어, 흥미로운 자전거 도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수도권 3호선 전철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내리면 경복궁 담자락길 여행이 시작된다. 경복궁 길에서 맨 처음 여행자를 맞이하는 것은 경복궁 안에 자리한 '국립고궁박물관'. 기자가 좋아하는 것이 이곳에 살고 있어 페달을 멈추게 된다.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 경복궁의 너른 마당에서 살고 있는 커다란 고목 은행나무. 그늘이 좋아서인지, 나무의 넓은 품이 좋아서인지 이 나무 밑엔 늘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몇 년 전 가을 경복궁에 들렀다가 주변 풍경까지 노랗게 물들일 정도로 샛노란 은행잎으로 풍성한 이 나무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이 궁궐에 종종 와보았지만 족히 수 백 살은 되어 보이는 노거수 나무를 그동안 왜 보지 못했을까. 나무는 늘 옆에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가 맞는 듯싶다. 하지만 나무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도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며 시간의 흔적을,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자신의 몸에 새긴다. 굵은 주름이 진 고목나무의 풍채가 편안하기도 하고 경외심을 느끼게도 한다. 지구에서 3억 년을 살아 왔다는 살아있는 화석나무답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과 다른 나무의 아름다움은 나이를 먹을수록 늙어갈수록 빛을 발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괜시리 슬퍼지고 서러워지는 인간은 그래서 나무가 더욱 좋아지나 보다. 세상에 나이가 들면서 혹은 늙어 가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밖에 없는 것 같다.

270년 동안이나 폐허로 방치된 궁궐 경복궁

 경복궁의 영욕을 목도하며 살아왔을 노거수 은행나무.
경복궁의 영욕을 목도하며 살아왔을 노거수 은행나무. ⓒ 김종성

곧이어 경복궁의 서문 영추문(迎秋門)과 마주쳤다. 가을을 맞이한다는 문의 이름이 운치 있다. 아마 경복궁의 여러 출입문 가운데 제일 멋스러운 이름일 듯싶다.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고종 때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다시 건립하였다.

서울에 남아있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 경희궁의 다섯 궁궐 가운데 경복궁은 파란만장한 조선왕조의 역사를 대표하는 법궁(法宮)이다. 1592년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 와중에 불타 버리는 불운을 맞은 후, 역대 왕들은 경복궁을 불길한 궁궐이라 여겨 고종5년 1868년까지 270년 동안이나 폐허로 방치했다. 이토록 오랜 시간 버려진 경복궁을 중건한 이가 바로 흥선대원군이다.

어렵게 중건된 경복궁은 조선이 나라를 잃어버리면서 다시금 일본인들 손에 의해 산산조각 파괴되는 운명을 맞았다. 1895년 일본군 등이 경복궁에 침입해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 고종이 다시 정무를 보기 위해 돌아온 곳은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이었다. 고종의 머릿속에는 경복궁은 불길한 궁궐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고 그 후 십 수 년 동안 국왕은 경운궁에 거처했다. 그사이 경복궁은 방치되어 점차 잡초가 무성한 퇴락한 궁궐로 변해갔다.

궁궐에 기대어 사는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을 영추문 건너편엔 단층의 주택들과 미술관, 카페 등이 마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 길가에 있는 진갤러리와 보안여관이 눈에 띄었다. 두 곳 모두 각각의 개성이 담긴 예술작품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전시하고 있어서 늘 고맙게 감상하곤 하는 미술 전시장이다. 보안여관은 이름대로 원래 여관이었으나 얼마 전부터 이름과 내부 형태를 그대로 살린 독특한 미술관이 되었다.

한적함과 삼엄함이 함께 하는 청와대 앞길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광코스가 된 청와대 앞 광장과 경복궁 북쪽의 신무문.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광코스가 된 청와대 앞 광장과 경복궁 북쪽의 신무문. ⓒ 김종성

 경복궁 담자락의 한적함과 정복 경찰들의 삼엄함이 함께 느껴지는 청와대 앞 길.
경복궁 담자락의 한적함과 정복 경찰들의 삼엄함이 함께 느껴지는 청와대 앞 길. ⓒ 김종성

드문드문 차량들만 지나갈 뿐 한적해서 좋은 경복궁 서쪽 담자락을 따라 머리 위의 북악산을 쳐다보며 쭉 달리다보면 서울 시내에서 검문을 받게 되는 이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곳에 검문소가 있는 이유는 저 앞 가까이에 청와대가 있어서다. 정복을 갖춰 입은 경찰관들이 손을 들어 자전거 여행자를 멈춰 세웠다,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다행히 검문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위압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질문을 하는 것 같다. 괜히 긴장해서 더듬거나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지나가는 길입니다" 하거나 길이 이어지는 건너편의 동네인 "삼청동이요" 하면 무사통과.

다시 경복궁 담장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사복을 입었으나 어색한 자세로 인해 경찰임이 티가 나는 무전기를 든 아저씨들을 지나치게 되고, 곧이어 청와대 앞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너머로 커다란 병풍처럼 우뚝 서있는 인왕산과 북악산 모습이 든든한 수호신 같다. 이 청와대 앞 광장엔 내국인보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훨씬 더 많은 걸 보면 서울의 주요 관광코스인가 보다. 저마다 청와대와 북악산, 인왕산과 정복을 입은 경찰관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광장엔 한국관 건물이 있어서 예쁜 기념품을 팔기도 하고 한국을 소개하는 사진과 영상물, 전시물을 볼 수도 있다.

광장을 돌아가면 경복궁 북쪽의 또 다른 출입문인 '신무문(神武門)'을 만나게 된다. 이곳도 청와대와 북악산이 잘 보이는 위치라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주로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은데 사진 촬영 때마다 서로 다른 언어로 얘기하는 말소리가 뒤섞여 들려 재미있다. 신무문을 지나 이어지는 청와대 앞길은 관광코스가 아닌지 다시 경복궁 담자락길을 따라 한적한 보행로와 차도가 이어진다.

경복궁 돌담의 오래된 옹벽 틈 사이에 피어난 노란 들꽃 애기똥풀이 더욱 귀엽다. 더 이상 검문은 하지 않지만 곳곳에 서있는 사복경찰 아저씨들이 무전기에 대고 뭐라 말을 하는데, 주변에 아무도 자전거 탄 사람이 없어서인가 "자전거 탄 수상한 사람이 지나간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숲속 오두막 같은 작은 도서관

 숲속의 작은 오두막 같은 삼청공원 숲속 도서관.
숲속의 작은 오두막 같은 삼청공원 숲속 도서관. ⓒ 김종성

여행의 마무리 장소이자 삼청동의 청정 명소 삼청공원은 북악산으로 들어서는 삼청동의 언덕 끝자락에 있다. 1940년에 생겨난 삼청공원은 서울에서 마실 수 있는 약수터가 있는 몇 안 되는 오래된 공원이다. 수목이 울창해 청설모가 나무 가지 위로 뛰어 다니고, 한양도성 성곽길로 이어지는 길도 나있다. 더구나 얼마 전에 공원 안에 생겨난 '숲속 작은 도서관'은 더욱 삼청 공원을 빛나게 해주고 있다.

숲속의 작은 오두막 같은 분위기의 아담한 도서관은 어디에서도 숲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게 설계한 노력이 돋보인다. 책상과 의자가 놓인 입식 공간과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좌식 공간이 함께 있어 아이들도 편안하게 책과 가까이 할 수 있게 했다. 이런 곳이 서울 시내에 흔한 카페가 아닌 도서관이 되었다는 게 고맙게 느껴졌다. 채광이 좋은 창가에 앉아 책을 볼 수 있게 한 도서관은 작지만 자주 가고픈 도서관이다. 커피를 마시며 공원 숲이 보이는 큰 창문 앞에 앉았다. 창으로 스며들어오는 따가운 햇볕은 어느 새 여름을 알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자전거여행#경복궁#영추문#청와대#삼청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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