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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윤칠상(56)씨가 묵었던 세월호 4층 중앙 객실 부분은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인의 객실이 섞여 있었다. 윤씨의 방은 오른쪽 뒤에서 두 번째(B-27)였고, 바로 옆 방(B-28)은 단원고 여학생 방(2반 4명과 3반 4명)이었다. 4월 16일 오전 윤씨가 객실 침대에 누워있는데, 배가 갑자기 기울기 시작했다. 윤씨는 "처음에는 파도가 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초기에 한명이 담배를 핀다며 방에서 나와 우측 갑판으로 나갔다. 나머지 3명은 그대로 방에 있었다. 꽉 잡고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 방송도 나오는 터였다. 방송이 세 번인가 나온 후 실내등이 나갔고, 잠시 후 붕 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꺼졌다. 그는 "창문이 있는 방이어서 불이 나가도 보이기는 했지만 잘 안보였다"면서 "창문이 없는 안쪽 객실은 불이 나가면 거의 안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점점 더 기울었다. 일행 2명이 복도로 나갔다. 창 쪽 박스 문이 열리며 구명조끼가 쏟아졌다. 윤씨는 구명조끼와 신발을 복도로 던져줬다. 일행이 "형님, 커튼도 뜯어주세요"라고 말했고, 그는 커튼 하나를 뜯어 복도로 나갔다.

윤씨는 당시 복도에 이미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동생이 옆방 문을 위로 힘껏 열었더니 방 안에 여학생 한명만 있었다"면서 "여학생을 끄집어냈고, 그 방에서 커튼 2개를 더 뜯어서 3개를 묶었다"고 증언했다.

미리 한명이 우측 갑판으로 나가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갑판으로 나가는 길은 이미 경사가 급해져 그냥은 올라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들은 묶어 연결한 커튼을 위에 있는 사람에게 던졌다. 위에서 커튼을 잡고 한명이 먼저 올라갔다. 그 후 위에서 두명이 커튼을 잡고, 아래에서 한명이 미는 방식으로 복도에 있던 사람들을 위로 올렸다.

"몇 명 올라갔을 때 커튼이 끊어졌다. 물 호스로 바꿨지만 금세 늘어났다. 세 번째로 소방호스를 이용했다. 위에서 잡고, 아래에서 밀고."

이렇게 4층 우측 갑판으로 올라가 헬기로 구조된 사람들이 윤씨에 의하면 약 12~13명이다. 그는 "당시 복도에 학생들이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면서 "아마 방에서 안나오고 꽉 잡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방에서 나와 탈출하기까지 약 20분 걸렸다, 나오는데 뒤에서 3층에 물이 다 찼다는 소리가 들리더라"면서 "초기에 높은 곳으로 이동하라고 했으면 그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윤씨의 증언을 기록한 후, 생존자 명단을 확인했다. B-27호의 5명은 모두 살았다. B-28호 여학생 8명은 윤씨 일행이 빼냈던 학생을 포함해 2명만 생존했다.


태그:#세월호, #생존자,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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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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