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메트로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메트로는 올해로 개통 40년을 맞이하는데 지난 40년간 이러저러한 사고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이번과 같은 지하철 추돌사고는 처음 있는 일이다. 발표에 따르면 사망자는 없었지만 249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확인되어서 규모가 꽤 큰 사고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모든 국민들이 슬픔과 분노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서울시 한복판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때문에 더욱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급기야 서울시장이 사과를, 서울메트로 사장은 사의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하철 추돌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신호오류로 판명되었다. 다른 노선과 달리 2호선에는 ATS와 ATO라는 두 개의 신호체계가 병설되어 있는데, ATS 신호체계의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한 부분에서 오류가 났다는 것이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의 발표다.
그런데 경찰은 세월호 참사 때와 달리 서울메트로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적으로 실시하였고, 신호 오류뿐만 아니라 몇 가지 인적오류가 더 있었다며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사전에 신호 오류를 감지했음에도 통상 오류로 판단하고 방치했으며, 앞 열차가 90초간 역사에서 지연되었지만 관제에 제대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지만 근본적인 원인 규명보다는 다분히 희생양을 찾으려는 조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빈번한 지하철 사고, 가장 큰 문제는 차량 노후화
하지만 신호오류만이 아니라 지하철의 안전운행을 위협하는 요소는 곳곳에 존재한다. 지난 2003년 2월 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참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량수송수단인 지하철의 사고는 특성상 엄청난 인명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운행을 위협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보다 심층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안전운행을 위협하는 주요 요소로는 크게 시설 및 장비의 문제, 인력의 문제, 정책적인 문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우선 시설 및 장비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차량 노후화 문제다. 현재 서울메트로의 경우, 보유한 차량 중에 16년 이상 노후화된 차량이 60%가 넘고 21년 이상 된 차량도 40%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후화된 차량에서 사고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은 상식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차량 노후화를 유발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열차의 내구연한 폐지다. 당초에 열차의 내구연한은 15년으로 알려졌으나 1996년 도시철도법에 전동차 내구연한이 신설되면서 25년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2009년 도시철도법을 개정하면서 40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되었으며, 2014년 3월 19일부터 시행된 도시철도법에 의하면 내구연한 조항 자체가 삭제됨으로써 사실상 무기한 사용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지만 열차의 내구연한을 무한정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른 승용차도 10년 이상 타는 경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는 점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비인력 감축 위해 정비 주기 증가시켰다?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열차의 정비주기가 오히려 늘어났다는 점이다. 열차의 일상검사, 월상검사와 같은 경정비는 물론 중정비 주기가 연장되었다. 노후차량이 증가하고 내구연한이 증가한다면 오히려 정비주기를 단축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정비주기는 늘어나고 그와 동시에 정비인력은 줄었다. 사실상 정비인력을 감축하기 위해서 정비주기를 증가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열차뿐만 아니라 지하철 이용승객의 안전을 위해 역사마다 설치된 스크린도어에 대한 점검도 시급하다. 스크린도어의 오작동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으며 2호선 추돌사고의 경우에도 앞 열차의 출발이 지연된 이유는 스크린도어의 오작동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스크린도어로 인한 인명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하철 이용 시민들의 편의시설인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의 오작동도 적지 않다. 특히 에스컬레이터의 경우 역주행으로 시민들이 부상당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서울메트로 역사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분석해보면 시공업체가 16개, 설치기종도 39개 종류나 된다. 심지어 한 역사에서도 서로 다른 업체가 다른 종류의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한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에스컬레이터 관리나 부품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져 사고 발생은 물론 사후조치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번 상왕십리역 열차추돌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신호 오류로 밝혀졌다.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이미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신호오류가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더 주목해야 한다.
앞서 밝혔듯이 다른 노선과 달리 2호선에는 신호체계가 ATS와 ATO로 이원화 되어 있다. 이처럼 이원화된 신호체계가 존재하는 경우는 2호선이 유일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다른 신호체계가 병설될 경우 상호간섭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되는데 노조관계자에 따르면 2호선에서 ATO가 설치된 이후인 2006-2009년 사이에 신호오작동이 상당히 많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지하철은 역사에도 안전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안전을 위협하는 두 번째 요소는 인력의 문제다. 무엇보다 인력부족의 문제가 심각하다. 안전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점에서 인력의 문제는 안전의 핵심적인 요소다. 국내에서 운행되는 지하철은 대부분 1인 승무를 하고 있다. 최근 2년간 도시철도공사에서 기관사가 3명이나 연이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1인 승무는 공황장해를 초래하고, 비상시에 대응을 어렵게 한다.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이 참사로 확대된 원인 중에 하나로 1인 승무가 지목된 바 있다. 이번 상왕십리 열차추돌 사고에서 1인 승무였을 경우 대응이 더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런데 2호선에 ATO 신호체계가 추가된 것은 1인 승무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인력감축을 위해 ATS 신호체계보다 발전된 ATO 신호체계를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순환선인 2호선은 운행시격이 짧고, 혼잡도가 높으며, 곡간구간이 많아서 현실적으로 1인 승무의 도입이 어렵게 되었고 결국 ATO 신호체계로의 완전 교체가 중단되면서 두 개의 신호체계가 병행된 것이 결과적으로 추돌사고를 초래한 셈이다.
한편 혼잡도가 높은 한국의 지하철은 역사에도 안전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인력부족으로 1인 역무로 운영되는 역사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스크린도어의 오작동이나 에스컬레이터의 오작동에 대한 신속대처가 어렵고 빈발하는 민원에도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또한 정비인력도 마찬가지다. 열차의 정비주기가 늘어난 이유는 사실상 인력감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열차의 정비주기가 늘어나면서 정비인력이 감소되었다는 게 이것을 반증한다. 그리고 인력감축에 따라 당연히 외주용역 범위가 확대되고 있으며 외주용역시 최저가 입찰제가 시행되고 있다. 최저가 외주용역이나 비정규직으로 안전을 담보하기란 쉽지 않다.
세월호 선원들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이었다는 점에서 사명감이나 직업윤리를 강제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충분한 인력은 안전의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교육훈련을 통해서 사고를 대비하고 사고발생시 대처능력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충분한 교육훈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만연한 안전불감증 뿐만 아니라 인력부족하고도 연동된다. 충분한 대체인력이 없어 교육훈련을 제대로 실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면 정책적인 변화 필요안전을 위협하는 세 번째 요소로 정책적인 측면을 들 수 있다. 차량 노후화나 인력부족의 문제는 결국 정책적인 결정사항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모든 가치의 기준을 수익성, 비용절감에 두고 있다. 그 결과 안전위주의 경영보다는 비용절감 위주의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기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영평가'는 계량적 지표를 중심으로 수익성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안전을 중요한 변수로 취급하지 않는다. 때만 되면 불거지는 낙하산 인사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 비전문가들이 경영진으로 내려오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1:29:300의 법칙이 있다. 1931년 미국 보험회사 관리감독자 하인리히가 주장해서 '하인리히 법칙'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큰 사고 한 건이 발생하기 전에 경미한 사고가 29건 그리고 사고징후가 300건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고징후나 경미한 사고는 중대사고의 전조라는 점에서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예산을 핑계로 이를 외면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야말로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코레일(철도공사) 소속 지하철차량에서 5건의 사고가 연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가 크다. 즉각적인 조사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더불어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면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사고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이 아닌 조직적인 책임을 입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는 지난 1987년 193명이 사망한 여객선 헤럴드 오브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사고 및 1997년의 철도사고 이후 유가족들이 나서서 기업(기관/법인)의 사고에 대한 조직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률의 입법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연히 기업 측에서는 높은 안전을 확보하려면 많은 안전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격렬하게 반대하였지만 10년 동안의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2007년 기업(기관/법인)의 사고에 대한 조직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률이 입법화 되었다. 그런데 사고에 대한 기업(기관/법인)의 조직적 책임을 묻는 법률이 입법되고 나서 일반기업의 사고는 20%, 교통(철도, 해상 등)관련 기업의 사고는 30%가 감소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자극을 받아서 일본에서도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진보적인 전문가(교수, 변호사)를 중심으로 영국과 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입법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2013년 NHK에서는 대대적 특집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반짝 관심만으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한편 한국사회의 조직문화 개선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은 물론 정부에서도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추궁하고 징계를 위주로 하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원인규명이나 구조보다는 징계를 우선적으로 거론한 것도 그러한 조직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직문화에서는 경미한 사고가 발생해도 징계를 우려해서 숨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래서는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징계 추궁보다는 원인규명이 우선되는 조직문화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대형사고가 나야 비로소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그 때만 반짝 관심을 표명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되돌아간다면 한국사회는 결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래왔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대형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행정기관을 비롯해 국가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겠지만 담당 경영진,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그리고 시민사회도 이번 사고의 교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나상윤 기자는 공공교통 네트워크(준) 정책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