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죠.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죠. 그런 모습은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인 수가 많은 대형 교회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지만, 중소형 교회들은 그 반대 형국을 띠고 있기 때문이죠.
대형 교회들은 그만큼 풍성한 마케팅 전략을 갖고 있죠. 설교나 성경공부나 다른 프로그램들도 교인들에게 맞춤식 서비스를 합니다. 교인들의 편의를 위해 높은 빌딩과 주차장을 확보하고, 먼 거리에서도 쉽게 오갈 수 있는 교통편까지도 마련해 놓고 있죠.
그에 비해 중소형 교회들은 그럴 여력조차 없습니다. 담임목사 혼자 설교나 성경공부에 뛰어들어야 하고, 몇몇 교인들과 함께 직접 전도활동을 펼쳐야 하죠. 그러니 교회의 자체 건물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고, 교인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도 역부족이죠.
그런 논리로만 생각한다면 교회가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그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수평이동을 통한 교인 쟁탈전이라든지, 문어발 경영을 닮은 지교회 설립이라든지, 담임목사직 세습과 목회자의 황제경영이라든지, 초대형 건축을 위한 대규모 재정지출과 차입경영이 그런 모습이기 때문이죠.
잘 나가는 사람 리더로 세우는 교회어디 그뿐인가요? 한국교회는 대형화를 위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리더로 세우는 경향이 많죠. 사회적으로 출세한 유력인사들과 경제적으로 성공한 부유층 인사들을 교회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앉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죠. 더욱이 특별한 예배 때마다 유명한 정치인들을 동원하여 자리를 베풀어 주기도 하죠.
한국교회는 그렇게 자본에 물들어 있습니다. 맘몬을 숭배하는 모습을 넘어서서 맘몬에 잠식당한 꼴이라 아니할 수 없죠. 이런 때에 과연 어떻게 해야만 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사는 길이 맘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일까요?
"로욜라 대학의 구약학 교수인 로버트 누즈도 잘 지적한 것처럼, 성경은 사적 소유권의 절대성이나 부를 무한대로 축적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즉, 누구든지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권리가 있다는 포용적인 개념이다."박득훈의 <돈에서 해방된 교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가치가 그것이죠. 자본주의 속성에 따라 한국교회가 나아갈 게 아니라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질 때 가능하다고 역설하죠.
일례로, 이 책에서도 밝혔지만, 2007년 7월 8일 상암월드컵 경기장서 '2007년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했었죠. 그때 10만여 명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었죠. 그런데 바로 그 집회장 아래 홈에버 매장에서는 대표적 기독교 기업인 이랜드 그룹의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규탄하는 농성이 벌어졌었죠.
그야말로 역설적인 모습이죠. 그런데 나도 그때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경기장 안에서는 찬송과 기도가 열정적으로 울러퍼졌고, 입구 한 켠에서는 농성이 한창이었죠. 그때 경기장 중심에는 사랑의 교회 고(故) 옥한음 목사가 설교했고, 대량해고를 규탄하는 그 중심에는 사랑의교회 시무장로이자 옥한음 목사의 애제자였던 박성수 회장이 놓여 있었죠.
"이랜드 경영진의 입장에선 무척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엄격하게 판단하면 이는 땀 흘린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의 상당 부분을 교회나 사회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그 영광은 실질적인 차원에서 이랜드와 이랜드의 최고 경영진에게로 돌아간다."(168쪽)그게 실은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죠. 겉으로는 사랑을 외치지만 속에서는 공의가 실종돼 있다는 지적 말입니다. 사랑 없는 공의가 폭력에 지나지 않고, 공의 없는 사랑이 맹목적이기 쉬운데,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한국교회가 그런 꼴을 지향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 책은 더 적나라한 지적도 빼놓지 않습니다. 목회자들은 성공한 교인이 거액을 헌금하면 그 취득 과정은 상관치 않고 하나님을 잘 믿어 축복받은 거라며 치켜세운다고들 하죠. 교인들은 또 그런 목회자를 '은혜로운 목회자'라며 잘 따르고 있고요.
더욱이 교인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를 일부 목회자들에게 나눠주는 까닭에 더 바른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대형교회의 경우 일부 교인들이 목회자들에게 좋은 자동차, 좋은 집, 목회 사례비보다 훨씬 다양하고 큰 지출권 등을 선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니 말이죠.
물론 한국교회에는 불의에 대해 공의롭게 대처하는 목회자와 교회도 꽤나 있습니다. 공의 없는 사랑이 맹목이요 방치임을 알기에, 그 길을 바로잡고자 스스로 공의로운 길을 걷는 목회자와 교회들 말이죠. 뿐만 아니라 자기 믿음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혹사시키는 자본주의를 벗어나서 참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자기 살을 깎는 목회자와 교회도 많죠.
그래서 그랬을까요? 교회가 맘몬에서 해방될 수 있는 해법으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말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기쁨을 나눈 것처럼, 교회가 자본주의에 진정으로 해방되는 것도 사람이 변화될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하죠. 진정한 개혁은 구조보다도 실로 사람이 우선하는 게 틀림없을 테니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돈에서 해방된 교회 - 교묘한 맘몬 숭배에서 벗어나는 길| 박득훈(지은이)| 포이에마| 2014년 4월|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