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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면 볼 수 있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 아틀라스 산맥 풍경 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면 볼 수 있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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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만난 20살 어린 소울메이트


잠결에 빗소리가 들려와 벌떡 일어났더니 수영장 물이 출렁이는 소리였다. 수영장도 있고 시설도 꽤 괜찮은 숙소였지만, 사막투어를 위해 일찍 나서야 했기에 잠만 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른 새벽이라 아직 광장은 어두웠고, 어젯밤과 달리 사람 한 명 없었다. 계약했던 사무실 앞에서 가이드를 만나기로 했는데, 사무실의 위치가 기억나지 않는다. 갑자기 젤라바를 입은 남자가 다가와서 손에 들고 있던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하더니 우리를 승합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이 차를 타는 게 맞는 건지 걱정이 됐지만 기다리고 있으니 여행객들이 한두 명씩 모인다. 리스본에서 만났던 한국인 두 명과 새로운 한국인 세 명, 일본인 두 명, 마지막으로 서양인 부부 두 쌍이 차에 오르자 사막으로 출발한다.

마라케시를 떠나 한 시간 정도 달리니 비가 내린다. 평지에서 비가 내리면 아틀라스 산맥에는 눈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사막투어를 위해서 모로코까지 어렵게 왔는데 제대로 보지 못 하고 가게 된다면 정말 낭패가 아닌가.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날씨는 좋아지는 듯했다.

어제 마트에서 산 간식거리를 나누어 먹으며 승합차에 같이 탄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중 앞자리에 앉은 Y는 리스본에서 같은 숙소에 머물렀고 여행 내내 마주쳐서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다. Y와는 20살 이상 차이가 나지만 여행지이기 때문일까, 대화를 나누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Y는 좁은 좌석에서 불편하게 뒤를 돌아봐야 했지만 우리는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수다를 떨었다.

여행을 와서 계속 긴장하고 있었던 차에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한바탕 신나게 수다를 떨다 보니 불편한 차 안에서의 시간이 잘도 흘러간다.

눈 덮인 아틀라스 산맥
▲ 아틀라스 산맥 눈 덮인 아틀라스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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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보니 저 멀리 눈 덮인 산이 보인다. 눈 덮인 산봉우리를 아프리카에서 보게 되다니! 산이 점점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차는 어느새 산 위를 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오르고 있는 이 산이 그 유명한 아틀라스 산맥이란다. 굽이굽이 구부러진 산길을 돌 때마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려 멀미가 날 지경이었지만,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을 담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아르간 열매를 갈아 기름을 내는 도구, 타진 그릇, 식용 아르간 오일, 판매용 아르간 오일
▲ 아르간 오일 아르간 열매를 갈아 기름을 내는 도구, 타진 그릇, 식용 아르간 오일, 판매용 아르간 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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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산맥 위는 바람이 심해 서 있기가 힘들다.
▲ 아틀라스 산맥에서 아틀라스 산맥 위는 바람이 심해 서 있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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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기념품과 음료수 등을 파는 조그만 구멍가게 앞에 멈췄다. 다들 차에서 내려 눈 쌓인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쉽지 않다. 남자들도 휘청거릴 만큼 바람이 세서 걷는 것은 물론이고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다.

기사는 우리를 가게 안으로 안내했다. 가게 안에는 여자들 여럿이 자리를 잡고 앉아 견과류의 기름을 짜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견과류의 이름이 아르간이라고 알려주며 오일을 짜는 과정을 설명한다.

아르간 오일은 피부에 바르기도 하지만 먹기도 한다며 한 번 먹어보라고 찍어먹을 빵을 나눠주었다. 새로운 맛에 호기심이 생겼지만 벌써부터 짐을 늘릴 수는 없으니 참기로 했다.

구경을 마치고 차에 올랐다. 사막투어를 함께 하게 된 사람들이 모두 좋아서일까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기사 옆에 앉은 캐나다인 할머니는 매우 명랑한 사람이었다. 장시간 차를 타면 지칠 법도 한데 기사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물어보며 신기해하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계속 까르르 웃는다. 할머니의 웃음 소리가 얼마나 유쾌하던지 우리도 덩달아 웃게 되었다.

간식으로 준비한 오렌지 하나를 건네자 놀라는 표정으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정말 고맙다고 한다. 그녀의 이러한 반응에 오히려 내가 감동을 받았다. 소소한 것 하나에도 저렇게 온마음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다니…. 나도 저 나이가 되었을 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을까?

파란 스카프를 두른 카스바의 여인

흙으로 지은 성채인 카스바. 붉은 흙과 파란 하늘이 대조를 이루어 더욱 황량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생명을 이어나가는 나무와 풀들이 있다.
▲ 아이트 벤하두 흙으로 지은 성채인 카스바. 붉은 흙과 파란 하늘이 대조를 이루어 더욱 황량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생명을 이어나가는 나무와 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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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다시 멈춘다. 이번에 내려준 곳은 영화 <글래디에이터>, <왕좌의 게임> 등의 촬영지가 되었던 아이트 벤하두이다.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마을은 강렬한 햇빛을 받아 더 황량해 보였다.

마을 앞에는 내가 흐른다. 물이 아주 맑았다. 손을 담가 보니 시원했다. 징검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흙으로 지어진 집들이 많은 제법 큰 마을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념품 가게에 걸린 스카프의 색감이 아름답다
▲ 아이트 벤하두 골목 기념품 가게에 걸린 스카프의 색감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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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들어서자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줄 가이드가 다가온다. 가이드는 흙으로 만들어진 카스바 내부를 돌며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과 축사 등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미로 같은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다 보니 스카프를 파는 상점이 많다. 알록달록한 색에 이끌려 상점으로 들어갔더니 상인은 베르베르인들이 강한 햇빛과 모래바람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스카프를 두른다고 한다. 특히 파란색은 베르베르인의 색이라며 사막투어를 갈 계획이라면 파란색 스카프를 두르라고 추천한다.

붉은 모래와 대조되는 파란 스카프가 마음에 들어 얼마냐고 물어보니 하나에 100디르함이란다. 너무 비싸다며 깎아달라고 하니 옆에 있던 Y가 자기는 저 밑에 있는 가게에서 하나에 40디르함에 샀다며 거든다. 사실 Y는 하나에 45디르함에 샀지만 우리가 40디르함에 살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한참의 흥정 끝에 80디르함에 두 개를 샀다. 상점 주인은 베르베르식으로 스카프 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직접 스카프를 둘러준다. 긴 천을 반으로 접어 끝부분을 이마에 대고 머리 위로 두 바퀴 돌리더니 남는 부분으로 얼굴을 가린다. 눈만 내놓은 모습이 꼭 아랍 여자 같다. 카스바에서 파란 스카프를 두르고 있으니 카스바의 여인이 떠오른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어 꼭대기에 있는 망루까지 올라갔다. 아래와는 다르게 바람이 심하게 분다. 이래서 스카프를 해야 되는 거구나! 바람에 날리는 스카프를 손으로 붙잡고 한 바퀴를 돌아보니 막힌 곳 없이 사방이 360도로 탁 트여 있다. 멀리서 적이 쳐들어오는 것도 한눈에 보일 듯하다. 위로는 하늘이 파랗다. 붉은 흙집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풍광이 인상적이다. 이곳이 수많은 대작의 촬영지가 된 이유가 아름다운 풍경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트 벤하두에서 파는 기념품들. 타진 그릇과 다양한 접시, 불로 태워서 그린 그림, 화석 등
▲ 아이트 벤하두 아이트 벤하두에서 파는 기념품들. 타진 그릇과 다양한 접시, 불로 태워서 그린 그림, 화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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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내려와 근처 식당에 들렀다. 자리를 잡고 앉아 Y와 Y의 친구를 기다리는데 오지를 않는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혹시 점심을 따로 챙겨왔나 싶어서 우리 먼저 식사를 주문했다.

한참 후에야 얼굴이 벌게진 Y가 친구와 함께 들어왔다. 그녀는 길에서 파는 기념품을 살펴 보다가 낙타 인형이 맘에 들어서 하나 샀단다. 계산을 끝내고 보니 우리 일행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았다고 한다. 내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로밍이 되지 않는다는 멘트만 나왔다고. 영어도 안 통해서 여기저기 식당을 헤매다가 간신히 우리를 찾아 들어왔다고 했다. 하마터면 아프리카에서 미아가 될 뻔했다며 Y는 상기된 얼굴로 고생담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던 중에 음식이 나왔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모로코 전통 음식인 쿠스쿠스와 타진이다. 쿠스쿠스는 좁쌀밥 같은 것을 쪄서 각종 채소와 여러가지 재료를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알고보니 쿠스쿠스는 쌀이 아니라 밀로 만든 것이란다. 우리가 시킨 채소 쿠스쿠스는 식감도 익숙하고 향신료의 맛도 강하지 않아 괜찮았다. 타진은 원뿔 모양의 도자기 그릇에 담긴 음식을 말하는데 이 원뿔 모양의 그릇 이름이 타진이란다. 타진은 고기와 채소를 넣어 향신료로 조리한 전골 같은 요리였는데 생소한 맛이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선인장 가시에 온몸을 찔리다

울퉁불퉁한 모양이 마치 원숭이 손가락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 몽키 핑거스 밸리
▲ 몽키 핑거스 밸리 울퉁불퉁한 모양이 마치 원숭이 손가락 같아서 붙여진 이름인 몽키 핑거스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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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다시 달린다. 사막이라고는 하지만 곳곳에 큰 도시들이 있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 일을 하는 여인들이 있다. 건조하고 황량하고 척박한 땅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창 밖에는 온통 붉은 흙으로 된 건물들뿐이다. 그 위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붉은 건물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 외에 다른 색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 아이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파란색과 붉은 흙빛만이 존재할 것 같다.

한참을 달려도 평지 위의 붉은 모래만 보이더니 좀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간다. 얼마쯤 가다가 몽키 핑거스 밸리라는 곳에 내려 주었다. 바위가 마치 원숭이 손가락 같이 몽글몽글한 모양으로 되어 있어 신기하다. 햇빛이 부드럽게 비추어 흙은 더더욱 붉은 빛으로 빛나고 드문드문 보이는 선인장 나무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손에 가시가 박히는 줄도 모르고 선인장 열매를 땄다.
▲ 몽키 핑거스 밸리의 선인장 손에 가시가 박히는 줄도 모르고 선인장 열매를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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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에는 붉은색 열매가 달려 있다. 여행을 준비할 겸 읽었던 책에 의하면 모로코에서는 선인장 열매로 만든 음료가 맛있기로 유명하단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에 선인장 열매를 따기로 했다. 선인장의 가느다랗고 솜털 같이 고운 가시가 손에 박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서너 개를 땄다. 딸은 먹을 수 있는 건지 모르는데 무작정 따면 어떡하냐고 타박했지만 맛만 볼 요량으로 조심스렇게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숙소 앞에서 만난 아이들
▲ 모로코 아이들 숙소 앞에서 만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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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쯤에 다데스 오베르게에 도착했다. 사막에 있는 숙소라기에 별 기대 없이 들어갔더니 내부는 비교적 깨끗했고 장식도 잘 되어 있었다. 배정 받은 방에 들어와 짐을 풀었다. 해가 넘어가자 점점 쌀쌀해진다. 우리가 자야 할 방은 냉기가 들어오는지 복도보다 춥다. 양털로 짠 무거운 담요를 인당 하나씩 받아서 덮었지만 여전히 춥다. 전구도 고장나 어둡기까지 하니 음산하고 답답하다. 방을 바꿔 달라고 했더니 남는 방이 없다고 그냥 쓰란다. 담요나 한 장 더 달라 해서 두 장을 덮었는데도 한기가 스민다.

짐을 풀어 놓고 나서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선인장 열매를 꺼냈다. 열매에 있던 가시가 바지에 그대로 박혔는지 살을 계속 찔러서 옷을 갈아 입었다. 손바닥에 박힌 가시는 생각보다 쉽게 빠지지 않는다.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빼내는데 짧아서 빼지 못한 가시가 따갑다. 다들 이 방법 저 방법을 써서 가시를 빼내려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식용인지 아닌지도 모를 선인장 열매를 먹어 보겠다고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런 소동을 벌이는 내가 별나다 싶다. 호기심이 지나쳤나? 고생한 게 아쉬워서 껍질을 까고 살짝 맛을 보았다. 밍밍한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특별하게 맛이 있지는 않았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것에 비해서 실망이 컸다.

숙소의 인테리어, 저녁으로 나온 타진, 모로코 전통 공연
▲ 숙소 숙소의 인테리어, 저녁으로 나온 타진, 모로코 전통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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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저녁을 제공해 준다기에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낮에 먹었던 타진 그릇이 보인다. 낮에 먹었던 타진은 향신료 맛만 나고 별로였는데 숙소에서 주는 타진은 정말 맛있었다. 닭고기와 감자, 완두콩이 듬뿍 들어가 있어서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맛이었다. 국물까지 싹싹 긁어가며 먹었더니 후식으로 민트티를 마시겠냐고 묻는다. 그러나 민트티는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단다. 모로코에서는 손님에게 민트티를 내어 주며 극진히 대접한다더니 그것도 옛말이 되어 버린건가.

민트티 대신 물을 마시며 소화를 시키고 있으니 숙소 주인과 직원들이 들어와 악기를 연주한다. 5명 정도가 타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데 노래 제목도 내용도 모르지만 흥겹다. 흔한 젓가락 장단조차 잘 맞추지 못하는 나지만 그들의 흥에 겨운 손놀림과 삶이 묻어나오는 듯한 노래는 어딘지 모르게 슬픈 듯하면서도 어깨가 들썩여진다. 나서지 못하는 체질이라 앉은 채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박수만 칠 뿐이었다.

아프리카인들은 음악에 대한 DNA가 남다른 모양이다. 반대쪽에서 서양 여인 한 명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다.


태그:#모로코, #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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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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