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본'의 결핍이 '사회적 덫'으로 작용해 도리어 경제적 자본의 축적을 저해하는 상황이 오늘날 한국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자본, p309)세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협동조합은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모델의 엔진으로 급부상 중이다. 이미 1억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세계 협동조합은 파국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을 입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호혜와 연대의 원리를 통해 축적되는 사회적 자본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정치사회 개입전략으로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세계 협동조합 성공 사례들은 어려운 영역에서 성과를 내는데 필요한 사회적 비전, 정치적 안목, 조직 능력, 사업 경영 기술을 겸비한 사회사업가나 지역의 리더들에 의해 지도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은 단순히 주식회사와 다른 형태의 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사회 철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협동조합이 사회적 경제의 기관차라면 이를 움직이는 연료는 '사회적 자본'이다. 제 3의 자본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자본은 물질 자본, 인적 자본 외에 사람들이 협력해 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력을 일컫는 말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는데, 신뢰는 복잡한 사회적 시스템을 작동시켜주는 윤활제 역할을 한다.
신뢰는 사람들이 같은 가치와 문화를 기반으로 일을 하면서 생겨난다. 신뢰를 포함한 사회적 자본은 이웃, 회사, 조직, 사회 등 다양한 사회적 상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자본, p32 인용) 유럽은 협동조합 경제가 뿌리내리기까지 1백여년이 걸렸다. 협동조합 1백년의 역사는 유럽사회가 사회적 자본을 축적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신뢰수준이 높은 유럽의 복지국가들은 국민들의 행복지수도 높다.
최근 한국에서도 협동조합이 붐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5인 이상이면 설립가능하다고 하니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하지만 이를 손쉬운 창업의 기회로만 여기거나 자영업 몰락과 붕괴된 고용시장의 충격을 흡수해 줄 스폰지처럼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심지어 협동조합이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실패를 눈 감아주고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역할로 전락하는 순간, 이는 아니한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특히 정치 경제 분야의 불신이 깊은 한국은 OECD 국가의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 신뢰 국가'다. 협동조합 붐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저 신뢰 국가'에서 '고 신뢰 국가'로 나아가는 정치 사회 경제적 체질 개선이 없다면 건강한 협동조합 생태계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경제적 불균등과 불평등의 심화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호관계 구축과 사회적 자본 축적을 저해하는 핵심적인 문제다.
불공정 사회는 필연적으로 저신뢰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1%를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99%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 개선과 사회문화적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협동조합 경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극단적 양극화로 표현되는 불평등, 불공정 해소를 위한 적극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사회적 자본> / 문예춘추사 / KBS 사회적 자본 제작팀 / 15,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