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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현장을 덮치기 위해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잠복하다가 범인을 잡는다. 잡은 범인을 단속한다.'

수사관 방불케 하는 잠복근무?

앞에 이야기만 들으면 강력계 형사쯤 되나보다 싶지만 (그는 형사가) 아니다. 안성 환경단속원(금광면사무소 소속) 이선재 할아버지(66)의 일상이다. 환경단속원이라니? 말 그대로 불법쓰레기를 버린 주민들을 단속하고 지도하는 일이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빨간 모자를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출동이다. 할아버지는  불법쓰레기 단속도 하고, 정리도 하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단속과정은 흡사 강력계 형사가 수사하듯 할 때도 있다고 했다.
▲ 출동 오늘도 할아버지는 빨간 모자를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출동이다. 할아버지는 불법쓰레기 단속도 하고, 정리도 하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단속과정은 흡사 강력계 형사가 수사하듯 할 때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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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빨간 모자를 눌러 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안성 금광면 도로 주변의 쓰레기를 조사하고 단속한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하다 보니, 불법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담지 않거나 분리 배출하지 않은 쓰레기)를 누가 버렸는지 감이 온다고 했다. 실제로 보지를 못했기에 버리는 현장을 덮치기 위해 빨간 모자를 숨기고 오토바이 옆에서 잠복근무를 하기도 한단다. 그럼 영락없이 심증이 간 그 사람이 불법으로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

약봉지 보면 불법 쓰레기 증거 나와

불법 쓰레기가 나오면 할아버지는 일단 쓰레기를 다 엎어서 쓰레기 주인을 찾는다. 왜? 바로 증거를 찾기 위해서다. 쓰레기 속에서 약봉지, 우편물 봉투, 공과금 고지서 등에 적힌 이름을 찾는다는 것. 시골에선 이름만 알면 전화번호, 집 위치까지 다 알 수 있다. 그 마을 이장에게 알리면 바로 나온다.

이런 과정에서 범인(?) 주민과 이장이 멱살잡이 하며 싸웠다는 이야기를 그 다음 날, 그 마을 앞을 지나가며 들었단다. 그 주민은 "내가 안 했다"고 잡아떼고, 이장은 "무슨 소리냐, 여기 증거가 있는데"라며 싸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불법쓰레기를 들고 나오다가, 할아버지를 보면 얼른 다시 집으로 들고 들어가서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온단다. "아저씨한테 들켰으니 제대로 해야지"라면서. 종량제봉투 아끼려고 그랬대나 뭐래나.

어떤 때는 불법쓰레기 투척을 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했지만, 자신이 하지 않았다며 발뺌하고 도망가기도 한단다. 그 한사람에게만 메일 수 없어 놓치기도 했다고. 그래서 그 마을에 빨간 모자 할아버지가 뜨면 긴장하는 사람이 있단다. 물론 불법 쓰레기를 버린 사람만 그럴 일이다.

쓰레기 단속보다 정리하는 일이 더 많아

엉망으로  버려진 쓰레기라도 이선재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나면 이렇게 말끔히 정리가 된다. 가져간 종량제 봉투에 담아 정리해놓으면 안성 시청 환경과 쓰레기 수거차가 모두 가져간다. 만약, 제대로 분리 되지 않은 쓰레기는  쓰레기 수거차가 가져가지 않는다.
▲ 정리된 쓰레기 엉망으로 버려진 쓰레기라도 이선재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나면 이렇게 말끔히 정리가 된다. 가져간 종량제 봉투에 담아 정리해놓으면 안성 시청 환경과 쓰레기 수거차가 모두 가져간다. 만약, 제대로 분리 되지 않은 쓰레기는 쓰레기 수거차가 가져가지 않는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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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단속만 하느냐. 아니다. 쓰레기 정리를 하는 일이 하루 일과 중 더 많다. 시골에 어르신들이 많다보니 분리배출이 약하다. 그렇다고 모두 단속이 되는 것도 아니고, 범인을 찾아낼 수도 없다.

이때, 할아버지가 해야 할 일은 쓰레기를 정리해서 종량제 봉투에 담고, 분리수거를 해서 정리하는 일이다. 할아버지가 해야 할 주요 책무는 마을마다 쓰레기 버리는 곳이 있고, 거기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불법쓰레기를 버린 사람은 찾아내서 가져가게 하거나, 신고해서 조치를 해야 한다. 범인을 찾지 못하면, 결국 할아버지가 종량제봉투를 오토바이에 싣고 다니면서 일일이 정리한다. 그렇게 해서 쓰레기 수거차가 가져가도록 하는 일을 하는 거다.

할아버지는 출동할 때, 종량제봉투를 오토바이에 싣고 다니는 건 필수다. 어떤 날은 대형 종량제봉투(100L) 50개를 다 쓰는 날도 있다고 했다. 그 만큼 불법쓰레기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유리에 찔려도 내 할 일은 다 해유"

"유리, 거울, 그릇 등이 깨진 조각을 불법으로 버린 것은 힘들어유. 손에 찔려 피도 나고 하니까유. 가구, 냉장고, 타일 등 부피 나가는 것을 불법으로 버린 것도 처리하기 곤란하쥬."

할아버지가 맡은 구역은 금광면 전체 도로가이다. 원래 94년도에 환경미화원으로 시작해, 2002년도에 환경단속원이 된 할아버지. 그는 20년을 금광면에서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해온 셈이다.

면사무소에서도, 마을 이장도, 주민들도 모두 "쉬엄쉬엄 쉬어 가며 하라"고 당부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대충하는 법이 없다. 자신의 구역을 깨끗이 하는 것은, 그렇게 해야 자신의 속이 시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변에서 "저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나면, 틀림없이 깨끗해진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는 할아버지.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수고할 때, 시원한 음료수를 들고 와서 권하는 주민을 볼 때 뿌듯하다고.

이선재 할아버지가 빨간 모자를 쓰고 마을 인근에 출동하면 유독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 그렇다. 바로 불법으로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다.
▲ 이선재씨 이선재 할아버지가 빨간 모자를 쓰고 마을 인근에 출동하면 유독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 그렇다. 바로 불법으로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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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의 몸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도 후임자가 마땅찮아 그만 두지도 못한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10년 노하우를 따라올 사람이 마땅찮기도 하고, 지원하는 사람도 없어서란다.

오늘도 할아버지는 빨간 모자를 쓰고 금광면 도로를 누비고 있을 게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9일 이선재씨의 자택이 있는 마을(안성시 금광면 신양복리 신기마을)에서 이루어졌다.



태그:#환경단속원, #환경미화원, #분리수거, #금광면,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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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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