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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테일러 개토는 미국 뉴욕의 공립학교 교사였다. 특유의 게릴라 학습법으로 철옹성 같은 미국 학교 제도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쓴 책 중에 <바보 만들기>가 있다. 그만의 전복적인 교육철학이 담겨 있는 명저다. 그는 이 책에서 '교사들의 일곱 가지 죄'를 열거했다. 몇 가지 살펴보자.

'혼란'. 교사는 관계의 단절을 가르친다. '교실에 갇혀 있기'.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너희들이 있을 곳은 교실 안이니 그곳에서 나가지 말라.'

'무관심'. 교사는 아이들을 자신의 강의에 완전히 몰두하게 한다. 그들이 그 어떤 것에도 지나친 관심을 갖지 않도록 가르친다.

교사는 합법적인 죄인이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탈출한 단원고 학생들이 학부모와 함께 30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세월호 생존학생들 합동 조문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탈출한 단원고 학생들이 학부모와 함께 30일 오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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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토의 책을 뒤적이면서 지금 대한민국의 교사를 떠올렸다.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아이들 수백 명이 죽어갔다. 돈이 지배하는 이 나라의 허술한 시스템과 어른들의 탐욕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죽음은 명백한 타살이었다. 이 나라와 어른들이 그들을 죽였다. 마땅히 머리를 숙여 사죄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나라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부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교사들이 학생들 앞에서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공공연히 해서는 안 된다고 을러댄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대통령 퇴진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소리친다. 교사들이 한데 모여 무슨 선언이라도 할라치면 집단행동 하지 말라며 눈을 부라린다.

40여 명의 교사들이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다. 교육부는 그 글이 명백한 위법이라고 판정했다. 정치적이고 편향적인 선동으로 매도했다. 정부와 대통령 비판이 정치운동 금지 조항에 위반되는 불법 행위라고 몰아부쳤다. 교사의 준법 의무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니 하는 말들이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세월호 참사 이상의 초대형 사고가 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 어떤 심각한 일이 터져도 국어 교사는 비유법이나 한글맞춤법만 가르쳐야 한다. 수학 교사는 집합론과 미적분을 놓고 아이들과 씨름해야 한다. 사회 교사는 민주주의를 모르는 학교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별표를 치라고 말하리라.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그렇다. 대다수의 평범한 교사는 세상 일에 무심하기를 강요 받는다. 세상이야 어떻게 굴러가든 말든 그건 세상을 사는 '그들'의 일일 뿐이어야 한다. 바깥으로 눈길 돌리는 아이들에게는 정신줄 놓지 말라고 야단을 친다. 세상 일에 무관심할 것을 강요한다. 정해진 틀에 따라서만 생각하고 말하라고 다그친다. 안 그러면 인생 망친다며 예사로 위협한다.

교사들은 세상 물정을 들먹인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고 말한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한 눈 팔지 말라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나.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교사의 말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나. 그렇게 교사 말에 고분고분하며 자란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얻는다. 그런 아이들이 명문대에 입학하고, 그 졸업장으로 이 나라의 상층부를 독차지하다시피 한다. 세상 일에 관심이 없고, 교사와 같은 권위자의 말에 쉬이 순종하는 바로 그 '모범생'들이 말이다.

개토가 맞다.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격리되는 교사는 죄인이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우리나라의 보통교육은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 법 제20조 4항에 따르면, 교사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임무다. 그러니 교사는 준법정문서인 국가교육과정과 그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만 가르치면 된다. 그러므로, 교사는, 명백히 합법적인 죄인이다.

개토가 갈무리한 교사의 죄는 죄가 아니다. 모두 국가가 명령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토에게는 죄이나 국가에게는 죄가 아니다. 그러니 교사는 죄가 없다. 자, 이제부터 교사들은 더욱 더 혼란의 수업을 하자. 우리 교사들 자신과 아이들을 교실에 속박하는 수행활동을 펼치자. 교실 안에 든 우리는 그 어떤 세상 일과도 무관하다. 우리는 오로지 비유법과 미적분과 교과서 속 민주주의만 파고들자.

수백 명의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떠나다가 죽었다. 수학여행을 없애 버리자. 그리고 모든 관계를 단절하자. 아이들과 교사들이 있어야 할 곳은 오직 25평의 사각 공간이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학습 목표는 무관심이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오로지 성적에만 눈길을 주면 된다. 그것이 지금 우리 국가의 명령 아닌가.

스승의 날, 1만5천 교사선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저녁 서울지역 전교조 교사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참회의 뜻으로 서울 청계광장에서 서울시청까지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선생님이 미안해" 참회의 행진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저녁 서울지역 전교조 교사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참회의 뜻으로 서울 청계광장에서 서울시청까지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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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명령한 그런 교사의 길을, 그러나 나는 걷지 않겠다. 나는 차라리 국가의 죄인이 되겠다. 교사이기 이전에 이 나라 국민이다. 이 나라 국민이기 이전에 살아 있는 한 인간이다. 훌륭한 교사가 되기 전에 이 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국민이 되고 싶다. 애국 시민이 되기 전에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줄 아는 따뜻한 인간이고 싶다.

그래서다. 나는 국가가 정해 강요하는 교사의 품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 권위적인 교장과 교감에게 순종하고, 영혼 없는 공문의 하수인이 되는 길을 따르지 않겠다. 지시와 명령으로만 작동하는 학교는 참된 학교로 보지 않으련다. 권위부터 앞세우는 교장과 교감에게는 제대로 대접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스승의 날이었던 지난 15일,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아래 '교사선언')에 이름 석 자를 올렸다. 교사선언에 적힌 그대로 아이들을 이대로 가슴에 묻을 수 없어서였다. 의심스러우면 되묻고, 부당한 지시에는 복종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늘 정답만 생각하며 외우라고 윽박질러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 처절한 마음으로 선언문에 실명을 올린 교사가 1만5852명이었다. 사흘 만에 모인 숫자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앞장섰으나 전교조 교사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순응과 체념과 죽임의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살림의 교육을 하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그 1만5852명의 교사들을 향해 교육부가 징계의 칼날을 들이대려 하고 있다. 참담하다. 교사이기 이전에 이 나라 국민이다. 수백 명의 아이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나라 시스템과, 그것을 만든 잘난 어른들 탓에 수많은 아이들이 속절없이 죽어갔다.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킬까, 세상을 향해 저항의 목소리를 낼까.

세월호 참사 25일째인 10일 오후 경기도 안산문화광장에서 희생자 추모와 진실규명을 위한 '국민촛불 켜기' 행사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에서부터 걸어온 학생과 시민들이 문화광장에 도착하고 있다. 교복을 입은 수백명의 학생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왜 우리는 구조자가 아닌 희생자를 기다려야 하나요' '정부를 믿어도 될까요' '언론을 믿어도 될까요' '죽는 것보다 슬픈 것은 잊혀지는 것입니다' 등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행진을 벌였다.
▲ 어른들에게 던지는 학생들의 물음 세월호 참사 25일째인 10일 오후 경기도 안산문화광장에서 희생자 추모와 진실규명을 위한 '국민촛불 켜기' 행사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에서부터 걸어온 학생과 시민들이 문화광장에 도착하고 있다. 교복을 입은 수백명의 학생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왜 우리는 구조자가 아닌 희생자를 기다려야 하나요' '정부를 믿어도 될까요' '언론을 믿어도 될까요' '죽는 것보다 슬픈 것은 잊혀지는 것입니다' 등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행진을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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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은 <월든>과 더불어 헨리 데이빗 소로우(1817~1862, 미국의 철학자·시인·수필가)가 쓴 명저 중 하나다. 이 책에서 소로는 기계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을 말한다. 자신의 육신을 바쳐 국가를 섬기는 이들이다. 그들은 판단력을 버렸다. 그들에게는 도덕 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전혀 없다. 그들 스스로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위치에 놓는다. 그들은 짚으로 만든 사람이나 흙덩이 이상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보통 선량한 시민으로 대접을 받는다.

소로우는 이들과 다른 극소수의 사람들에 주목한다. 그 소수의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국가에 저항한다. 국가는 그들을 적으로 취급한다. 그들만이 참다운 의미의 영웅이자 애국자이며, 순교자, 개혁가라고 단언한다. 인간으로서 양심을 가지고 세상에 이바지하면서 말이다. 그는 말한다. 수치감 없이는 자신의 정부와 관계를 가질 수 없노라고. 노예의 정부이기도 한 그 정치적 조직을 자신의 정부로 단 한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고.

나는 영웅이 아니다. 애국자도 아니다. 순교자나 개혁가 또한 내 길이 아님을 잘 안다. 하지만 국가가 부당하게 내 입을 막으려는 것에는 단호히 저항하겠다. 국가의 적이 되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국가가 나를 적으로 만들면 그냥 있지 않으련다. 그 부당한 힘에 단호히 맞서겠다.

나는 일방적으로 침묵을 요구하는 국가의 기계가 되고 싶지 않다. 부당한 시스템과 불합리한 공문의 노예로 사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 소로우는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들'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 구실을 바로 그들이 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소로우가 말한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을 발효시키는 효모처럼 살고 싶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없어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으로 강한 힘이 되겠기에 말이다.

그래서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향해 말한다. 떳떳한가. 그렇다면 나를 징계하라. 나를 포함해 1만5852명의 교사를 당장 모두 징계하라.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교사선언, #세월호 참사, #징계, #<바보 만들기>, #<시민의 불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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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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