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2일. 지방선거 공식선거전이 열린 날이었죠.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이 있던 날로부터 36일이 지난 날이기도 했습니다. 한 달 하고도 6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시신 16구는 건져 올리질 못했죠.
꽃도 피워보지 못한 그 학생들의 영혼을 누가 감히 달랠 수 있겠습니까? 유족들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그저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는 것만이 살아 있는 자로서 할 수 있는 도리일 것 같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섬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앞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교회 식구들 7명과 함께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나마 학생들의 영혼과 유족들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죄를 씻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여러 종교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진도군교회연합회에 합류하여 한 팀은 팽목항에서, 다른 한 팀은 실내체육관에서 그 일을 각각 섬기기로 했죠.
물론 우리가 섬긴 일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부스에 부족한 물품을 본부에서 받아와 나눠주는 몫을 감당한 게 다였죠. 여러 음료와 속옷과 양말과 치약과 칫솔과 같은 여러 구호품을 나눠주는 게 그것이었습니다. 유족들을 위로하거나 예배를 드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빨리 돌아와, 아빠가 기다릴게."정확한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스가 있는 뒤쪽 등대가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밖을 나가 그곳을 쳐다봤습니다. 아빠로 보이는 한 남자가 저 멀리 바다를 향해 그렇게 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루 속히 아빠 품으로 돌아와 달라고 말이죠.
"어제 제 아이를 건져냈는데, 여태까지 이곳에서 함께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도와 주시면 좋겠습니다."그 사이, 초췌한 모습의 유가족 한 분이 우리 부스로 와서, 인사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뭐랄까요? 우리가 섬기고 있는 일이 결코 초라한 게 아니라 가장 귀중한 일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점심을 먹고 1시쯤 됐을 때, 우리 일행과 교체해 주기로 한 팀이 드디어 도착을 했습니다. 그 분들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전남동지방'에 소속된 교회의 목사님들이었죠. 장장 2시간이 넘는 걸음이었지만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이 곧바로 섬김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 뒤 실내체육관에서 봉사하고 있는 세 분을 차로 태우고, 우리 일행은 곧장 교회로 출발했습니다. 돌아오는 길목에 걸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봉고차 뒤에 타고 있던 권사님들은 모두 편안한 잠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턱없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나마 유가족들에게 진 빚을 덜고 왔다는 마음 때문이지 싶었습니다.
내 속에서는 '우리 북교동교회 권사님들, 화이팅!' 하는 소리가 잠잠히 터져 나왔습니다. 이토록 귀하고 보람된 섬김의 현장에 흔쾌히 동참해 준 권사님들이야말로 우리교회에 가장 보배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