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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하다'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너"라는 대답을 들어서 씁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웬만하면 제가 남들에게 '만만'하게 비치지는 않았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네 남자를 알게 된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도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만한 네 남자의 시작

2014년 3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컨벤션센터(SETEC)에서 불교박람회가 열렸다. 당시 이색적인 기획 전시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불교 만화 초대기획전 <만화로 만화(卍話)하다>이었다.

이 전시는 불교가 주는 깨우침을 쉽고 익살스럽게 그리고 부담 없이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였다. 이 전시회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만화로 만화하다> 기획자였던 양경수 작가는 "외국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라고 회상했다.

<만만한 뉴스> 창간 멤버 왼쪽부터 '어라스님','배종훈작가', '김똥개작가', '양경수작가'
▲ <만만한 뉴스> 창간 멤버 왼쪽부터 '어라스님','배종훈작가', '김똥개작가', '양경수작가'
ⓒ 만만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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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시'라고 하면 반짝 이벤트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네 명의 남자가 뭉쳤다. 어라 스님, 똥개김 작가, 배종훈 작가, 양경수 작가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전시 이후로 매일같이 모여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1일 <만만한 뉴스>를창간해 < BBS > <불교닷컴> <법보신문> 등 불교 언론에 보도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침체되고 새로움에 목마른 불교계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독특하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는 것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만만한 뉴스> 창간

이들이 창간한 <만만한 뉴스>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만만한'의 첫 번째 의미는 '부담스럽거나 무서울 것이 없어 쉽게 다룰만하다'이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구독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신문이라는 뜻이다.

두 번째 의미는 불교에서 말하는 '卍(만)'자를 두 번 쓴 '卍卍한'이다. '부처의 가르침이 가득함'이란 뜻을 담고 있다. '대중이 곧 부처'로 이 신문에 참여하는 작가와 독자 모두가 자신의 불성을 찾아 성불하겠다(깨우침을 얻겠다)는 큰 원(願·바라는 것을 반드시 얻는 힘)을 담고 있다.

<만만한 뉴스>는 매일 네 명의 작가가 돌아가면서 각자의 콘텐츠를 연재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객원작가들을 모집하고 있다. 작가 지원은 이메일(bjh4372@hanmail.net)을 통해 받고 있다. '만만한 뉴스 작가 지원 - 이름'의 형식으로 제목을 달고 이름, 이메일, 연락처, 지원 동기, 그리고자 하는 방향과 그림 스타일, 샘플을 적어 보내면 된다.

네 남자를 만나기 위해 전시장으로

<만만한 카툰展> 그림 감상 병원 환우 분과 그 가족 분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 <만만한 카툰展> 그림 감상 병원 환우 분과 그 가족 분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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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지난 22일 일산에 있는 동국대학교병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만만한 카툰전(展)>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동행한 양경수 작가는 바쁜 일정 탓에 차안에서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고 내리자마자 전광석화처럼 화장실로 뛰어갔다. 한참을 기다리고, 그는 행복한 얼굴로 다시 나타났다. '부처를 만나는 일이란 가끔은 만만'하구나 싶었다.

전시는 동국대학교병원 1층 로비의 병실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열리고 있었다. <만만한 카툰展>은 멀리서 봐도 톡톡 튀는 색감과 개성이 돋보였다. 현장에는 환자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만만한 뉴스> 사진으로만 뵈었던 결곡한 승복차림의 어라 스님이 환한 웃음을 보이며 우리를 맞았다.

아쉽지만 이날은 어라 스님과 양경수 작가 둘이서 전시회장을 지킨다고 했다. 배종훈 작가와 똥개김 작가도 만나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어린 환우님에게 떡과 함께 최법상화 보살님이 만든 거북이 모양의 풍선을 선물로.
▲ 어린 환우님에게 떡과 함께 최법상화 보살님이 만든 거북이 모양의 풍선을 선물로.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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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작가와 어라 스님은 도착하자마자 분주했다. 곧 병실에 있는 어린 환우들에게 떡과 수첩, 동물 모양의 풍선을 나눠준다고 여념이 없었다. 어라 스님은 "여현 스님 덕분에 전시회가 풍성해지고 너무 좋아"라고 말하며 선물 보따리를 싼다.

이날, 전시 소식을 듣고 여현 스님이 자비로 떡을 싸왔다고 한다. 본래 전시 오픈식에는 소소하게 음식거리를 둬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게 전시장 문화처럼 행해진다. 그런데 병원에서 이러한 '끼리끼리 문화'보다는 병실에 누워있는 어린 환우들과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병원 각 층을 돌면서 떡과 선물을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이에 최법상화 보살님이 추가로 투입돼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동물 모양의 풍선을 만들어 나눠줬다. 병원에 봄바람이 가득하다.

보라색 달팽이 왕관 최법상화 보살님이 손수 만든 달팽이 왕관. 이를 어린 환우분 머리에 씌워주는 여한 스님.
▲ 보라색 달팽이 왕관 최법상화 보살님이 손수 만든 달팽이 왕관. 이를 어린 환우분 머리에 씌워주는 여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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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병실에 누워있는 어린 환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실이 부족해 층층마다 흩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고, 병실을 너무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스님과 작가의 생각 때문이었다. 최대한 즐겁고 피해가 가지 않도록 힘쓰는 그들의 모습이 내 눈에 비춰졌다. 병실 입구에 붙여진 환자의 이름과 나이를 모두 확인해 가며 떡과 선물을 돌렸다.

그들을 따라 병실을 모두 돌고나니, 몸이 헤실헤실 기운이 빠져 흐느적거렸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았음에도 작가와 스님은 오히려 에너지를 받은 듯 활기차기만 했다. 전시장을 떠날 때까지 작가와 스님은 전시장을 지키며 그곳을 찾는 이들을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목마른 불교계

동국대병원에서 어떻게 이런 전시를 기획하게 됐을까. 이는 동국대학교병원 김명숙 수간호사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래서 김명숙 수간호사와 짧게 대화를 나눠봤다.

- 어떻게 이런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나?
"그동안 불교계에 대한 아쉬움과 목마름이 있었다. 대중들에게 불교가 더 많이 회자됐으면 했다. 그러던 중에 네 분의 활동을 접했다. 불교문화의 새로운 전환점이 생길 수 있겠다 생각했다. 물론 템플스테이나 불교연등축제 등 많은 행사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감이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이 더해져 좀 더 풍족한 불교문화가 되면 좋겠다. 정말 기대가 많이 된다. 이들이 불교문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해 널리 포교하는 데 큰 힘이 되면 좋겠다."

- 대학병원에서 이런 전시가 많이 있었나?
"판매성 전시, 민화, 도자기, 불화 등 다양한 주제로 그동안 여러 차례 병원 전시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카툰 전시는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듯하다. 병실을 오가는 환자분들이나 가족분들, 병원 관계자들도 흡족해 한다."

만만한 뉴스, 만만한 그들, 만만한 나

병원로비에서 병원로비에 전시된 그림을 감상중인 아버지와 딸.
▲ 병원로비에서 병원로비에 전시된 그림을 감상중인 아버지와 딸.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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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 수간호사와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병원에서 나오는데, 어느새 나도 '만만한' 기자라도 된 듯 어깨가 으쓱거린다. 몸은 비실비실 그들의 행사를 따라다니며 취재를 했지만, 머리는 달팽이 왕관을 쓴 듯 영감이 번뜩였고, 마음은 그들로부터 받은 '만만(卍卍)한' 에너지로 가득했다.

성공적인 전시라고 감히 평가를 해본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들의 전시와 활동이 더욱 풍성해져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맺어지기를 바란다.

어라 스님과 세 명의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 가는 앞으로의 좌충우돌 흥미진진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전시는 2014년 5월 19일에서 6월 2일까지(2주간), 동국대학교 일산 병원 로비에서 열린다.



#만만한카툰전#만만한뉴스#동국대학교병원#불교#어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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