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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대표적인 보수 개신교단 연합기구다. 지난 2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내 한기총 회의실에서 한기총 긴급임원회의가 열렸다. 교단 임원들간의 토의 주제로는 이례적인,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 방안과 6·25 대성회 캠페인, 건국절 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추진 방안 등의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한다.

회의 끝 무렵,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이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고승덕 전 새누리당 의원을 소개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 후보는 이 자리에서 "교육감에 당선되면 다른 것은 몰라도 전교조 문제만큼은 확실히 대처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후보의 발언은 "전교조는 해체할 단체인데 당선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고 후보의 전교조 관련 발언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고 후보는 지난 23일 와이티엔(YTN) 라디오 <출발 새아침>과 한 인터뷰에서 "정확한 표현은 '전교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임하겠다'는 것이었다"라며 "전교조는 좌편향적인 교육을 하고 정치에 관해서 집단 행동하는 그런 부분들이 일부 잘못된 게 있다, 그 부분들을 바로잡겠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들이다. 특정 교단의 임원회의에 유력한 교육감 후보가 왜 찾아간 것일까. 6만여 명의 교사 조합원이 소속된 합법 노조를 '해체할 단체'라고 물은 종교 지도자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담겨 있었을까. 그런 수준 이하의 질문에 '확실히 대처' 운운한, '고시 3관왕' 이력을 갖고 있다는 교육감 후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대체 '전교조 성향 교사'는 어떤 사람들인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매니페스토정책선거실천협약식에서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매니페스토정책선거실천협약식에서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인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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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 후보의 최초 발언보다, 그 최초 발언을 해명하기 위해 그가 인터뷰 자리에서 내놓은 발언이 더 위험하다고 본다. 그 발언에서 고 후보는 전교조가 좌편향 교육을 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그가 말하는 좌편향 교육은 무엇일까. 전교조 내 어느 조직이나 조합원이 좌편향 교육을 하고 있다는 말일까.

<경향신문>에 따르면, 최초 발언에 대한 해명 발언이 또 다시 논란을 불러오자 고 후보는 자신의 전교조 비판이 과장되었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는 좌편향 교육의 근거와 관련해서 "일부 전교조 성향 교사가 계기교육시간 등에 좌편향적 교육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체 교사가 아니라 일부 교사"라는 해괴한 변명도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가 말했다는 정확한 표현을 빌리면, 고 후보는 전교조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임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한 해명으로, 전교조가 좌편향적인 교육을 하고 정치에 관해서 집단 행동을 한다고 했다. 이후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전교조' 대신 '전교조 성향 교사'를 들먹였다. '전교조 성향 교사'라니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근거 없는 비방을 또 다른 허위의 말로 덮으려다 보니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꼴이다.

서울 지역 초·중·고교 학생과 교원 수는 전체가 200만 명이 넘는다. 고 후보는 이들 모두를 책임지는 서울교육감 후보로 나선 공인이다. 고시 3관왕의 화려한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지적 능력도 탁월하다. 그런 그가 높은 대중적인 인기에 흥분한 탓일까.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전국적으로 6만 교사가 가입해 있는 합법적인 교원노조 단체를 '대책'이 필요한 문제 집단으로 보았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위험한 말을 내뱉고는 비판이 거세지자 교묘한 말장난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 교육감 후보로서의 최소한의 양식을 찾아볼 수 없는 비겁한 태도다. 참담할 뿐이다.

전교조에 신경증적 반응 보이는 이유는 뭘까

교사의 노조 활동을 사갈시하는 듯하는 고 후보의 삐딱한 사고방식은 전교조만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예의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교육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면서 "교육감이 된다면 초·중·고만은 교사들의 정치편향적인 교육이나 집단행동이 온당치 못하다는 것을 분명히 지도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교육부가 청와대 게시판에 '박근혜 퇴진 글'을 올린 교사 43명의 징계를 추진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면서였다.

그는 현재 서울교육감 선거에 나선 4명의 후보들 중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판세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서울교육감에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만약 고 후보가 서울교육감으로 당선된다면 서울 지역 교사들은 정치편향적인 교육이나 집단행동의 부당함에 관한 '고승덕 교육감'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고 후보가 이토록 전교조에 신경증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문용린 전 서울교육감은 지난 2012년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 나와 '전교조 때리기'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전교조를 종북세력으로 비방하더니, 당선 직후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을 방문해 '거짓 사과'를 하는 뻔뻔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때의 '비방의 추억'을 못 잊었는지 문 후보는 지금 또 다시 고색창연한 색깔론을 꺼내들고 있다.

그런 '선배' 보수에게서 한 수 배운 것일까. 고 후보 역시 전교조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신의 숨겨진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그의 출마 선언이 허언이었음을 그 자신의 입으로 실토하고 있다. 서울 교육, 나아가 이 나라 교육 전체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몇몇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이유다.

'비방 교육'의 대가인 '전교 조전혁' 선생 뒤 따르지 않길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측은 지난 23일 JTBC와 한 인터뷰에서 한기총 임원회의에 참석한 적 없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고승덕 서울교육감 후보측은 지난 23일 JTBC와 한 인터뷰에서 한기총 임원회의에 참석한 적 없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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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반전교조' 기치를 내걸고 경기도교육감 후보로 나선 조전혁 전 의원이다. 조 후보는 '전교'라는 호를 써도 될 정도로 전교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일찍이 법으로 금지된 전교조 교사 명단 공개를 강행한 그는 법원이 부과한 1억5000만 원 이상의 강제이행금을 전교조에 물어내게 되었다.

2010년 7월, 그는 현찰과 동전 등으로 500여만 원 가까운 돈을 챙겨 들고 직접 전교조 사무실을 방문해 벌금을 납부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명실공히 자타가 공인하는 전교조 저격수인 조 후보는 <중부일보>와 <주간중부>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18~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6.9%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경기 거주 19세 이상 남녀 705명 대상으로 유선전화 RDD 자동응답조사 방식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7%, 응답률은 3.0%).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서울자유교원조합·뉴라이트학부모연합·교육과학교를위한학부모연합 등 이름도 찬란한 보수·우익 교육단체들에 대해서도 말해 주고 싶다. 이들은 2009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전교조 소속 교사가 있는 학교 등지에서 전교조를 종북집단이나 이적단체로 비방하는 시위를 벌였다. 결국 그들은 소송을 제기한 전교조와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게 수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종북세력'이니 '좌편향 교육'이니 하는 식의 전교조를 향한 비방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임을 분명히 밝힌 최초의 판결이었다.

전교조 소속 평교사로서 고 후보에게 분명히 밝힌다. 전교조의 교육 강령은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다. 이른바 참교육이다. 강령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그것은 학생들이 민주 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고 후보가 말하는 좌편향 교육이니 집단 행동이니 하는 것들은 결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확립, 교육 민주화 실현을 위해 힘을 모으는 데 애쓸 뿐이다. 좌편향이니 우편향이니 하는 이념 교육의 폐해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교조 대변인의 논평처럼 사과는 때가 있는 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처럼 뒤늦은 사과는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더 격렬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고 후보는 6만 교사가 소속된 합법적인 교원단체를 문제 조직처럼 몬 자신의 발언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한다. 진심 어린 사과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공감 교육'을 하겠다는 고 후보가 '비방 교육'의 대가인 '전교 조전혁' 선생의 뒤는 따르지 말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전교조, #고승덕, #조전혁, #문용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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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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