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쁜 꽃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쁘게 꽃이 피었는데 봐주어야하지 않은가, 지하철을 탔는데 속이 드러나는 팬티 같은 옷을 입고 섹시하게 입은 예쁜 여자애들을 보면 내가 봐야겠나, 보지 말아야 하나, 섹시하게 봐달라고 입은 것 아닌가?"법의학 권위자인 이윤성(61)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 교수는 또 "성폭행은 100% 남성들이 한다, 그 이유는 남자들은 씨를 뿌려 거기에서 건강하고 대를 이을 자손이 필요해서다"며 성폭행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도 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앞뒤 맥락을 자른 발언"이라며 "일부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과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도 맡고 있다.
성평등 전문 강사 앞에서, 왜곡된 성인식 발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아래 양평원)에 접수된 진정서에 따르면, 이 교수는 지난해 12월 4일, 양평원 전문강사 위촉식에서 '성폭력에 관한 법의학적 이야기'라는 주제로 특강을 열었다. 강의 대상은 성평등 전문강사였다. 강사 100여 명 중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이 강의에서 이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은 피해자가 잘못해 성폭력이 일어났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왜곡된 사회적 통념으로 보고 있다.
이 교수는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다"며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도에서 한국인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는데 야한 옷을 입어서 그렇다"며 "내가 강조하는데 성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옷을 야하게 입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하철을 탔는데 속이 드러나는 팬티 같은 옷을 입고 섹시하게 차려입은 예쁜 여자애들을 보면 섹시하게 봐달라고 입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고 이에 강사들이 "보라고 입은 것이 아니니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에 이 교수는 "잠깐 보는 건 괜찮다"며 "여자는 섹시하게 보이기를 원하면서 낯선 남자가 보면 싫어한다"는 말도 했다.
왜곡된 성인식 발언도 이어졌다. 그는 "남자는 성행위가 끝나면 쾌감도 끝나고 생식이 끝나지만 여성은 성행위가 끝나면 생식이 시작되어 신중하기 때문에 여성은 강간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여자는 남자에게 나를 잘 보호해줄 수 있는가, 양육해줄 수 있는가, 훌륭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가의 생식전략을 갖고 있다"며 "그래서 10대에는 시선을 끄는 연예인을 좋아하지만 성숙되어지면 시아버지가 빵빵한가를 본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강사들 "불쾌한 정도가 아니라 기가 막혔다"
이날 자리에 있던 위촉 전문 강사들은 황당했다고 밝혔다. 김수경(45·여)씨는 "성평등에 대한 관점 자체가 왜곡돼 있어서 불쾌한 정도가 아니라 황당했고 기가 막혔다"며 "강의 후 양평원 사무실에 가서 항의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백아무개(49·여)씨는 "성평등 전문가 앞인데, 강의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을 못한 것 같아서 황당했다"며 "이런 강의가 대중앞에서 열린다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정현(52·남)씨는 같은달 9일 진정서를 작성해 양평원에 접수했다. 황씨는 진정서에서 "성폭력에 대한 법의학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따지듯이 자신의 왜곡된 성인식을 일반화하려는 발언 등은 전문강사에 대한 예의를 넘어서 우롱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야기 흐름 그리고 구체적 묘사들은 여성과 남성 청중에게 성적 굴욕감을 갖게 했다"고 밝혔다.
이후 양평원은 황씨를 비롯한 강사들에게 메일을 보내 "이날 특강 강사의 발언으로 참석자 중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며 "우선 강사의 발언으로 불편함과 불쾌감을 드린 점에 대해 모든 강사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교수를 옹호하는 듯한 문구도 있었다. 양평원은 "우리사회의 다른 시각과 입장이 존재한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 양성평등 사회실현을 위해서는 여러분들과 우리 진흥원이 함께 노력해 가야 함을 다시 일깨우는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이윤성 교수 "앞뒤 맥락 자른 것"이 교수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런 얘기를 했냐면 했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지만 앞뒤 맥락을 다 잘랐다"며 "앞뒤 맥락을 참고 해야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 발언에 대해 "만약에 여동생이나 여자친구가 짧은 옷을 입고 나가면 말리지 않겠냐"며 "말리는 이유는 남자들은 시각적인 함정에 유혹되기 쉽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여자들도 조심하게 낫지 않겠느냐 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해명했다. 또 "성폭력은 가해자가 오롯이 잘못한 것이 맞다"며 "기왕이면 피해자들도 주의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뜻"이라고 말했다.
왜곡된 성인식 발언에 대해서는 "남자와 여자는 성 인식이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며 "그런 예들이 100명 중 5명의 강사들에게라도 수치심을 유발했다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과 여부에 대해서는 "그만 (통화)하자"고 말했다.
"당장 자리를 박차 나가고 싶었다" [일문일답] 진정서 낸 황정현씨
|
- 이윤성 교수 강연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지난해 12월 4일이었다. 양평원 전문강사 위촉식에 100명이 넘게 수업을 듣고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으로 남자는 10명 미만이었다. 수업을 듣고 문제를 느껴 5명이 모여서 복기를 했다. 의견을 모아서 진정서를 만들었다."
- 여성 강사들의 반응은 어땠나. "한 여성 강사는 말도 안 된다고 흥분을 했다. 작년에 한 강사가 강의 나갔다가 성폭력 피해자 유발론을 말해 해촉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까지 됐다. 그런 상황에서 이 교수의 발언은 문제적이었다."
- 강의 듣고 나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 "정말 수치스러웠다. 당장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이런 성인식을 가진 강사가 어떻게 여기에서 강의를 할 수 있나 싶었다. 양평원은 우리나라 성평등 교육의 전문기관이다. 그날은 성평등 전문강사 위촉식 날이었다. 대부분은 성평등 강사로서 의식이 고취돼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이같은 발언을 했다."
- 이 교수 발언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길거리에 돈이 있으면 집어 가는 사람이 있다,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다니면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이다. 여성을 돈과 연관시켰다는 점에서 가장 충격적이다. 야하게 입으면 돈 집어가는 것처럼 손을 댄다는 게 학자가 할 소리인가."
- 언론에 제보한 이유는? "고민을 많이 했다. 양평원의 사과도 있어서 마무리할까 생각했지만 공론화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양평원에 진정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이 교수가 "진화 심리학에 근거한 팩트"라고 해명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완전 궤변이다. 자기 폭력에 대한 정당화다. 우리 인간이 성폭행을 해서 진화된 사람이 아니지 않나? 진화론을 갖다 붙인다는 것은 교양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화론은 성폭행과는 관련이 없다. 강사보다도 성의식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