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사무실은 후미진 뒷골목에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사무실을 차린 보통의 출마자와 다르다. 근처에 도착해 전화를 하자 젊은 청년이 마중을 나왔다. 충남 서산시의원에 도전장을 낸 청년후보 김후제(27, 다선거구)씨다.
서산시는 인구의 14.7%(2013년 기준)가 65세 이상인 고령화 도시다. 이 지역에서 27살인 그가 출사표를 던졌다. 그를 만나 연애를 포기하고 저축한 돈 털어 출마한 이유를 들어봤다. 다음은 지난 28일 선거사무실에서 나눈 일문일답이다.
- 젊은 나이에 지방선거에 출마했다."어릴 적부터 정치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아버지가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했다. 4년 뒤에 출마하라고 타이르고 윽박지르더라. '그 돈으로 장가나 가라'고 하기도 했다(웃음).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다음도 없다는 생각에 혼자 준비하고 예비후보자에 등록했다. 지인 중 일부는 놀랐지만 대체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오래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는 출마의사를 밝혔었다."
- 실물과 선거포스터 사진이 좀 다르다. '뽀샵'(포토샵으로 사진 보정)을 너무 심하게 한 것 아닌가?"좀 과하다고 말하는 주민이 많다(웃음). 하지만 나는 만족한다. 동네 사진관서 찍었는데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얼굴이 좀 상한 것도 있다. 감안해서 봐 달라."
- 여자 친구는 없나?"1년 전에 헤어졌다. 지금은 솔로다. 학창 시절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당분간 연애는 포기다. 지금은 꿈을 좇는 게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뽀샵'은 좀 했지만... 주민 위해 일하겠다"- 준수한(?) 외모가 선거에 도움이 되나?"아니다. 오히려 반감을 산다는 걸 자주 느낀다. '멀쩡하게 생겨서 왜 선거에 나왔느냐'고 타박하는 어르신이 많다."
- 활발한 성격인가?"아니다.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 숫기가 없어 잘 모르는 이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말을 하기보단 들어주는 쪽이다."
- 선거운동에 도움이 안 되는 성격인 듯하다."그렇지는 않다.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에 즐겁게 선거운동을 한다. 명함을 돌리다 보면 간혹 그냥 무시하고 스쳐가는 주민들이 있어 '멘붕'이 되기도 하기만, 아직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아버지 지인 중 출마 경력이 있는 분이 계신데, 조언을 듣고 정신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후회해 본 적도 없다."
- 학창시절은 어땠나?"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IMF 시절 문을 닫았다. 그때부터 집안의 생계를 도맡아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서너 개 했다. 학업과 병행할 수 없어 자퇴하고 나중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무속으로 출마했다."처음부터 무소속 출마를 생각했다. 정당공천은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 난 색깔이 없는 사람이다. 주민을 위해 일하러 나왔을 뿐이다."
- 정치 관련 경력이 없다."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한 적도 없다. 하지만 오히려 정치 관련 경력이 없는 사람이 주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과 아무 상관도 없고 '측근정치'에서도 자유롭다."
- 선거운동은 잘 되나?"새벽 4시부터 일과를 시작한다. 아침운동 나온 주민을 만나고 출근길에서 거리유세를 한다. 공원이나 아파트 입구에서 주로 선거운동을 한다. 아쉬운 건 혼자 모든 걸 도맡고 있다는 거다. 선거운동이 끝나면 늦은 밤 선거사무실로 돌아와 사무적인 업무를 해결한다. 간혹 안타깝게 바라보는 주민들도 있다."
- 선거공약집이 너무 부실한 것 아닌가?"혼자서 만들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걸 담았다. 물론 부실하다고 하는 주민이 많다. 하지만 공약을 담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우선 지킬 수 있는 걸 내세우고, 그 다음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필요한 게 있으면 실행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 패기만 앞세운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솔직히 당선은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에 후회는 없다. 낙선해도 낙심하지 말라는 주민들도 있다. 세월호 참사 탓에 그동안 준비해온 계획이 무산되기도 했으나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 선거 치르러면 돈이 좀 들 텐데."회사 생활 하면서 저축한 돈을 털어서 출마했다. 생각보다 돈 드는 곳이 많아 이것저것 아끼고 있다. 최대한 돈 안 드는 선거를 하려 한다. 아직 혼자서 활동하니 선거공보물과 현수막 이외 큰 돈이 들지는 않았다. 맨몸으로 부딪쳐 성과를 내고 싶다."
- 정말 혼자 선거운동을 하나?"그렇다. 회계업무에서부터 선거운동까지 혼자서 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주민들에게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겠다. 지역을 위해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열정과 패기를 품은 저를 믿어주셨으면 한다. 오로지 주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
김 후보는 이번에 낙선하면, 돈을 모아 4년 뒤 다시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정대희 기자는 2014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지방선거특별취재팀에서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