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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선생은 정말 우리 처지에서 참 귀한 존재입니다. 메기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네? 제가 메기라구요? 왜요?"

2011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당시 서울특별시교육청 감사관실에서 일하던 저는 같은 부서 동료들과 술 한잔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분이 저에게 뜬금없이 민물고기 '메기'를 언급했습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냥 웃었습니다. 제 생긴 외모가 메기도 아닌데 무슨 뜻인가 싶었습니다. 

2010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진보를 지향하는 곽노현 후보가 서울교육감으로 당선된 뒤, 저는 서울시교육청에서 감사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곽 교육감은 교육 비리 근절을 요구하는 서울시민의 기대에 호응하고자 여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계획 중 하나가 외부 감사 전문가를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에 채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사 전문가 공무원 공채 시험에서 1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제가 합격했습니다.

외부인사로 교육청 감사관실에 들어가다

하지만 저와 기존 교육청 감사관실 소속 공무원이 처음부터 잘 융화될 수는 없었습니다. 공무원들이 외부 인사인 저를 보면서 경계심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고, 저도 기존 공무원들을 긍정적으로 본 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고백하건대, 저 역시 처음에는 교육청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 깊었습니다. 교육비리 관련 일을 '물도 아니고 술도 아닌' 식으로 처리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기존 공무원을 '교육비리 저지른 이들을 옹호하는 공범' 정도로 예단한 겁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당시 내부 사정을 회상하며 들려준 분의 말씀도 이랬습니다.

"고 선생님, 사실 저희도 외부인사를 채용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 많이 한 게 사실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아니 전국의 어느 교육청에서도 외부인사를 감사관실에 채용해 감사 업무를 맡긴 전례가 없거든요. 곽 교육감이 우리를 감시하러 이런 계획을 세운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을 한 거죠."

하지만 서로의 진심을 알면서 불신과 오해가 풀렸습니다. 제 진심이 다른 분들에게 인정받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저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차차 해소됐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처음엔 경계만 하던 분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해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점점 신뢰 관계가 형성됐습니다.

사실 교육청 소속 공무원들이 감사 담당자로 배치된 과정을 보면, 외람된 평가지만, 어떤 전문적 능력을 갖췄기 때문은 아닌 듯 싶었습니다. 정기 인사에 따라 순환 보직이 이뤄지는데, 이때 감사관실 근무를 자원한 분들 중 면접을 통해 선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안을 조사하는 기법이나 경험이 부족하고, 어떤 사건을 조사하면서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습니다.

2013년 3월 서울시교육청의 특정감사를 앞둔 영훈국제중학교에 감사관들이 들어가고 있다. (자료사진)
 2013년 3월 서울시교육청의 특정감사를 앞둔 영훈국제중학교에 감사관들이 들어가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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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저는 이런 조사 경험이 다른 분들에 비해 많았습니다.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님의 사인을 조사하는 조사관으로, 또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하는 등 십수 년 넘게 관련 업무를 해온 덕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제게 업무 상담을 하거나, 실제로 몇몇 사건에서는 제가 조언한 내용이 도움이 되는 등 신뢰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더 지나자 새로운 부탁이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자신이 맡은 사건을 대신 좀 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사건 내용이 어려워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감사 대상자를 상대로 이미 다 확인된 어떤 사안을 묻고 문답서만 작성하면 되는 매우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처럼 복잡하지도 않은 일을 굳이 저에게 부탁하면서 청하는지 처음엔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그 숨은 이유를 안 저는 심각한 교육청 내부의 문제점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다른 직원이 부탁하는 감사 업부를 보면, 문제의 감사 대상자는 교육청에서 고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장, 장학사, 장학관, 국장급 등 교육청에서 높다고 하는 고위직 인사들이었습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는 이들이 어떤 직급인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힘이 강한 누군가의 비리 의혹과 관련한 업무를 한다면 되려 '감사할' 일이지, 제가 피할 이유는 없지요. 

하지만 교육청 소속 공무원 처지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6개월마다 한 번씩 교육청 인사 이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감사관실에는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고 또 나갑니다. 감사관실에서 감사 업무를 맡다가 인사 이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다시 지역 교육청이나 또는 단위 학교 행정실장 등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 때문입니다. 지금은 감사관실에서 업무를 하며 '고위직'을 조사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에서 형성될 교육청 내 '관계'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조사 대상자가 파면 등 중징계 처분을 받아 완전히 교육청을 떠나지 않는 이상, 잘못하면 언젠가는 같은 부서에서 그들을 모시고(?) 일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유롭게 감사 업무에 임할 수 있을까요?

감사 담당자에게 걸려오는 '공포의 압력 전화'

감사 담당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청탁과 압력을 겸한 '한통의 전화'였습니다. 민원 제보나 감사 계획에 따라 감사 담당자에게 업무가 배당되면 여지없이 전화가 걸려 온다고 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학교의 교장 관련 비리 제보가 감사관실로 접수됩니다. 누군가가 감사 담당자가 지정되면 바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감사를 받는 대상자와 동기생이거나 교육청 내 고위급에 해당하는 누군가의 전화입니다.  

정말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알아내 전화가 온다고 합니다. 어떨 때는 감사 담당자로 결정된 지 채 수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번에 아무개 교장 감사를 당신이 나간다며. 그 사람 나하고 오랫동안 어디 어디에서 같이 일한 사람인데 잘 좀 봐 줘"라는 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감사를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전화가 그 순간에만 걸려오는 게 아닙니다. 감사가 진행되면서 어떤 새로운 건이 확인될 때마다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함께 감사를 나간 교육청 소속 공무원들은 한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피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인데도 "아, 그 일은 제가 하지 않고 외부에서 들어온 고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어서 제가 말하기가 곤란한데요"라고 저를 팔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오해가 이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에 그런 오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교육청 감사관실 공무원들도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 아니냐"는 불신입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정의롭기에, 그래서 그런 교육 비리를 바로잡는 데 기여하고 싶다며 스스로 감사관실 근무를 지원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위직 비위 대상자를 조사한 이들이 차후 인사상 어떤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질문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감사보고서에 정확히 그 처분을 요구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치 않습니다. 이런 조건을 바꾸지 않고 교육비리 근절을 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엉터리 기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어려움을 덜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제가 '교육청 관계자 감사'는 제가 전담하다시피 했습니다. 교장, 장학관, 지역 교육청 국장급 등 소위 높은 분들에 대해 저는 거리낄 게 없었습니다. 교육청 소속 감사관실 직원이라면 감히(?) 그 높은 분에게 묻기조차 곤란한 질문을 저는 얼마든지 물었습니다. 바로 이런 겁니다.

제가 처음 어떤 교장을 조사할 때 기억을 떠올리면 정말 웃음이 나옵니다. 감사 출석차 도착한 교장은 앉자마자 저에게 "언제 교육청에 들어오셨냐"고 물었습니다. 교육청 공무원으로 임용된 시기를 물은 겁니다. 의미는 알지만 일부러 "왜 그러냐?"며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때부터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개 국장부터 누구까지 교육청 내 높은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자신과 그 사람의 인연을 나열했습니다. 그 뻔한 속내를 지켜보니 정말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제가 그의 말을 제지하고 말했습니다.

"저 교장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게 그 분들 이름 말씀하셔도 소용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 분들이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제가 원래 여기 있던 직원이 아니라, 2010년에 감사 전문가 공채로 외부에서 들어왔거든요. 그러니까 일단 준비한 감사부터 받으시고 하실 말씀은 따로 하시면 어떨까요?"

잊기 어려운 교장 선생님 얼굴

그때 그 교장의 당황스럽고 긴장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이니 이런 '멋진 반전'이 가능했지, 교육청 소속 공무원은 어땠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작해야 최장 5년이 지나면 다른 부서로 순환 이동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감히 높은 분들을 언급하는 상황에서 말이나 끊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메기'입니다. 저를 '메기같은 존재'라고 말한 분이 저에게 설명해 준 말은 이랬습니다.

"고 선생이 아시는 것처럼, 사실 우리 교육청 감사 여건이 참 어렵습니다. 교육비리 근절에 대한 시민의 열망을 우리가 왜 모르겠습니까. 우리도 문제있는 사안을 깨끗이 도려내고 싶죠. 하지만 현실이 녹녹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고 선생이 우리 감사관실에 들어 오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왜냐? 미꾸라지 있잖아요. 미꾸라지를 옮길 때 수조차에 꼭 같이 넣는 것이 있어요. 그게 바로 메기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래요? 몰랐네요. 왜 메기를 넣죠?"

"메기 덕분에 미꾸라지가 죽지 않기 때문이에요. 미꾸라지의 천적이 메기잖아요. 메기를 수조에 같이 넣으니 미꾸라지들이 긴장하잖아요. 잡아먹힐까 봐. 긴장한 미꾸라지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데, 결국 미꾸라지 폐사율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저는 고 선생이 바로 그런 메기같은 역할을 우리 교육청에 해줘 너무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더 건강한 역할을 해주세요."

감히 제가 그분의 말씀대로 건강한 메기 역할을 했을까 싶지만, 부끄럽게도 이 일화를 공개하는 진짜 이유는 이겁니다. 이번 6·4지방선거에 출마한 전국의 모든 교육감 후보님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후보님들은 교육비리 근절을 외칩니다. 하지만 교육비리 근절은 정치적 구호나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6.4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3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3동 주민센터에서 유권자들이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 6.4지방선거 사전투표 실시 6.4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3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3동 주민센터에서 유권자들이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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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관의 전문성을 가진 교육청 소속 공무원들과 실무적인 감사 능력을 가진 외부 전문가가 함께 감사관실에서 일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 달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현재도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에 의거, 감사관실 최고 책임자인 감사관을 개방형 직위로 외부 채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감사관 혼자서 할 수 있는 개혁은 사실 크지 않습니다. 실무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실을 감사관은 알 수도 없습니다. 얼마든지 실무선에서 진실을 비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건강한 '메기'가 활동하는 제도를 만들 의지가 있는 교육감 후보에게 표를 던질 예정입니다. 그것이 교육비리 개혁을 위한  또 하나의 의미있는 변화라고 저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확신합니다.

유권자 여러분들에게도 호소합니다. 개혁적인 교육감 후보에게 투표해 주십시오. '교육 가족'이라는 패밀리 의식을 깨고 진짜 건강한 교육을 만들 수 있는 이를 선출해 주십시오. 우리가 가진 위대한 특권인 투표를 통해 정말 좋은 교육감을 선출하면 이뤄지는 일입니다. 교육비리를 타파하는 건강한 '메기'가 전국의 모든 교육청에서 활발하게 꿈틀대는 날이 오기를 소원합니다.

함께  건강한 메기를 키우시죠. 어떻습니까?


태그:#교육감, #교육 비리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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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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