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전격적이었다. 3일 오전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상장 추진 소식이다. 이날 내내 재계와 주식시장은 요동쳤다. 국내 한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자에게 "올 것이 왔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 경색으로 20여 일 넘게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다.
재계와 금융시장은 삼성의 '이재용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고 평가한다. 지난달 삼성에스디에스(SDS) 상장 추진과 함께 이씨 일가는 수조 원대의 지분 차익을 올릴 수 있게됐다. 이재용 시대를 위한 계열사 지분 매입과 세금 등을 위한 '실탄'인 셈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찮다.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논란은 여전하다. 매출 300조 원대의 거대재벌 삼성을 이끌 경영 능력과 함께 사회와 소통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어떻게 풀어낼지 관심이다.
이 회장 와병 중에 꺼낸 에버랜드 상장카드...왜 지금?삼성 에버랜드는 이날 오전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보냈다. 이사회를 열어서 에버랜드 상장 추진을 결의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패션,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재원 마련이라는 설명도 붙였다. 하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삼성과 재계 주변에선 곧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6)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예정된 시나리오라는 의견이 많다. 특히 이건희 회장의 건강과 연결해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재계 한 인사는 "이 회장이 심근 경색으로 쓰러진 날 전후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움직임이 더욱 빨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 회장이 심장 이상으로 쓰러지기 이틀 전인 지난달 8일 삼성SDS의 연내 상장이 발표됐다. 이후 이 회장은 심장 수술과 저체온 치료 등을 진행했으며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에버랜드 상장 발표는 이 회장이 병원에 입원한 지 24일 만에 나왔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SDS와 에버랜드 상장 계획은 이미 내부적으로 예정돼 있었던 것"이라며 "이 회장이 지난 4월 귀국했을 때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이미 보고가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건강악화와 상관없이 이미 예정돼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 주변에선 이 회장의 심장 수술 등으로 이같은 계획이 앞당겨졌을 것으로 보고있다. 게다가 이 회장은 여전히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칫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핵심인 에버랜드 상장이 늦춰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SDS와 에버랜드 상장으로 최소 2조 원 자산 불려
그룹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의 상장 추진으로 삼성의 3세 경영시대는 더욱 빨라지게 됐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의 승계 구도 역시 관심거리다.
우선 삼성SDS와 에버랜드의 상장으로 이들 3세들은 막대한 지분 차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SDS의 경우 이 부회장은 11.25%(870만4312주)의 지분을 갖고 있고, 나머지 두 명은 각각 3.9%씩 보유하고 있다. SDS의 주식가격을 주당 14만 원으로 잡았을 경우 이 부회장의 지분가치는 1조2000억 원대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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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의 경우 이 부회장은 25.1%(62만7590주)를 갖고 있어 최대주주다. 나머지 두 딸은 각각 8.37%씩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도 3.72%를 갖고 있다. 지난 2011년 케이씨씨(KCC)가 에버랜드 지분을 사들일 당시 한 주 당 182만 원이었다. 이 주식가격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 부회장의 지분가치는 1조1418억여 원에 이른다.
따라서 SDS와 에버랜드 두 회사가 상장할 경우 이 부회장은 적어도 2조3400억 원이 넘는 자산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선 SDS나 에버랜드가 상장할 경우 주가는 당초 예상보다 크게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SDS는 최소 20만 원, 에버랜드는 250만 원이상 웃돌 것"이라며 "이 부회장에게 사실상 수조 원 재산을 몰아준 셈"이라고 말했다.
편법승계 논란 극복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법 배워야막대한 자산을 확보한 이재용 부회장의 다음 행보는 무얼까. 대체로 삼성이 지주회사 체제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물론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는 이 부회장 몫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금융시장에선 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에버랜드와 삼성물산 합병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에버랜드가 비상장인 상태에서 삼성전자와 합병할 경우 주식 가격 산정이 어려워 상장부터 추진하게 된 것"이라며 "두 회사 합병을 통해 지주회사 모습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지주회사가 될 경우 10% 이상의 지분을 갖게되면서 최대 주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주회사 체제 전환 역시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의견도 많다. 그에 앞서 이재용 부회장 스스로 삼성그룹의 차기 오너로서의 경영 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사회와의 소통에도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향후 이 부회장이 그룹을 지배하더라도 지분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이 부회장은 부족한 지분을 비전과 리더십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을 약속하면서 나름 소통을 시작한 듯 보인다"면서 "삼성과 이 부회장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소통하는 자세를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