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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살려 달라, 도와 달라, 애걸복걸 할 때, 새누리당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여태 뭘 하다가 이제 나타나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투표해 달라? 서민들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안 주더니 느닷없이 웬 새누리당을 살려 달라? 기가 막히네요, 정말…."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처장의 말입니다. 안 처장은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투표참여 기자회견장에서 '꼴불견'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 기자회견에는 청소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들, 빈민들이 모두 함께 한 자리였는데, 어떻게 그분들 옆에서 "새누리당을 도와 달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위선적인 사람들이라고 비판했습니다.

6.4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손수조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부산'을 믿어요! 손수조'가 적힌 피켓을 놓고 절을 하고 있다. 옆에서는 '중·고생 엄마'라고 밝힌 시민이 '오늘 세월호 49재. 세월호 아이들이, 유가족들이 살려달라 울부짖을 때 당신들은 도와주었나요? 도와주세요?? 표 구걸?? 16명의 실종자 찾아주세요'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도와주세요" 대 "표 구걸??" 6.4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손수조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부산'을 믿어요! 손수조'가 적힌 피켓을 놓고 절을 하고 있다. 옆에서는 '중·고생 엄마'라고 밝힌 시민이 '오늘 세월호 49재. 세월호 아이들이, 유가족들이 살려달라 울부짖을 때 당신들은 도와주었나요? 도와주세요?? 표 구걸?? 16명의 실종자 찾아주세요'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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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는 말...

장마 때처럼 굵은 빗방울이 마른 아스팔트를 흠뻑 적시던 3일 오후 이 자리에 선 손수조 새누리당 부산 사상구당협위원장은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부산을 믿어요. 손수조"라고 쓰인 팻말을 세워두고 500배 유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500배를 올리는 동안 손 위원장의 머리카락과 옷은 빗물에 젖었고 야권의 지지자들은 '부산 사람'이 왜 서울까지 와서 선거운동을 하느냐고 질타했습니다.

정작 그는 트위터를 통해 "어깨 위로 두두두 떨어지는 빗방울이 꼭 매를 맞는 것 같았다"라며 "이곳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릴레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손수조 위원장 뒤로 이순신 동상과 더 가까운 위치에는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중앙청년위원장)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얀 백지 위에 써내려간 글귀는 "도와주세요. 대한민국을 믿습니다"였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대한민국을 믿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등 돌린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표심을 흔드는 말이긴 하나 이 말 속에 어떤 진심이 묻어 있을까요? 

2012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 당시 위원장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당을 상징하는 색깔까지 빨간색으로 바꾸면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한나라당에 비판적인 비대위원들을 영입해 추상같은 개혁을 진두지휘했지요. 국민들의 그런 박근혜 대통령에게 신뢰를 보냈고 그 결과 새누리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전신 한나라당은 국회 과반 이상의 의석을 석권했고 대통령선거에서도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어떻게 됐나요?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같은 야권의 주된 정책을 당장 시행할 것처럼 했지만 결국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해온 원칙과 신뢰는 단박에 무너졌지요.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도 정부가 보여준 무능력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한번 다시 도와달라는 호소, 유권자들에게 먹힐까요?

현장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1인 시위를 지켜보고 있던 안진걸 처장은 "어찌 그리 뻔뻔할 수 있는지..."라며 "세월호 참사 때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해내지 못해놓고 어떻게 국민들을 향해 한 표를 달라고 구걸할 수 있는지 그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바로 저분들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이어졌지요.

6.4지방선거 유세 마지막날은 3일 오전 부산역 앞 광장에서 열린 서병수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 유세에서 선거 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사진 포스터와 서 후보 사진 포스터를 함께 들고  있다.
 6.4지방선거 유세 마지막날은 3일 오전 부산역 앞 광장에서 열린 서병수 새누리당 부산시장 후보 유세에서 선거 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사진 포스터와 서 후보 사진 포스터를 함께 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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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지 않으면 제일 나쁜 놈이 다 해먹는다"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는 안철수,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두 당대표가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을 촉구했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의 정당과 정치 지도자, 정부 당국자 등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모든 구성원들은 진정한 자기반성과 성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한길 대표는 "선거 후에는 결과를 떠나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며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국민 앞에서 우리 모두는 패배자"라고 말했습니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스스로 한국사회의 대안정당이기를 포기한 것일까요? 야당의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못한 선거였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처럼 6.4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국이 요동치면서 선거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각축전이 벌어지자, 여야 양당은 사력을 다해 한 표를 호소하는 분위기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 앞으로는 잘하겠다는 충정과 맹세는 흡사 2012년 총대선과 똑같이 오버랩 됩니다. 

길거리에 나붙은 벽보만 해도 십수 장, 집으로 배달된 공보물도 수십 가지. 도무지 누가 누군지, 어떤 정책이 내 삶을 나아지게 할 것인지 알 수가 없고, 또 벽보에는 마치 금방이라도 국민적 요구를 전부 수렴할 것처럼 보이지만 당선된 후로는 홀딱 약속을 파기해버린 과거의 전례를 볼 때 과연 내가 던지는 이 한 표가 세상을 바꿀 힘이 있기나 한 것인지 묻고 또 되묻게 됩니다. 실제 제 주변 40대 앵그리 맘들은 "투표한들 무엇이 바뀌리"라는 자괴감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무려 288명이 목숨을 잃고 16명이 실종된 상태에서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유권자라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투표에 임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지만 그 자체로 무슨 변화를 만들 수 있겠냐는 회의적 시각도 존재합니다.

양시양비 속에서 아예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분도 계실 수 있고,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투표로 주인 된 도리를 다해야겠다고 결심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지난 5월 저는 팽목항에 다녀왔습니다. 흰 포에 싸인 아홉 구의 시신이 잇달아 해경 경비정을 타고 부두에 도착했지요. 침묵이 짓누르는 팽목항에서 그 어떤 이도 눈물짓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깊은 슬픔은 우리 모두의 억장이 무너지게 만들었지요. 이 슬픔 속엔 꽃다운 아이들 하나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자괴감이 있었고, 스스로 무능력을 질타하는 한숨이배여 있었으며, 지지리도 무능력한 못난 어른이라는 부끄러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최근 팟캐스트 라디오 <진중권의 정치다방>을 듣고 있다가 이런 구호가 귀에 박혔습니다.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투표하지 않으면 그 놈들 중 가장 나쁜 놈이 다 해먹는다." 어찌 보면 이 구호는 현실과 닮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대로 가만 있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들의 다짐이 됐습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한다면 4일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태그:#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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