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장 질투나게 하는 사진. 나와 우리 엄마는 이런 사진이 있던가.
▲ 주인공 모자의 뒤태 가장 질투나게 하는 사진. 나와 우리 엄마는 이런 사진이 있던가.
ⓒ 강현호

관련사진보기


역마살이 꼈다는 게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방콕형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여행기는 제법 많이 찾아 읽었다. 어쩌면 방콕형 인간이기에 자꾸 여행기만 뒤적이는지도 모른다. 결코 나는 가보지 못할 곳들을 기꺼이 돌아본 이들의 이야기라 마냥 호기심이 인다. 신기하지 않은가. 나와 다른 길 위의 생이.

요즘 잘 팔리는 여행기는 대부분 세계를 무대로 한 해외 여행기다. 국내여행은 굳이 책으로 묶지 않아도 블로그라는 통로도 있고 하릴없이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맛, 멋, 역사, 체험 등등 주제별로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저절로 들여다보게 된다. 거 왜 예능 프로그램도 할아버지, 누나들과 해외로 떴던 쪽은 꽤나 유명세를 탔던 반면 국내로 간 쪽들은 별 재미를 못 보지 않았던가. 그게 추세란 건가 보다.

국내는 식상하고 해외는 색다르다. 아직은 그렇다. 하지만 점점 해외 탐방에도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뭔가 새롭지 않으면 사람들의 눈은 금세 다른 쪽으로 돌아간다. 그 눈을 잡으려고 여행기들은 자꾸만 이색[異色]을 앞세운다. 오지로 가거나 험한 길을 선택한다. 술만 마시러 나녔다거나 도보여행을 했다고 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인간과 자연의 심오함이 느껴진달까
▲ 나무와 부처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인간과 자연의 심오함이 느껴진달까
ⓒ 강현호

관련사진보기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는 대체로 잘 알려진 외국 관광지를 돈다. 그런데도 색다르다. 왜? 엄마와 아들의 여행기라서다. 여행 동반으로 엄마와 아들이 등장하는 여행기가 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없다. 등장인물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포커스는 엄마에게 맞춰진다. 책 제목부터 그러하지 않은가. 불가능을 깨는 엄마, 생활인이 아닌 여행자로서 변신하는 엄마, 어디서고 주목 받고 정을 나누는 엄마. 엄마엄마엄마.

온통 엄마 이야기다 보니 엄마를 빼면 크게 눈길 갈 페이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엄마라는 주어를 바꾼다면 흔한 배낭여행기가 되고 만다. 그것도 TV에서 몇 번이고 재탕, 삼탕을 해서 풍미를 잃은 사골국 같은 여행지를 도는. 나도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꼈으면 책이 전하는 찬탄보다 더한 감흥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가보지 못한 자로서는 흔한 미사여구의 감탄에는 동감이 일지 않는다.

그 부분이 이 책의 독특함이기는 하다. 눈길을 끌려는 편집자의 의도일까? 아니면 너무 급하게 편집을 했던가 글쓰는 습관이 너무 깊게 박혀서 고치기에는 무리가 따랐을까? 이제는 거의 사문화되어 어지간한 글쟁이들은 쉽게 쓰지 않을 오래된 표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배를 잡고 깔깔댄다느니 포복절도하고 만다느니 장관에 넋을 잃는다느니 하는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은 너무 진부한 터라 읽어도 감흥이 차단되는 역효과가 있는데 이 책은 트레이드마크처럼 자주 사용한다. 처음에는 너무 성의가 없어보여서 목에 자꾸 걸리더니 너무 대 놓고 쓰이니 일삼아 찾아 보게 된다. 문장을 미려하게 뽑기보다는 실제의 고군분투를 살리는데 좀 더 심혈을 기울였을 거라는 선의를 믿어주는 차원이랄까?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투박함과 미숙함을 교묘하게 숨기지 않는다. 그 순박이 주는 친근함이 이 여행기의 진정한 색다름이다. 장르를 따지자면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잃지 않는 소규모 재난영화인데 그게 또 독립영화라고 보면 되겠다. 할리우드 영화가 멋지고 화려하고 매끈하다고 해도 보다보다 지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진지와 거침이 뒤섞인 소품 영화를 보면 상쾌해 질 때가 있는데 이 책의 가치가 그 어디쯤이 되겠다.

하지만 당분간 이 책의 진도는 더 빼지 않기로 한다. 2권도 사지 않을 작정이다. 책 살 돈으로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과 영상통화라도 자주하려고 한다(통화료가 비싸 몇 십분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우리 부모님과는 같이 세계여행을 나서지 못한 데서 오는 질투다.  남의 어머니보다는 내 엄마와 아버지를 챙기는 게 우선이다. 엄마~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태원준 지음, 북로그컴퍼니(2013)


태그:#여행기, #책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