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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섭 KBS 취재주간이 4일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보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이날 '방송독립' 배지를 달고 개표방송을 진행했다(빨간색 원).
 홍기섭 KBS 취재주간이 4일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보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이날 '방송독립' 배지를 달고 개표방송을 진행했다(빨간색 원).
ⓒ KB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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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KBS <9시뉴스> 앵커이자 6·4지방선거 개표방송을 진행한 홍기섭 취재주간이 길환영 KBS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보직에서 물러났다. 취재주간으로 임명된 지 3주 만이다. 홍 주간은 4일 '방송독립'이라고 쓰인 노란 배지를 달고 방송을 진행했다.

이날 오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아래 KBS새노조)는 그가 보직 사퇴 뜻을 밝히며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을 공개했다. 홍 주간은 이 글에서 길 사장의 최근 보복성 인사를 두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폭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길 사장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동료 부장을 광주에 발령내고, 업무복귀 호소문에 동참하지 않은 총국장의 보직을 박탈했기 때문이었다.

"좌파노조? 해서는 안 되는 말"... 길환영 '편 가르기' 비판

홍 주간은 길 사장의 '편 가르기'도 비판했다. 그는 "좌파노조나 기자 직종 이기주의란 말을 거둬 달라, 협회나 노조가 정치세력화한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렇게 규정하면 사장님 편에 설 사람이 몇 명 늘어날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KBS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기자들을 모욕하는 위험한 발언"이라고 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개표방송 진행을 양해해달라고도 부탁했다. KBS 양대 노조는 현재 길환영 사장의 퇴진과 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파업 중이다. 홍 주간은 파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개표방송은 공영방송의 중요한 책무"라 번복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관련 기사 : 길환영 해임안 결국 표결 연기 노조 총파업 돌입...KBS 격랑 속으로).

홍 주간은 길 사장에게 "국민의 방송 KBS를 지켜달라"라고 호소했다. 그는 "KBS 정상화라는 더 절박한 것을 갖고 싶다면 먼저 손에 쥔 것을 놓아야 한다"라며 "사장님의 용단을 간절히 기다린다"라고 밝혔다.

KBS새노조는 "이세강 보도본부장 사표와 김종진 디지털뉴스국장, 김진수 국제주간에 이어 홍기섭 취재주간까지 보직 사퇴로 길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라며 "이제 길환영 사장 곁에는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KBS이사회는 오는 5일 오후 4시 임시이사회를 열어 길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표결한다.

다음은 홍기섭 주간이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 전문이다.

저도 이제 보직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임명된 게 지난 5월 13일이니 딱 3주가 지났군요.

격동의 87년이라고 하죠.  27년 전인가요. 수습꼬리를 채 떼기도 전에 14기 동기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외치며 농성하고 대자보를 써 붙인 일로 모두가 지방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지요. 그 때도 여기자 2명은 제외됐는데 이번에 동료 김혜례 부장이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로 발령이 났습니다.  어느 총국장은 업무복귀 호소문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임 5개월도 안 돼 보직을 박탈당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폭거입니다.

사장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나 어느 세력 편에도 선 적이 없는 중간인, 회색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오직 당당하고 떳떳한 보도만을 꿈꿔온 기자일 뿐입니다. 후배들도 저와 다르지 않습니다. 좌파노조나 기자 직종 이기주의란 말은 거두어주십시오. 협회나 노조가 정치세력화한다니요.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그렇게 규정하면 사장님 편에 설 사람이 밖에서 몇 명 늘어날지 모르지만 스스로 KBS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기자들을 모욕하는 위험한 발언입니다.

이제 홀가분해졌습니다. 보도본부 국장단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후배·동료의 지방발령인사가 취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설 자리도 할 일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본부장마저 붙잡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너무 염치없는 짓이지요. 후배 부장, 팀장들을 무책임하다고 질타했던 제가 그들 편에 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자리에 연연해서가 아닙니다. <9시 뉴스>만은 지켜야 한다고 했던 제가 그 사명감을 잠시 내려놓는 건 더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후배 여러분께 한마디 드립니다. 개표방송은 선거기획단장과 보도본부장이 급히 요청해 받아들였지만 차마 번복할 수 없었던 점 양해바랍니다. 개표방송은 공영방송의 중요한 책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개표방송을 마지막으로 보직사퇴하려 한 저의 뜻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사장님, 국민의 방송 KBS를 지켜주십시오. 무언가를 꼭 쥔 두 손으로는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습니다. KBS 정상화라는 더 절박한 것을 갖고 싶다면 먼저 손에 쥔 것을 놓아야 합니다. 사장님의 용단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보도국장 취재주간 홍기섭

2014.6.4.


태그:#KBS파업, #길환영, #홍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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