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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말리아로 가는 길 서장 고도 5000미터의 설산이 보인다
▲ 서장 설산의 위용 희말리아로 가는 길 서장 고도 5000미터의 설산이 보인다
ⓒ 이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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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에 가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신 101세 어머님.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없고, 자동차도 없다. 자전거를 세발자전거로 만들어 어머니가 앉을 자리를 만들고 사방에 창문을 만들어 경치를 볼 수 있게 만들어놓고 어머님을 모셨다. 그리고 70대 아들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을 읽으면서 그 900일 동안 먹을 음식들을 어떻게 조달하고 만들어 어머님에게 드렸으며, 밤에는 어떻게 어머니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을까, 천막을 쳤을까, 눈비와 매서운 추위는 어떻게 했을까, 무더위에는 어떻게 어머니를 보호했을까 등의 난관을 어떻게 해결했을지 걱정이 앞섰다. 103세 되신 어미님이 생일을 며칠 앞두고 돌아가시자 유골을 자전거에 싣고 서장까지 가서 어머님 유해를 안장했다는 이야기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내 생애에 지금 서장으로 가는 소풍이 가장 행복했다." 

이 대목에서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글을 마저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에 나오는 70대 효자의 행각은 매스컴을 탔을 것 같다. 언젠가 이 효자 이야기를 메스컴 뉴스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읽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그는 유골을 자전거에 안치하고 생전의 어머님을 모시듯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아 서장으로 갔을 것 같다. 하늘공원 서장으로 가는 길에 이 효자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모여 들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 광경을 봤더라면 밤에 잘 자리라도 마련해줬을 것 같다.

노모에게 드릴 음식은 별도로 죽같이 만들어  들였을 것 이여서 음식을 마련하는 일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가다가 냇물을 만나면 빨래도하고 몸도 닦았다고 한다. 모든 일상이 길거리였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의 마지막 대목이 눈길을 끈다. 서장에 유골을 모시고 나서 어머님이 바람이 돼 아들을 쓰다듬어주시며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귓가에 들린다는 구절이. 이 구절을 읽자 가슴이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왕일민.유현민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7)


태그:#600일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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