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국회의원(부산 사상)이 밀양 송전탑 반대 움막농성 현장에서 주민들을 만나 "죄송하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8일 오후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후보와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129번 철탑)과 위양마을(127번), 상동면 고답마을(115번) 움막농성장을 찾았다.
문재인 의원이 밀양 송전탑 반대 움막농성장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대선 때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6·4 지방선거 후, 밀양시의 움막 강제철거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긴장감이 높아지는 속에 문 의원이 현장 방문은 관심을 끌었다.
문 의원은 손수 차량을 운전해 현장에 도착했다. 문 의원과 김경수 전 후보는 129번 철탑 현장에 있는 움막농성장 앞 구덩이에 한옥순(66)씨와 함께 들어가 보기도 했다. 주민들은 구덩이 안에 쇠사슬을 매달아 놓았고, 가스통을 설치해 놓았다.
주민들은 "왜 이제사 왔느냐"고 하면서도 "지금 와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한옥순씨는 "나는 2년 전부터 죽으려고 유서를 써놓고 있다"며 "현 정부와 언론은 우리 보고 돈을 더 받기 위해 반대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돈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 "억울하다" 하소연 쏟아내129번과 127번 철탑 현장에 있는 움막농성장에서 문재인 의원을 만난 주민들은 갖가지 '억울함'을 쏟아냈다. 한 주민은 "그동안 여러 가지 우리를 대변해 준 것으로 아는데,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말 그대로 우리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길곤(평밭마을)씨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왜 목숨을 내어놓고 고생하겠느냐, 우리는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고, 자식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며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공산주의도 아니고, 강제로 움막을 철거하려고 한다. 우리는 10년째 싸우고, 노숙 생활은 4년째다"고 말했다.
권영길 위양마을 이장은 "현장에 와주어서 고맙고, 오늘 논에서 모내기 준비를 하다 왔다. 지금 우리는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며 "우리가 평생 살아온 땅을 어떻게 돈으로 바꿀 수 있느냐"고 하소연 했다.
한 할머니는 "젊어서 천지도 모르고 영감 따라 올라와 산 지 3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6남매 키우며 살고 있다"며 "대통령 선거에서 정말 당선되기를 바랐는데, 안 되고 나서 우리가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또 한 주민은 "이렇게 우리를 찾아와 주니 몸둘 바를 모르겠고, 감사하다"며 "지난 대선 때 꼭 되리라 100% 믿었다. 우리는 4년간 노숙생활하고 있는데, 이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127번 철탑 현장에 있는 움막을 지키고 있던 주민들 역시 문 의원을 만나 갖가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송루시아씨는 "송전탑 반대 농성 현장에서는 온갖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며 "우리는 힘 닿는 데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손희경(79)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이야기 하자 문 의원은 편안히 앉으시라고 권했다. 손 할머니는 "철탑이 들어서서 죽으면 억울하고, 그냥 죽으면 억울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기 철탑이 들어오지 않으면 나라가 안 되느냐. 왜 이곳에 철탑을 세우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을 향한 질타도 이어졌다. 서종범씨는 "새정치연합이 야당답게 해달라,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앞서 서서 이끌어 달라, 왜 야당답게 하지 못하느냐"며 "서민 없는 권력자는 없고, 서민이 있기에 공장도 있고 재벌도 있는 것이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의원 "원전 정책 바뀌어야"문재인 의원과 김경수 전 후보는 주민들의 말을 들은 뒤,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발언이 끝나자 주민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김경수 전 후보는 "미안하고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며 "지난 지방선거 전에 아랫마을(장동마을 농성장)을 다녀간 적이 있고, 선거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고, 이대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경남도가 강 건너 불구경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의원도 "죄송하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는 "밀양 송전탑 문제로 주민들의 고통이 오래되었고, 두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그런데도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에서 중재 조정을 했지만 실효성이 없이 끝나고 말았다"며 "이런 속에 공권력이 움막 철거 준비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답답하고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문 의원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돈과 효율을 앞세워서는 안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더 소중하며,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이전의 대한민국과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에 진정성을 시험할 첫 번째 시금석이 바로 밀양 송전탑 문제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문 의원은 "대통령선거 때 밀양송전탑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지금 주민들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 처해 있어 정치권에서 뭔가 도울 길을 찾고 싶다, 국회 해당 상임위 위원들과 논의하겠다, 행정대집행을 잠시 중단하고 더 나아가 밀양송전탑 건설을 유보하고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을 찾도록 힘닿는 대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문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 때 오거돈 전 부산시장 후보와 김경수 전 후보는 고리원전 1호기 즉각 가동 중단을 내세웠고, 오 전 후보는 49%, 김 전 후보는 36%의 득표를 했으며, 삼척에서는 원전반대 후보가 당선되었다"며 "원전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국민여론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것은 새롭게 검토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문 의원은 "구덩이에 쇠사슬과 가스통을 준비해 놓았던데, 송전탑 반대를 힘껏 저항하지만 극단적으로 위험한 물건들은 조금 피해서, 가급적이면 원만하게 했으면 한다"고 제시했다.
127번 철탑 움막농성장에서 문 의원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해결을 못하고 도움을 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대선 때 제가 당선되면 밀양 송전탑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 기대했을 것인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면목이 없다"고, "공권력 투입을 앞두고 답답할 것 같아 위로도 할 겸해서 찾아 왔다"고 말했다.
또 문 의원은 "원전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그때까지 송전탑 공사를 잠정 중단하든지, 행정대집행을 중단하든지 하면서 나라 운영 방식이 조금이라도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