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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 삐딱이 8살 손자가 엉뚱, 삐딱하게 벌리는 일들이 황혼기에 즐거움을 준다.
엉뚱, 삐딱이8살 손자가 엉뚱, 삐딱하게 벌리는 일들이 황혼기에 즐거움을 준다. ⓒ 이월성

8살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형에게 짓눌려서 기를 펴지 못하다가 초등학교엘 가서는 제 세상을 만났나 보다. 3일이 멀다하고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친구들과 싸웠다는 전화는 인사 전화로 알았는데, 손자가 짝꿍인 여자애에게 300원을 주었단다.

"이재야, 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
"알아 그래서 할머니가 나에게 돈을 주잖아?"

"그런데 왜 짝꿍에게 돈을 주었지?"
"짝꿍이 좋아서."

더 할 말이 없어진다. 짝꿍을 무턱대고 미워하랄 수 없고, 귀중한 돈을 짝꿍이 좋아서 줬다는 말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요놈은 밥을 먹으면서도 유별나게 반찬 타령을 한다. 반찬으로 순두부와 간장 묻힘, 김치를 주면 "반찬이 없으면 멸치라도 주어야 하잖아?" 하고 엄마 얼굴을 쳐다본다. 8살짜리의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을 잘도 한다. 서화유치원에선 아이들과 함께 직접 김치를 담근 뒤 김치와 멸치볶음, 콩장과 함께 밥을 준 적이 있다. 영양가 높은 음식들을 너무 많이 먹어 비만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한 행사였던 듯하다. 그걸 생각해서 이재에게 순두부와 김치를 주었더니 엄마에게 반찬 투정을 했다.

이재가 6살 때 엄마 앞에서 한글공부를 했다. 전지만한 한글 글공부 판에서 기러기를 그려놓고 옆에 러 라고 쓰여 있다. 엄마가 "러" 자를 가리키면 이재가 "러"하고 읽어야 하는데 "매"라고 읽었다. 이재가 "러"자를 "매"라고 읽는 데는 이모할머니 탓도 조금은 있었다. 이모할머니가 기러기를 갈매기 그림으로 알고 "매"라고 가르쳐 주어서 "매"라고 읽었나보다. 엄마 얼굴이 험악해지자 이재는 옆에 서있던 내 바지를 부여잡고 응원을 청한다. 내가 "기러기 하는 러자네" 하니까? 금방 얼굴에 웃음을 가득 채우고 큰소리로 보란 듯이 "러" 한다.

어느 날 이재가 예쁘게 생긴 짝꿍 이와 손잡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 왔다. 이재 엄마는 놀라서 어찌할 줄 몰랐다. "예쁜아! 너 엄마가 걱정하지 않을까? 집에다 전화부터하자" 하고 예쁜이를 기다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예쁜이 엄마가 놀라는 것도 매 한가지였다. 예쁜이 엄마는 딸이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에 돌아오지 않자 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라고 말해 왔다.

이재가 사춘기가 온 것일까? 아니면 소꿉친구로 아는 것일까? 가름이 가지 않았다. 이재엄마가 예쁜이에게 짜장면을 시켜주고 이재와 같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예쁜이는 짜장면 가락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고는 입가에 묻은 자장을 열심히 휴지로 닦았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배꼽을 잡았다. 이재도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웃어야 할지, 못 본 체 해야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30년 전만해도 초등학교 일학년들이 가슴에 손수건을 매달고 다녔는데, 놀라운 변화를 눈으로 보게 된다.


#엉뚱, 삐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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