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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지게꾼이 무거운 짐을 지고 비선교를 지나가고 있다. 땀 흘려 번 돈으로 장애인을 돕는 설악산 지게꾼은 설악산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설악산 지게꾼이 무거운 짐을 지고 비선교를 지나가고 있다. 땀 흘려 번 돈으로 장애인을 돕는 설악산 지게꾼은 설악산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 최오균

신흥사에서 무려 1시간을 보낸 후 비선대로 가는 숲길로 접어들었다. 신흥사에서 비선대까지 약 3km에 이르는 이 길은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 서 있는 숲길이다. 미끈한 금강소나무를 비롯한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마치 산소의 강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나무들은 광합성을 통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탄산가스를 들어 마시고, 대신 신선한 산소를 만들어 우리를 숨 쉬게 한다. 1헥타르의 숲이 1년 동안 16톤의 탄산가스를 마시고, 40명이 1년간 숨 쉬는 데 필요한 12톤의 산소를 만들어 낸다.

 신흥사에서 비선대로 가는 숲길. 소나무, 참나무 등 큰키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산소공장을 방불케 한다
신흥사에서 비선대로 가는 숲길. 소나무, 참나무 등 큰키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산소공장을 방불케 한다 ⓒ 최오균

비선대로 가는 길은 키 큰 나무들이 울울창창하게 꽉 들어차 있어 천연 공기정화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길이다. 길을 걷는데 저절로 심호흡이 되며 산소가 폐부 깊숙이 들어간다.

"형, 숲길이 너무 좋아요. 길이 펀펀해서 형수님이 걷기에도 좋을 것 같은데요. "
"그렇군. 조 여사가 걷기에도 좋을 것 같아. 다음에 다시 함께 오자고."
"그럼 우린 마나님들을 위해 사전 답사를 나온 셈이네. 하하." 
"하하, 여부가 있나. 마나님들 덕분에 우리가 존재하는데. 작년에 대장암 수술을 한 K도 함께 오면 좋겠어."  

퇴행성관절염으로 무릎이 좋지 않아 함께 산행하지 못한 아내가 생각이 났다. 친구 P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신흥사에서 비선대에 이르는 이 평탄한 숲길은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도 산책할 수 있는 쉬운 길이다. 다음에 함께 와서 설악동 민박집에 베이스캠프를 치고 며칠 이 숲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6.25 전쟁때 계급장도 이름도 군번도 모르는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
6.25 전쟁때 계급장도 이름도 군번도 모르는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 ⓒ 최오균

숲의 정령이라도 나올 법한 숲길을 30여 분 정도 걸어가니 흰 탑이 하나 보였다. 안내문을 보니 '이름모를자유용사의비'라고 적혀있다. 푸른 숲 속에 하얀 탑이 무명용사의 혼령처럼 보였다.

6·25 한국전쟁 당시 설악산 전투에서 중공군과 싸우다가 산화한 이름도 계급도 군번도 모르는 젊은 용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65년에 세운 탑이다. 탑 밑에 무명용사들을 추모하는 글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다. 

'지금은 자유의 땅 여기 님들이 고이 쉬는 설악에 영광의 탑은 높이 섰나니 아아 붉은 원수들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던 날 조국의 이름으로 최후까지 싸우다가 꽃잎처럼 흩어진 수많은 영들 호국의 신이여 님들의 이름도 계급도 군번도 누구 하나 아는 이 없어도 그 불멸의 충혼은 겨레의 가슴깊이 새겨져 길이 빛나리라 천추에 부를 님들의 만세여 언제나 푸른 동해물처럼 영영 무궁할 지어다. 一九六五년 十월三十일'

이렇게 조국을 위해 순국한 이름도 모르는 무명용사들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 아름다운 설악산을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위령탑에 잠시 추모의 묵념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병풍처럼 조금씩 나타나는 설악산 기암괴석 비경
병풍처럼 조금씩 나타나는 설악산 기암괴석 비경 ⓒ 최오균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숲길을 입체적으로 장식한다. 이 길은 설악산 쌍천이 나란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제 그 아름다운 설악산의 기암괴석도 조금씩 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고요한 산사에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아니, 이 고요한 숲 속에 웬 자동차지?"
"산림청 차겠지."

오래된 용달차가 더이상 올라갈 수 없는 길에서 무언가 짐을 부려 놓았다. 그 짐을 기다리고 있던 어떤 지게꾼이 지게에 옮겨 실었다. 그리고 말없이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꽤 무거워 보이는 큰 상자다.

 가파른 언덕도 거든하게 올라가는 설악산 지게꾼. 그러나 품삯은 고작 1만원~3만원이라고 한다.
가파른 언덕도 거든하게 올라가는 설악산 지게꾼. 그러나 품삯은 고작 1만원~3만원이라고 한다. ⓒ 최오균

"얼마 전 TV에서 설악산 지게꾼으로 소개된 그분 아닐까?"
"글쎄. 나도 그 프로그램을 보긴 봤는데."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가서 얼마나 받을까?"
"그게 1만 원에서 3만 원 정도라고 하더군."
"흐흠, 그런데 땀 흘려 힘들게 번 돈을 장애인을 위해 쓴다고 하니…."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얼마 전 TV에서 설악산 40년 지게꾼으로 소개된 임기종씨는 아니었다. 임기종씨는 16세부터 40년 동안 설악산의 높고 험한 휴게소나 산장, 암자에 냉장고, 가스 통 등 무거운 짐을 지게로 지고 나르는 지게의 달인이다. 그러나 그가 받는 품삯은 한 번에 고작 1만 원에서 3만 원 정도라고 한다.

지게를 지고 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그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비선대휴게소까지 간다고 했다. 지난 번 TV 프로에서 임기종씨는 비선대휴게소까지는 1만 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아마 저 분도 그 정도의 품삯을 받고 저 무거운 짐을 지고 갈 것이다. 저렇게 힘들게 번 돈을 장애인을 위해서 쓴다니….

지금 내 배낭 속에는 2~3일간 먹을 비상식량과 등산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들이 들어 있다. 아마 10kg은 족히 넘을 것이다. 그런데 설악산 지게꾼들은 보통 80~100kg을 지게에 지고 간다고 한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비선대 휴게소로 들어갔다. 아침 일직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나르는 그를 바라보자, 10kg을 메고 끙끙 거리는 내 자신이 심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설악산 지게꾼이 비선대 휴게소 가고 있다.
설악산 지게꾼이 비선대 휴게소 가고 있다. ⓒ 최오균

남을 위해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어떤 알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것일까? 160cm도 되지 않는 작은 체구를 가진 임기종 씨는 한창땐 230kg까지 짐을 설악산을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장애인들을 위해 쓰고, 봉사 대상으로 받은 상금도 불우 독거 노인들을 위하여 효도관광을 시켜 주었다니 놀랍다! 설악산은 산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설악산을 지키고 있기에 설악산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세상은 이처럼 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균형을 유지하며 버티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설악산보다 더 아름답고 위대한 설악산 지게꾼을 바라보며 휴게소 오른쪽으로 난 구름다리를 통해 비선대로 갔다. 곧 비선대의 아름다운 비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지난 5월 28일부터 28일까지 설악산을 여행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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