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중학생 이석이와 초등학교 1년생 이재가 여행가방과 책이 든 배낭을 가지고 집에 쏟아져 들어왔다. 이 녀석들 엄마가 몸이 아파서 토, 일요일에는 우리 집으로 와 있게 했다.
두 녀석이 사내 아이들이어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말썽을 피우면 집안이 들썩거린다. 제일 소란스러울 때가 컴퓨터 앞에 둘이 앉아서 서로 컴퓨터를 차지하려고 다툴 때다. 잠을 잘 때에도 닭싸움하듯 툭탁이다가 지쳐서 잔다. 나는 저희들 집에서는 한 대 밖에 없는 컴퓨터를 두 대 놓아서 서로 한 대씩 쓰도록 하였다. 요 녀석들은 내가 무서운 얼굴을 하면 "할아버지가 어울리지 않는다" 고 웃어댄다. 할아버지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놈들이다.
"너희들 여기 와서는 죽이면 죽, 밥이면 밥, 김치, 깍두기 하나면 반찬은 그만이고 주는 대로 꿀꿀이가 되어야 한다. 오늘은 특별히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을 차려주겠다. 점심은 무엇으로 할까?" 라고 물었다.
"스파게티요."스파게티는 말은 들었어도 어떤 음식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런 것은 말고 짜장면, 설렁탕, 갈비탕, 해장국, 같은 것을 말하라"고 했더니 "마트에 가면 팔아요"라고 말한다.
별 수 없이 두 손자들을 데리고 마트로 갔다. 진열장에서 스파게티 소스는 찾았는데 스파게티 면을 찾을 수 없었다. 점원에게 스파게티면이 있는 곳을 물어서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원이 "봉투가 필요하세요?" 묻는다. 내가 "아니요, 노예들이 두 명이나 있어서 들고가라고 하면 돼요"라고 했더니 계산원이 자지러진다.
"우리가 노예가 아니고 할아버지가 노예예요!" 라고 두 녀석이 똑같이 나를 쳐다보고 말한다.
마트에 오기 전에 이집트 문명 이야기를 두 손자들에게 들려주었다. 람세스 2세의 전성기를 이야기 해주었다. 신전을 짓는 데 노예 3만 명을 동원했다는 말을 해 주었다. 이렇게 나온 노예 이야기를 손자들과 어울려 장보기에서 써먹었더니 그 말이 나에게로 되돌아 왔다.
"할아버지는 큰 노예여서, 무거운 스파게티 소스가 든 병을 들고 가세요, 나는 면, 이재는 가벼운 사천 짜장을 들고 가면 돼요"라고 큰 녀석이 말했다. 모두 웃으면서 한가지씩 들고 마트를 나왔다.
할아버지인 내가 손자들을 "노예"라고 불렀다가 내가 "큰 노예"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