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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박영돈 지음)
▲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박영돈 지음)
ⓒ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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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팎으로 '가나안' 성도들이 있다.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나안'성도는 예전에는 신앙이 있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더이상 교회에 '안 나가는' 이들을 말하기도 하며, 다른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새로 이주할 땅으로 제시된 가나안을 향하여 가던 여정에 빗대어 좋은 교회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고있는 이들을 말하기도 한다.

'가나안' 성도 중엔 의외로 신앙 좋다고 이름났던 이들이 적지 않은데, '가나안' 성도는 예수님을 더이상 믿지 않는 이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지 않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실망한 이들인 경우가 많다. 교회를 등진 '가나안' 성도들의 뒷편엔 교회의 '일그러진' 모습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말이다.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은 이 시대 한국 교회와 목회자가 한국 사회에서 인지도나 호감도를 많이 잃었을뿐 아니라 바른 신앙과 바른 교회의 모습도 참 많이 잃어버렸다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 책이다. 이 책은 '한국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를 물으며 지금 한국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얼핏 말해준다. 한 마디로, 현재 한국 교회는 교회답지 않다는 말이다.

'일그러진' 한국 교회와 대형교회의 관계

'일그러진' 한국 교회를 말하려고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는 '대형교회'이다. 간단히 말해, '대형교회'는 '일그러진 한국 교회'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왜냐하면, '대형'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는 데 있어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 일차적 이유가 바로 '대형'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은 그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머리요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이상을 서로 나누고 그러한 삶을 꿈꾸고 실천하는 데 있다. 이러한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이상과 삶을 생각하고 이뤄가기 위해서는 그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그 관계를 점검하고 성숙시켜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모 이상을 넘어서는 안 된다.

상식적으로 서로 얼굴도 제대로 알기 어려울만큼 사람이 많아지면 친밀하고 긴밀한 관계는커녕 오히려 사람을 붙잡아두고 교회 조직이 '계속 굴러가게' 만드는 일에 끊임없이 교회의 꿈이 매이기 쉽다.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 일과 제도 중심의 교회가 되기 쉬운 게 바로 대형교회이다. 대형교회의 조짐이 보이는 순간부터 그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는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을 잃기 쉽다. 요컨대, 대형교회는 교회다움을 어떻게 잃어버리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대형교회가 지닌 이러한 치명적이고 태생적인 약점을 생각할 때 이 책이 '대형교회' 안에서 '일그러진 한국 교회'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교회의 이상보다 일과 제도 중심이 되기 쉬운 대형 교회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갖기 쉽지 않다. 대형교회의 목회자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는 일보다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이탈하지 않고 어떻게 계속 교회에 머물며 활동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또한, 대형교회는 그 규모가 말 그대로 크기 때문에 교회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신앙적 고민보다 그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정과 조직과 건물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방법을 찾기 쉽다. 대형교회는 교회다움을 유지하기가 정말 아주 어렵다. 대형교회는 너무 문제점을 품고 있다.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 사이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그리스도인다운 삶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이루게 되는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기도와 나눔이 없을 때 교회는 그야말로 산으로 가든지 목적 없는 질주 본능만 남기 쉽다. 이렇게 교회다움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채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는 양적 성장과 멈출 수 없는 질주 본능에 매몰되기 쉬운 게 바로 대형교회이다.

한국 교회가 겪는 문제들의 집합소라고까지 할 수 있는 대형교회 문제는 작은 교회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작은 교회 또는 대형교회에 비해서는 작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교회들은 대형교회 주위에서 교회다움에 대한 고민보다 대형교회에 대응하는 방법이나 대형교회를 닮는 방법을 찾아 애쓰게 된다. 교회다움에 대한 고민과 신앙적 소신보다 생존과 비교 의식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하는 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대형교회와 그 목회자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일그러진 한국 교회'를 어떻게든 바로잡고 살려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대형교회'를 살펴보고 대형교회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대형교회가 문제이니 작은 교회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교회다운 교회가 좋은 것이지 교회가 '작은'교회이기 때문에 좋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를 거듭거듭 입에 올릴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형교회는 교회다움을 잃어버리는 데 빠르고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데 너무 느리거나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며 어쨌거나 한국 교회를 주도하는 곳이 바로 대형교회이기 때문이다. 일정 규모 이상 커지면 교회 전체의 신앙적 고민과 결단이 없는 한 교회에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누구도 쉽사리 고치기도 말하기도 어렵다.

목회자와 설교, 한국교회를 진단하는 기본 잣대

책은 크게 보아 '목회자'와 '설교'에 집중한다. 한국 교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목회자에게 많은 것이 집중되어 있다. 교회 조직과 운영, 설교, 재정, 행사 등등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이 목회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교회다움의 가장 큰 특징 중 한 가지가 공동체성인데 지나치리만치 목회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교회는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유지와 성장과 그 반복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담임목회자 중심으로 교회를 이뤄갈 수밖에 없다.

목회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교회는 권위와 순종이라는 구도를 무척 잘 받아들이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앞에두고 세습, 재정, 성, 권력 등등 여러 분야에서 사건사고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대형교회는 이렇게 계속 쏟아지는 문제들을 제어하기도 어렵고 멈추거나 되돌리기는 더더욱 어려우니 생각할수록 답답함이 더하기 되는 것이다.

목회자의 가장 핵심적인 일은 설교이다. 보통 설교를 중심으로 예배가 이뤄진다. 기도 없는 예배나 찬양 없는 예배보다 설교 없는 예배가 뭔가 모르게 이상하다. 한국 교회는 설교 중심의 예배이고 설교는 대개 목회자가 전담한다. '대형교회'로 모아지는 한국 교회의 문제들 중심엔 목회자가 있는 경우가 많고 목회자의 핵심 기능인 설교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이 목회자와 설교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을 새삼 기억해둬야 한다.

한국교회가 뭔가 이상하다면, 한국교회가 뭔가 일그러져 있다면, 그래서 한국교회가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들여다보는 한국 교회에서 목회자와 설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가 쏟아내는 문제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며 왜 계속 반복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를 문득문득 알게 될 것이다. '일그러진 한국 교회'를 요모조모 들여다보고 그래서 교회다움을 새삼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이 책, 두고 두고 두고볼 일이다.

한국 교회가 선교 100년 만에 세계 최대의 교회와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 감리교회, 순복음교회로 성장하는 쾌거를 거두었다는 허황된 자랑의 뒤안길에는 온갖 비리와 부작용과 폐해가 가득하다. 대형 교회들에서 연이어 터지는 재정 비리, 세습, 성추행, 논문 표절 등 낯 뜨거운 문제들은 한국 교회의 얼굴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이것이 무한 대형화의 허욕이 불러온 결말, 즉 부끄러운 영광이다. 

경제 성장의 기적에 심취해 축배를 드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사회 상황에서 교회 성장의 기적은 별 거부감 없이 또 하나의 축하할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국가 경제에서 성공 신화가 실현된다면 한강의 기적이라는 식으로 기뻐할 수 있겠으나, 교회 안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사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중략)

성공 신화가 기적적으로 실현될 때 그 신화는 절대 진리의 위치로 승격되어 교회의 모든 가치관과 목표를 재설정하고 교회의 모든 사역과 자원을 거기에 맞추어 가동하는 전횡을 휘두른다. 결국 성공 신화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해서 교회를 주관하는 권위를 행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성공 신화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섬기는 시녀 역할로 전락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번영 신앙과 기복 신앙의 메시지가 이렇게 성공 신화에 의해 각색되고 변질될 것이다. 일부 대형 교회들이야말로 성공 신화가 기적처럼 실현된 산증인으로서 신화적 교회관의 강력한 메신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형 교회를 이루는 것이 목회 성공의 척도라는 가치관이 교계에 편만해지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런 교계 문화와 풍조가 목회자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자극하여 서로 경쟁하듯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일종의 모방 욕망을 고조시켰다.

성공 신화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대신하여 교회를 주관하면, 교회가 추구하는 지상 목표가 성장이 되며 교회의 모든 사역, 즉 설교와 목회와 전도는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동원된다. (중략)

... 한국 교회의 시급한 과제는 교회를 작동하게 하는 하드웨어, 즉 '중심 가치 시스템'을 교체하는 일이다. 그동한 한국 교회를 주관해 온 성장 제일주의 가치관과 패러다임을 대신할 새로운 가치 체계의 도입이 시급하다. 지금이야말로 성장주의가 초래한 영적 폐허 속에서 새로운 교회의 꿈을 꾸어야 할 때다.(<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39~43)

덧붙이는 글 |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한국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박영돈 지음. 서울: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3.11. 1만4천원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 한국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박영돈 지음, IVP(2013)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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