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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실시하는 건축물의 부실한 소방시설 점검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관련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간차원의 소방시설 자체점검은 소방관련법에 따라 모든 건축물이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강제적인 점검제도다. 이러한 소방시설 민간 자체점검은 '작동기능점검'과 '종합정밀점검'으로 나뉘는데 소방시설이 설치된 모든 건축물은 규모에 따라 해당되는 점검을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작동기능점검은 소방법상 특정소방대상물로 분류되는 모든 건축물을 대상으로 연 1회 이상 실시하는 기본적인 성능점검을 말하며 '종합정밀점검'은 비교적 규모가 큰(연면적 5천 제곱미터 이상, 16층 이상 아파트, 고위험 다중이용업소가 복합적으로 들어선 건축물 등) 건축물을 대상으로 1년에 1회 이상 세밀하게 실시하는 점검을 말한다.

소방관련법에 다라 민간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소방시설 자체점검의 종류와 특성
▲ 소방시설 민간 자체점검 소방관련법에 다라 민간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소방시설 자체점검의 종류와 특성
ⓒ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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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리면 규모가 크거나 자동소화설비 등 주요 소방시설이 설치된 시설물은 1년에 한 번씩 '종합정밀점검'을 받아야만 하고 이는 주요 소방시설이 구축된 건축물의 필수적인 점검이다. 이러한 종합정밀점검은 실제 화재시 소방시설의 작동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에는 관련법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소방방재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같은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해야 하는 특정소방대상물은 전국적으로 5만2088개소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들어 상당수 건축물에서 실시된 종합정밀점검이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경기도 감사관실이 민간 업체로부터 종합정밀점검을 받은 도내 383개 건축물에 대해 불시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한 결과 66%에 이르는 253개 건축물에서 불량 소방시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소방관련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실시되는 민간 자체점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세월호 사고 이후 화재안전분야에 대한 관심까지 커지면서 소방시설 점검제도의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까지 떠오른 상황이다.

부실한 소방시설 자체점검 제도의 문제점은 소방분야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미흡한 관련 제도와 전문업체의 도덕성에 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점검비용 지불하는 건축주 요구사항 무시할 수 없어"

민간점검업체 직원이 소방시설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하는 모습. 감지기의 작동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 종합정밀점검 민간점검업체 직원이 소방시설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하는 모습. 감지기의 작동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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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실시하는 소방시설 자체점검의 가장 큰 문제는 건축주로부터 점검 의뢰와 돈을 받고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전문 소방시설관리업자 입장에선 성실한 소방시설점검 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생계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적지 않다. 건축물 소유주의 입장에선 "내 돈 주고 시키는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돈 주는 입장 측의 '갑질'은 더더욱 성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갑을 관계'라는 근원적 문제점은 전문 점검업자들의 가격경쟁을 부추기고 소방시설관리 업무를 발주하는 건축물 관계인의 요구를 반드시 들어줘야만 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관련 전문 업체들은 내년, 그리고 다음년에도 해당 건축물의 점검을 수주해야만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전문 업자가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하면 적게는 수 개에서 수십 개에 이르는 소방시설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점검업자는 문제가 발견된 이 점검보고서를 그대로 소방관서에 제출해야 하지만 정작 소방관서에 제출되는 보고서에는 실제 지적된 점검결과와는 다르게 "이상이 없다"거나 "미미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꾸며진 허위 보고서가 제출되기 일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점검비용을 지불하고 점검업체를 선정하는 건축주가 요구하는 사항을 막무가내로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실제 소방서에 제출되는 보고서를 단 하나라도 수정하지 않는 경우는 많아봐야 20%도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실점검 부추기는 '저가 가격 경쟁'

경기도에 위치한 한 아파트는 1900세대에 이르는 대규모 단지다. 이 아파트의 올해 소방시설 종합정밀점검 실태를 확인할 결과 점검비용은 고작 180만 원, 점검일은 단 3일이었다. 비전문가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점검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수십 개의 동이 연결된 지하 주차장 스프링클러설비와 각 동에 들어간 자동화재탐지설비, 제연설비 등 이 아파트에 설치된 소방시설만해도 수십 종에 이르지만 이를 단 3일의 일정으로 점검을 완료한 셈이다. 그것도 180만 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저가의 점검비를 받았다.

이처럼 낮은 점검비용으로 수주되는 점검업 시장은 부실한 소방시설점검을 부추기는 심각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소방시설점검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다 보니 올해 초 기준으로 전국의 관련 전문업체는 620개를 넘어섰고 결국엔 업체들 간의 경쟁을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다.

소방시설관리업체 사이에서는 타 업체보다 싼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일부 특수건축물을 제외하고서는 점검 능력을 과시하며 영업을 하는 업체는 찾아보기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업체가 한 건축물의 점검을 100만 원에 맡겠다고 하면 B업체는 90만 원, C 업체는 50만 원(50% 이상)까지 가격을 낮춰 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소방시설관리업계의 관계자 A씨는 "같은 업체가 보더라도 도저히 제대로 된 점검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가격으로 점검을 수주하는 업체들도 많다"며 "이렇듯 터무니 없는 가격은 점검 일자를 줄이게 되고 적정한 인력을 투입시키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부실점검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고 말했다.

먹고 살 걱정에 업자들 '양심'도 행방불명

먹고 살 걱정이 앞서 행방을 찾아볼 수 없는 소방시설관리업자들의 '양심'도 심각한 문제다. 소방시설의 민간 자체점검은 소방관서를 통해 주도적으로 이뤄지던 점검을 민간에 이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소방시설관리사라는 전문 자격제도를 도입하고 소방시설관리업이라는 업종을 만든 것은 이러한 민간 차원의 점검을 활성화시켜 소방점검에 투입되는 부족한 소방인력 문제를 해소하고 건축물 관계자들의 자체적인 화재안전 의식을 끌어올리기 위해 도입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방시설관리업을 수행하는 일부 업자들은 관에서 주도적으로 수행하던 소방시설점검 업무를 민간차원에서 도맡고 있다는 '책임의식'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점검보다는 점검 수주에 열을 올리는 시장경쟁 구도를 불러오고 있다는 게 관련 분야의 공통된 지적이다.

소신있는 업체가 정상적인 점검을 위해 적정 가격을 제시한다 해도 일부 업체가 저가의 점검 비용을 건축주에게 제시하면 시장 경쟁 구도는 자연히 저가 중심으로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적정한 점검비용에 대한 표준 보다는 각 업체가 제시하는 가격에 점검이 이뤄지고 있다 보니 아무리 점검을 제대로 하려고 마음먹는다 해도 하나의 업체가 점검비용을 낮게 제시하면 그 기준에 따라가는 것이 현재의 시장 구조"라고 말했다.

또한 점검에 대한 무한적 책임을 지는 소방시설관리사(법적 자격자)가 종합정밀점검 이후 건축주와의 협의 과정에서 보고서의 수정을 거부하는 일도 있지만 해당 관리사가 속한 업체의 사업주가 나서서 이를 제재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있다.

한 소방시설관리사는 "사업주의 입장에선 차후 점검과 건축주와의 관계 때문에 말(건축주 요구)을 들어 주라고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경우 유자격자인 관리사는 행정처분까지 받게 된다"며 "업주의 입장과 자격자의 입장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이는 유자격자들이 제대로 된 점검을 할 수 없는 시장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허술한 소방점검, 손 놓은 소방행정

소방관서에서 나온 소방관들이 점검을 실시하는 모습
▲ 소방관서에서 나온 소방관들이 점검을 실시하는 모습 소방관서에서 나온 소방관들이 점검을 실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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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소방시설점검이 만연하고 있는 이유는 소방행정에도 그 원인이 있다. 소방방재청은 지난 2012년 2월 5일부터 기존 소방관서에서 실시해 오던 소방검사를 소방특별조사 체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소방공무원이 직접 확인하던 건축물의 소방시설 관리는 100% 건물주의 '자체점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자체점검에 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특별조사 전환 이후에도 민간에서 실시되는 자체점검에 대한 세부적인 관리감독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방시설관리업계 내에서는 허위보고서 제출 등 엉터리 종합정밀점검을 하더라도 불이 나지 않으면 쉽게 적발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와 반대로 어떤 건축물에서 화재가 발생되면 해당 건축물의 종합정밀점검 문제가 대두될까 노심초사하는 관련 업체들도 많다.

이러한 소방방재청의 소방시설관리업체 감독 기피 행태는 지난해 12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소방시설 전수점검 계획'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당시 소방방재청은 역사상 최초로 실시되는 전수점검 과정에서 조사일을 기준으로 6개월 이내 소방특별조사를 실시했거나 자체점검 제도 중 종합정밀점검을 실시한 대상은 점검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면서도 제외된 대상을 전수대상 실적에는 포함하기로 하는 등 자체점검의 적정성 감독에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소방시설관리업을 수행하는 관련 업체들이 적정한 점검을 수행하는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감독해야만 관련 업체들의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현재의 소방행정은 '운 없으면 걸리고, 운 좋으면 안 걸린다'는 업계의 비정상적인 인식까지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방방재청, 자체점검 제도개선 종합대책 수립

소방방재청도 내부적으로 소방시설 자체점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한 분위기다. 취재결과 소방방재청은 최근 자체점검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소방시설 자체점검 제도개선 종합대책'을 수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기부터 중기, 장기 등 4개 분야 14개 과제로 설정된 이번 개선 대책으로 자체점검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100% 소방시설이 가동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소방방재청이 수립한 소방시설 자체점검 제도개선 종합대책의 내용
▲ 제도개선 계획 최근 소방방재청이 수립한 소방시설 자체점검 제도개선 종합대책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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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획은 현재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건축물 관계인과 소방시설관리업자(관리사) 간의 갑을 관계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점검업자의 품질경쟁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대책과 점검업자를 통해 이뤄지는 위탁점검 대상물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방안도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수립된 제도개선 대책이 과연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소방방재청은 빠르면 25일 경 중기과제로 분류한 내용을 담은 관련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올해 중 국회제출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또 단기과제로 분류한 대책들도 올해 중 모두 개선할 계획이다.

입법예고 예정인 관련 법률 개정안에는 ▲ 관계인에게 점검결과 보고의무 부여 ▲ 거짓점검 강요행위 처벌근거 신설 ▲ 불량사항 보완계획서 제출의무 신설 ▲ 동일 대상물 연속점검 제한 ▲ 우수소방시설관리사 포상 및 인센티브 부여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또 단기과제로 설정한 ▲ 점검결과 거짓보고 행정처분 기준 보완 ▲ 소방시설 유형별 표준 점검기준 개발 ▲ 거짓점검행위 행정처분 기준 보완 ▲ 위탁점검대상 표본조사 관리 강화 등 4가지의 개선대책도 함께 추진해 나간다.

아울러 소방방재재청은 ▲ 점검비용 공영제 도입 ▲ 품질중심의 점검능력 평가기준 개선 ▲ 소방시설관리사보 제도 도입 ▲ 소방시설관리종합정보시스템 구축·운영 ▲ 자체점검 관리 전문기관 설립·운영 등 장기과제에 대해서도 개선작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27년 정통 소방재난분야 전문지인 소방방재신문 6월 25일자 신문에도 동시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태그:#소방, #소방시설, #소방점검, #소방검사, #특정소방대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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