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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책 표지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책 표지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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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평소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어릴 때 학교에서 과학에 대한 교양을 배우기는 하지만 시험을 치기 위한 공부일 뿐 대부분 그것에 대해 흥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전문적인 영역으로 여겨져 사람들은 쉽게 말하기를 꺼려한다. 또한 과학자가 아님에도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과학은 대중과 괴리되어 있다.

그만큼 대중에게 과학은 어려운 것으로,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것으로 여겨진다. 수많은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기호와 숫자가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하면 일반 사람들은 진절머리를 칠 수밖에 없다. 대중에게 보다 쉽게 과학을 전하려는 일부 과학자들은 다양한 교양서적을 집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이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학 교양작가로 대중성을 확보한 사람이 있다. 바로 스티븐 제이 굴드(이하 굴드)다. 굴드는 <네추럴 히스토리>에 기고한 과학 칼럼들과 진화에 관한 베스트셀러의 출간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칼럼들은 책으로 묶여 출판되었는데 <다윈 이후>, <판다의 엄지>, <풀하우스> 등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굴드는 수많은 저작들을 남겼지만 아쉽게도 본 글에서 다룰 책은 과학에세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한 권이다. 이 책은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중 세 번째 책으로 굴드의 끝없는 지식욕의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굴드는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과학과 과학사의 경계를 넘어 철학, 신학, 종교, 야구, 미술, 소설, 광고, 영화, 학생들의 은어, 심지어 자신의 병까지 온갖 이야깃거리를 동원해 지적 곡예를 벌인다.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지적 묘기에도 불구하고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788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라 한 번에 독파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방대한 양뿐만 아니라 굴드가 축적한 여러 가지 지적 유산이 에세이 한 편마다 녹아있기 때문에 한 번에 독파하는 것보다 곱씹으며 음미하는 것이 더 좋은 책이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시간을 내 조용한 장소에서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는 대로 짬짬이 한 꼭지씩 읽는 재미가 읽는 책이다. 만약 이 책을 한 번에 읽어내려 했다가는 도리어 과학에 질려버릴지도 모른다.

일상과 접목한 과학 에세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방대한 양으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책이지만 책 속의 내용은 다르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과학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만 천착하지 않는다. 과학 에세이라는 형식이지만 굴드는 과학보다 에세이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분명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일상에서 충분히 볼법한 제재와 표현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라는 장르가 주는 편안함이 책에 담겨 있다.

또한 굴드는 독자가 자주 접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쓸 에세이의 제재를 찾아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굴드는 야구의 역사, 쿼티 자판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 아무리 봐도 쓸모없는 남자의 젖꼭지와 여자의 음핵에 대한 이야기 등 보통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그리고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소한 제재를 통해서 진화를 비롯한 과학에 대해 설명한다.

즉 인간 형태의 의식(두 개의 눈과 두 개의 다리, 근육질의 넓적다리로 된 몸에 들어 있고, 기이하고 기능 장애적인 대물림으로 과도하게 무거워지고 선천적인 비논리적 경로라는 재앙을 물려받은 뇌에 의거하는)은 역사의 사소한 사실이며, 수백만의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들의 결과며, 결코 반복되도록 예정되지 않았다. (중략) 우리가 역사의 시시콜콜한 사소함에 빠져드는 까닭은 그 작은 것들이 우리 존재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본문 40-41쪽)

과학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굴드의 에세이는 어쩌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역사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우리의 존재 역시 미천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의 시시콜콜한 사소함에 빠져드는 까닭은 그 작은 것들이 우리 존재의 원천이기 때문"이라고 굴드가 말했듯이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사소한 것이라 여기는 일상들이 모여 이뤄진다. 이것이 굴드의 에세이가 거대 담론보다 사소한 일상의 것에 천착하는 이유이다.

지식인의 책무는 대중과 소통하는 것

과학자들은 다윈과 생물학적 진화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탄하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어떤 식으로든 진화적 설명에 익숙한 사람이 너무 적다. (중략) 그렇지만 우리는 진실과 갈망, 사실과 안락함 사이의 상관관계가 필연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우선적이지도 않다(우연히 일치할 때만 부합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인에게 부여된 가장 오래되고 힘겨운 책무는 아무리 귀찮고 해로운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이 단순한 사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본문 78-79쪽)

특별한 일이 없을 때면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새로 나온 책은 어떤 게 있나 둘러보곤 한다. 사회과학, 과학, 인문학, 역사 등에 관심이 많아 관련 카테고리를 주로 찾아본다. 특이한 것은 사회과학, 인문학 역사 등의 카테고리에는 200여 권의 신간이 있는데 반해 과학 관련 카테고리에는 신간이 100권도 안 된다는 점이다.

아마 과학 관련 서적은 대중에게 인기가 없어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수익이 나지 않는 책은 출판사에서도 출간하기 꺼려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 역시 과학자 간에만 통용되는 전문용어를 굳이 일상어로 번역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과학 관련 대중서적을 집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굴드가 언급한 것처럼 "지식인에게 부여된 가장 오래되고 힘겨운 책무는 아무리 귀찮고 해로운 결과를 얻게 되더라도 이 단순한 사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가 지난할지라도 우리나라 과학계에 몸담고 있는 과학자들이 굴드의 말을 금언(金言)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와 같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책을 출판시장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스티븐 제이 굴드 씀 / 현암사 / 2014. 4 / 32,0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 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현암사(2014)


태그:#진화론,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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