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전 아홉시쯤, 실시간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어떠한 물건도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없었다. 오후 네 시, 종례가 끝나고 휴대전화를 돌려받은 나는 습관적으로 인터넷 검색 앱을 띄웠다. 차례로 실시간 검색에어 오른 '진도 여객선'과 '안산 단원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속보.
"진도 해상에서 여객선 침몰" 별 것 아닌 줄 알았다.
왜 그랬을까.
"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침몰했대." "헐, 대박." 왜 그랬을까.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오후에 헤드라인만 훑었던 기사들을 점 하나 빼먹지 않고 읽었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9>도 보았다.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침몰했대"와 "헐, 대박"으로 나타내기에는 상황은 아주 심각했다.
잠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눈앞에는 뉴스에서 본, 배가 침몰하는 모습이 떠다녔다. 배 안에 있는 이들의 마지막 시간을 떠올렸다. 내가 겨우 "점심 급식에 맛없는 메뉴가 나온다"는 이유로 투덜대던 시간에, 400명이 넘는 이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니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배에 탄 476명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325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와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성적에 치이고 입시에 치이며 숨 막히는 하루를 보내다, 겨우 한숨 돌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은 수학여행 가는 배에 올랐을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 중 누구도 그 배가 그들 생의 마지막이 되리란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찬 해수 속으로 가라앉으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포에 발버둥 치다 마지막 숨을 뱉었을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렸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이들을 향해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외쳤을 마지막 음성이 귀를 맴돌았다.
시험보고 소풍가고... 그래도 기억해야 할 건 잊지 않아오늘은 2014년 7월 1일이다. 사고가 나던 날 나는 봄가을 교복을 입고 있었다. 지금은 반팔 교복을 입고 에어컨 나오는 교실에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른다.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다가 그런 말이 나왔다.
"이제 그 뉴스 그만 보고 싶어. 우울해져. 슬픔을 강요당하는 기분이야." 놀라웠다. 어떻게 벌써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밤 아홉 시에 뉴스를 볼 때나 잠이 들기 전을 제외한 낮의 일상은 4월 16일 이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남들 다 안 그러는데 나만 유별나게 굴 필요 없지 않느냐는, 지극히 자기합리적인 논리와 야합한 결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요즘 낮의 생활은 밤의 사고를 따르지 못하고 있고, 그것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생각보다 크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코 작지 않은 괴리감에 따라붙는 허망함, 무력감, 죄책감 같은 것들을 비우기 위해서다. 언젠가 팽목항 제단 위에 놓인 축문의 한 구절, '오직 나를 위로하려 그대들을 위로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에서다.
바다 위의 일도, 바다 아래의 일도,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사고가 나고 77일이 흘렀을 뿐이다. 그동안 293명의 시간이 멈추어 검은 테 둘린 사진이 되었다. 293명의 시간이 멈추는 동안에도 여전히 내 것은 살아 흘렀다. 그동안 나는 중간고사를 보았고 소풍을 갔다 왔으며 체육대회를 했다. 모의고사를 보았고, 며칠 남지 않은 기말고사에 스트레스 받고 있으면서도 여느 시험기간처럼 공부는 하지 않고 있다.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것은 여전히 하루하루 고역이며, 어떻게 하면 야간자율학습을 안 하고 집에 갈까 하는 고민을 하는 것도 여전하다.
사고 이후 우리는 충격에 빠졌다. 생존이 현실의 영역에서 기적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기던 순간부터 우리는 간절히 기적을 바랐다. 그 간절함은 슬픔이 되고 좌절이 되었다. 좌절은 곧 죄책감으로 바뀌었다가 분노가 되었다. 모든 희생자를 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조차 기적으로 접어들 무렵에 분노는 절망으로 변모하여 우리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77일이 지난 지금,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처럼. 천안함이 가라앉고 태안에서 다섯 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고 경주의 한 리조트 체육관 지붕이 내려앉았을 때처럼. 결국 우리는 또 무감각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 깊은 곳에는 열한 명이 가라앉아 있다. 그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이들의 소리 없는 고군분투도 이어지고 있다. 진실을 밝혀줄 것을 외치는 이들의 움직임도 멈추지 않고 있다. 아직은, 잊을 때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직 우리는 조금 더 슬퍼해도 된다고 믿고 싶다.
4월 16일, 그리고 열사흘이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뿌렸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교가 일찍 파했다. 시청 앞 광장으로 갔다. 멈춰버린 시간 속의 이들에게 꽃을 바치고 돌아섰다. 그 순간 눈에 박히던 노란 리본의 행렬. 어둔 하늘과 맞물려 더 애절하게 휘날리던 수백, 수천 개의 다짐들을 떠올린다. 떨리는 손, 무거운 마음으로 그 다짐의 나열 속에 하나를 더하였다. 돌이켜 보면, "그대들을 잊지 않겠노라, 내 손으로 세상을 바꾸겠노라"한 그 다짐을 바투 매듭지었던 것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약한 모습, 그것에서 오던 좌절감을 애써 지우려던 까닭에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일기장에 세 줄을 적었다.
잊지 말자어떻게 살 것인가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