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며칠 전 창성동 총리공관 앞에서 자기 변명에 열을 올리던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가 물러설 때쯤, tv조선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로 나선 사람의 역사관, 행적을 따지는 국민적 여론에 대해 '인민재판식으로 신상을 털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느냐면서….
특정지역 억양으로 핏대 올리며 국민을 나무란 이 사람은 꽤나 알려진 보수논객이다. 그 사람 말고도 꽤 점잖은 중도적 양비론으로 "이렇게 파헤치다 보면 총리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고 걱정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
주권자가 공직취임 후보자를 검증하는 일을 어떻게 인민재판으로 몰아붙이나. 민주시민의 여론을 인민재판으로 매도하는 사람이라면 이 나라를 인민공화국쯤으로, 그리고 나를 포함하는 국민 대중을 빨갱이로 보는 것이니 그를 좋게 보아줄 수는 없다. 알량한 말장난으로 중도적인 척 하면 시청자가 몰라볼 줄 아는 잔머리도 마찬가지다.
각설하고.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것은 교육부총리로 지명된 김명수씨 때문이다. 보수논객들의 말처럼 '털어도 먼지 안 나고 파헤쳐도 하자가 없이 살아온 인물'들이 과연 우리 대한민국에 없을까? 파고 털면 부총리 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인가? 도덕성 때문에 능력과 자질 있는 부총리 감을 놓친다? 천만에다. 임명권자의 무능이나 모르쇠가 읽힐 뿐이다.
개인적 경험새 교육부총리 후보로 지명된 김명수씨가 제자의 논문을 자기가 쓴 것인 양 업적물로 내어놓고, 정교수 승진 논문이 다른 이의 논문을 베끼거나 유사하게 작성한 것이고, 2010년 제자의 박사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얹어서 연구비를 받고, 같은 논문을 2번 이상 재탕해서 연구실적 부풀리기를 했다는 등 '의혹'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직 그것 때문만으로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붙여놓은 교수 칭호와 학위 칭호에 반대하려는 것은 아니다. 알려진 바와 같은 연구 비리는 한국 대학사회에서 이미 지겹도록 익숙한 행태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비판글을 쓰고 나선 이유는 그가 이 나라의 학문과 교육을 맡는 대학들과 교수들의 연구와 신상 관리에 대한 최고의 감독관청의 수장이 될 엄두를 내고 나섰다는 대담함과 낯두꺼움이다.
나는 그동안 한국 대학사회에서 자리 지키고 이른바 교수로 출세하는 자들을 많이 봐왔다. 남의 재산을 훔친 '도둑'이 조용히 숨어 지내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그 도둑이 몽둥이를 들고 나서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혹자는 전국에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있는데 왜 당신 혼자 분노하느냐고 묻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전국의 수만 명 교수들과 다른 점이 있는 나의 이력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을 하겠다는 인사들의 능력과 자질에 누구보다도 더한 치열한 눈으로 지켜봐온 사람이라 그렇다는 이야기다. 나는 교수재임용제에서 탈락했다가 20여 년 투쟁한 끝에 최근에사 재임용탈락 무효라는 최종판결을 받은 이른바 해직교수다.
그게 뭐 대수냐고? 그렇다. 능력 없음·자질 부족이란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면 그 사람은 학자로서, 교수로서 끝이다. 재임용제가 밉보인 자 몰아내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드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해도 일단 재임용탈락자라면 외면하기 마련이다. 대학교수 시장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거의 영원히 대학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그간의 상식이었다.
내가 단순히 해직교수였기로, 교육부의 수장될 사람의 됨됨이를 감정적으로 챙기고 나선다면 옳지 않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가 않다. 사립대학교의 재임용 탈락처분이 단순히 그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는 개별 사립대학의 교수 인사와 재정까지도 교과부의 관리들이 원격 작용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나는 1992년 목원대학교 법인의 당시 이사장 김수연이 한보철강에 대학교 부지 3만여 평을 불법으로 매각하고 35억 원을 챙긴 사실을 당시 문교부에 고발해 그를 낙마시켰는데, 그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독일에서 교환교수를 마치고 귀국한 바로 다음해인 1991년, 법인 사무국장 일을 잠시 하면서, 지득한 정보와 자료로 불법적인 밀약을 파헤쳤던 것이다.
간신히 당시 장관이던 김숙희 이화대학 교수에게 직보해 이사장이 잘려나갔지만, 나 역시 온존하지 못했다. 재임용 탈락처분은 실제로는 이사장의 뒷배를 봐주던 문교부 관리들이 '골칫거리인 이아무개를 자르라'고 지시해 이뤄진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비로 해외에 파견된 교수는 해외체재 연구가 종료된 뒤 그 기간 이상을 현직장에서 복무해줘야 할 의무를 진다. 국민의 혈세를 함부로 소모하지 않게 막자는 취지에서다.
따라서 난 말하자면, 미워도 '쉽게 잘라서는 아니 되는' 자리였다(그 전에 몇 번 직위해제, 직권면직으로 날 건드려 봤지만 나는 그때그때마다 학교 측의 처분을 무효화 하고 되돌아온 경력까지 있다, 법률가라서가 아니라 당할 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제약이야 지방대 교수 하나를 작심하고 몰아내려는 문교부의 관리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닌 일이었다. 결국 나는 감독관청인 교육부와 학교법인의 공격을 받고 대학에서 쫓겨난 다음 20여 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재임용 탈락이라는 것은 1976년 도입된 지 30여 년 동안 법원이 재판도 받아주지 않고 각하하는 사안이어서, 교수에게 사형과도 같았다. 2003년 헌법불합치 결정, 그에 따른 특별구제법률의 제정 그리고 특별법에 따른 재임용재심사를 거치고도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을 총 30여 차례가 넘게 치르고 20년 만에 얻은 대법원과 대전고등법원의 최종판결은 내게 학문적 능력과 자질에서 탓할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목원대학교 법인이 오로지 날 내쫓을 의도로 재임용제도를 오·남용했다는 것이다.
이 재판에 오기까지 나는 문교부에서 교육부·교육과학기술부 등으로 그 이름만 바꿔가면서 목원대학교의 온갖 법위반과 부조리를 뒤봐주고 함께 부패해온 장관과 부총리 그리고 고위 관료들의 이름을 꿸 정도로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 경험이거나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나처럼 학교의 부조리와 싸우다 해직된 수 십 명의 재임용탈락교수들을 만나면서, 나는 우리들의 문제가 곧 교육부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복지부동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누누이 확인했다. 이쯤 하면 내가 유독 교과부 수장될 사람의 자격과 자질에 눈 부릅뜨고 관심을 두는 이유를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사적 동기가 공적동기로 전환(Harold D. Lasswell)한 것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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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쓰레기'들이제부터는 후보자 김명수씨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을 밝힐고자 한다. 먼저 대학교수란 무엇인가. 대학교수는 상식적으로 잘못 알려지는 것과는 달리, 제 전공분야에서의 지식이 남보다 좀 뛰어난 사람들일 뿐이다. 결코 도덕적 인격자이기를 요구하여서도 아니되는 것이며,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 물론 교수가 고매한 인격까지 갖추었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그래서 교수라는 직업 가진 사람들이나 일반인들이 쉬이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대학교수의 최고의 덕목이 전공실력이라고 주장한다.
즉 교수는 무엇보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 있고, 윤리적이지 못한 자는 징계라도 되면 쫓아낼 수 있지만, 실력 없고 윤리적이기만 한 사람은 매우 위선적인데도 곧잘 살아남아서 무능교수로 정년까지 가게 된다.
그 밑에서 학생들은 내실없는 교육과 지도에 허덕인다. 반대로 실력 있는 교수는 믿는 데라고는 자기 능력뿐이지만, 생각과 행동이 당당하다. 그래서 밤새우며 공부하고, 쉴 새 없이 파는 것, 공부가 좋아서 길을 가로막는 방문객을 밀치고 연구실 문을 걸어 잠그는 '인간미 없는' 공부벌레들이 좋은 교수다.
학문의 고향 독일에는 이런 철인들(Eiserne Menschen)이 많다. 그들의 무기는 실력이다. 그것이 대학교수에게 요구할 첫째 덕목이라야 한다. 그러고서 나서는 그 실력을 한껏 쏟아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그것이 교수의 두 번째 덕목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들의 현실은 어떤가. 동료교수가 실력 있고 당당한 것을 보면 공연히 불안해지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술자리, 놀판에 빠지는 동료교수를 사회성, 인화가 모자란다고 배제시킨다. 교수 임용 제1 기준으로 '인화'를 내어놓는다. 책상에 붙어서 파는 일은 지겹지만, 걸쭉한 인간관계, 기민한 처세술과 이재에 능한 자들 주위에는 꼬이는 인사들이 많다.
일부 그런 자들이 노리는 것은 학교의 보직 아니면 학교 밖의 각종 위원 자리, 사외이사, 관변단체 자문 등이다. 특히 보직을 맡으면 일거삼득이다. 무엇보다 의무 강의시간이 줄여지고, 논문이 없거나 적어도 승진과 재임용에 문제가 없다.
보직 수당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다음으로 좋고, 더 나아가 수십억, 수백억 원에 다다르는 학교 예산을 주무르니 때로는 고물도 떨어진다. 대학 밖의 사람들은 대학에서 무슨 무슨 처장이니 대학원장이니 한다고 하면,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고, 본인과 가족도 대단한 출세로 여긴다.
그렇다 보니 보직에서 떨려나 고리타분한 연구와 강의실로 돌아가는 것은 죽는 것만큼 싫을 수도 있다. 실력 없고 공부 안하는 교수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직 사냥에 나서는 이유다. 공부와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교수직을 이재와 출세를 위한 티킷으로 여기는 자들이 대학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실력 없이 보직에 연연하는 몇몇 교수들의 문제는 그들의 학문적 퇴보와 타락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른바 인사권이 주어진다는 점이 우리 대학들의 참혹한 현실이다. 신규임용과 재임용, 승진심사라는 절차는 보직교수들의 손아귀에서 농단된다. 말하자면, 실력 없는 자들이 실력 있는 사람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희한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작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대학 밖의 사람들은 쉬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수한 사례가 있지만, 멀리 갈 것 없이, 내 경우만 보자. 나는 전공이 민사법인데, 독일 함부르크 대학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영미법과 독일법상 부동산담보부 증권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10년 만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것도 영광스럽게 국비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재단의 지원으로 말이다.
그런데, 날 떨어뜨린 1992년 목원대학 재임용심사에서 나의 연구업적물을 심사한 교수들은 음악교육과, 사회체육과 그리고 미대 동양화 전공교수들이었다. 맨 나중의 교수는 아예 심사평가에 참여하지 아니함으로써 오명을 피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리고 그런 재임용심사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인정해주는 것이 교육부 관리들이었다.
실력이 없는 자는 비굴할 수밖에 없다. 정의롭지 못한 것, 아니 진실이 아닌 것에도 금방 따라가고 총대를 멘다. 실력 없는 몇몇 대학교수는 이쪽 저쪽 눈치를 살핀다. 어쩌다 배정된 강의와 세미나는 학생들의 구미에 맞는 풍월이나 집권여당에서 콜이 왔다는 등의 제 자랑으로 끝난다.
한 시간 내내 듣고 나면, 돈과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에 공허감과 분노가 치민다. 그럼에도 1년에 1000만 원을 바치면서도 함부로 불만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대학생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보직교수는 잘 못 보이면 어려워질 만큼 힘 있고, 특히 취업알선 능력도 가진다. 학점 인플레이션으로 알아주지도 않는 학점이지만, 그것마저 놓치면 안 되니 눈과 귀를 막고 살아간다. 그래서 오늘의 대학은 위기이고, 그 위기는 다름 아닌 실력 없는 사람들이 교수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악화시킨다는 데에 있다.
대학에서 진리와 정의를 배우고 가르치지 못한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러한 대학의 대학답지 못 함이 이 사회를 정화하고 발전시킬 몫을 다 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우리 사회에 지속가능한 세월호 현상이 상존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무능한 교수들이 대학을 지배하고 있는 때문이다.
임면권자에게사실 대학에서, 교수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자기 전공 논문 한 편 쓰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지, 매년 내는 논문을 못 맞춰 쩔쩔 매는 경우를 종종 본다. 써놓은 논문 가운데도 함량 미달의 것들이 적지 않지만 말이다.
여기서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묻고 싶어진다. 세월호에서 가라앉은 희생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국가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한 대통령의 진의가 과연 무엇인지를. 참사를 가져온 부조리와 부패를 척결하고 거듭난 새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비판자들 말마따나 내려가는 대통령의 인기, 다가오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지지 않으려는 정치 쇼였는지를.
대통령의 진의가 국민대다수가 새긴 것처럼 앞의 것이라면, 교육부총리로 당신의 충실한 부하가 아닌, 5000만 전 국민에 봉사하고 파사현정하겠다는 사람을 뽑길 바란다.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배우고 가르친 대로 판단하고 처신하는 교육수장을 말이다.
그러려면, 이미 대중 앞에서 누더기가 된 대학 쓰레기를 당장 걷어 치우고, 실력에서 당당한 사람을 찾으라. 교육부 장관을꼭 교수출신 중에서 뽑기로 한다면(나는 개인적으로 교수출신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실력이 최우선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연구업적물을 철저히 검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다른 덕목은 모두 그 다음에 온다.
덧붙이는 글 | 대학이, 대학교수가 제대로 서지 아니하면, 교육이,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아니하면 현재의 '세월호 상황'은 지속된다. 그래서 교육수장 뽑는 일을 대통령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