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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가슴이 아픕니다. 애간장이 녹습니다.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봄날 이제 막 피어나려는 어린 새싹이 피어나지도 못하고 고통 속에서 아우성치다 우리와 이별하고 말았습니다. 이 비통함을 유가족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온몸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변고가 있을 때 나무가 쓰러졌다고 전하는 진안 염북마을 충목정을 찾아 갔습니다. 마을마다 있는 당산나무와 마을 숲에는 신성과 신앙을 담은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접하는 이야기는 나뭇잎이 넓고 푸르게 피면 그해 풍년이 들고, 반대로 잎의 모양이 좋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는 말입니다. 나무를 보고 풍흉을 점치는 것이지요. 

이파리가 함께 피면 모내기를 일시에 할 수 있어 그 해 풍년이 들고, 부분적으로 피면 모내기가 늦어져 흉년이 든다고 합니다. 이는 당산나무 잎을 보고 그 해 수분의 많고 적음을 판단한 조상의 지혜입니다. 당산나무 가지를 주워 다 불을 때면 죽는다거나, 온몸이 나무껍질로 변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나라 걱정하는 조상들의 마음, 마을마다 전설로 내려와

특히 나무는 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합니다. 그 징조로 곡소리가 납니다. 남원군 이백면 내동마을 나무는 국가의 변란이 있거나 국운의 변화가 있을 때는 잎이 고루 피지 않고, 밤이 되면 곡소리를 냅니다. 또, 진안군 성수면 상염북 마을 나무의 경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당시 나무가 북쪽으로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제가 찾아간 상염북 마을 주산(主山)은 '내동산(888m)'입니다. 마을은 내동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감나무골'에 위치합니다. 상염북 마을은 광산 김씨, 나주 임씨, 장수 황씨 등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마을 이름은 북쪽에 계시는 임금님을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염북(念北)이라고 했답니다.

상염북의 마을 숲은 마을 입구에 형성되어 있는데 마을에서 흘려 내려온 두 물줄기가 합수(合水)한 지점에 위치합니다. 마을의 수구막이(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 어귀에서 수구를 막는  신격을 가리킴)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현재는 개서어나무 한 그루와 느티나무가 열두 그루가 있습니다. 2008년 염북-상기 구간 도로개설과 하천정비 공사로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하천정비로 인하여 나무의 생육 상태가 좋지 않은 편입니다.

마을숲에서 제일 큰 나무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경술국치 당시에 나무가 북쪽으로 넘어갔는데 3일 후 또는 3년 후에 다시 나무가 일어섰다는 전설입니다. 국운이 다하니 나무도 비통함을 함께하여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은 나무에게도 생명력을 불어 넣어줬습니다. 자연을 유기체로 본 것입니다. 다시 일어섰다는 것은 그런 비극 가운데서도 조국의 광복을 소망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충목(忠木)이라고 부릅니다. 충목 옆에 정자가 있는데 충목정(忠木亭)이라고 합니다. 충목정은 본래 너와 지붕이었으나 2005년 홍수 때 소실되어 기와로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충목정기(忠木亭記)가 전해 옵니다.

 경술국치 때 북쪽으로 넘어졌다는 충목(忠木)옆 세워진 충목정
 경술국치 때 북쪽으로 넘어졌다는 충목(忠木)옆 세워진 충목정
ⓒ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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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목정을 읊다(忠木亭吟)
天生忠木立溪頭 하늘에서 충목을 개울가에 내시어 // 國恥當年抱國愁 국치를 당하던 해 나라근심 시켰네 // 丹忠凝樹無比類 나무속에 박힌 충정 비할 데 없노라 // 義絶超人莫他주 보여준 의절이야 어느 뉘에 견주리 // 不發萌芽嫌世陋 더러운 꼴 보고 싶잖아 잎새도 튀지 않고 // 固持根幹待時留 굳굳한 뿌리와 줄기 때를 기다릴 뿐 // 士女相應亭閭褒 고장의 사람들이 정려지어 받드노니 // 芳名永振海東洲 꽃다운 이름이야 길이 해동에 떨치리.《慕軒詩集》

돌아오는 길, 염북 마을과 멀지 않은 원구신(元求臣) 마을을 찾았습니다. 구신(求臣)이란 명칭은 이성계가 임실 상이암에서 진안 속금산으로 가다가 신하를 구하였다는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마을 앞에는 '동뫼'라 불리는 조그마한 동산이 있는데, 역시 마을의 수구막이 역할을 합니다. 동뫼 옆에는 노적(露積.농가의 마당이나 넓은 터에 원통형으로 쌓아두는 곡식단)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이를 '노적바위'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바위에는 하늘에서 벼락이 쳐서 바위가 깨져 장군이 소를 타고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삶 속에서 영웅의 출현이라도 기대하는 듯합니다. 영웅 출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민초들의 소망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새전북신문에 실린 마을숲이야기입니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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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북 전주고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갖고 전북지역 마을 곳 곳을 답사하고 틈틈히 내용을 정히라여 97년에는<우리얼굴>이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전북지역의문화지인 <전북 문화저널> 편집위원을 몇년간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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