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6월 29일 일요일 저녁, 오랜만에 서산 호수공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아내도 동행해줬다. 전에 두어 번 서산 호수공원에 갈 때는 나 혼자였다. 그때는 국정원에 의한 제18대 대선 불법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서산 시민들의 관권부정선거 규탄 집회가 줄기차게 이어지던 가운데 최근 들어서부터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집회가 열렸다. 그 소식을 진작부터 듣고 있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6월 29일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서산 호수공원의 이런저런 사람들

범국민 서명운동을 알리는 현수막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학무모들이 서산 호수공원에서 국민 서명을 호소하는 현수막을 펼펴 들고 있다.
▲ 범국민 서명운동을 알리는 현수막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학무모들이 서산 호수공원에서 국민 서명을 호소하는 현수막을 펼펴 들고 있다.
ⓒ 안인철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속에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서산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안성당 중년 남성 신자들의 친목 모임에 참석해 회비만 내고 양해를 구하고는 저녁도 먹지 않고 아내와 함께 서산 호수공원으로 달려갔다. 그동안 서울 대한문 앞 광장과 서울광장에서 거행된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 주최하는 '세월호 희생자와 모든 이웃들을 위한 참회 추모미사에는 여러 번 참석했지만,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세월호 관련 행사에 참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단원고 학생들의 엄마 아빠들, 그 유족들을 위로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당 신자들의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하며 속으로 은근히 함께 가자고 하거나 늦게라도 그곳에 가겠다고 하는 교우가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랐지만, 내 외로움만 확인할 뿐이었다. 굳이 그것을 꼬집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서산 호수공원 한쪽 행사 장소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낯익은 분들도 여럿 볼 수 있었고, 처음 뵙는 분들도 많아 절로 흐뭇해지는 마음이었다. 시민들이 걷기운동을 하는 길 한 옆으로는 단원고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현수막과 피켓들을 들고 있었다. 현수막에는 '범국민 천만 서명운동'이라는 큰 글자들이 적혀 있었고, 위아래로 '실종자 구조·철저한 진상조사·특별법 제정·안전한 나라'라는 말들과 '세월호 사고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라는 명칭이 적혀 있었다.

또 유족들이 들고 서 있는 피켓들에는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아빠 엄마가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말과 '특별법을 만들 수 있도록 서명에 동참해 주세요'라는 호소 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단원고 2학년 6반 학무모들과 '세월호 참사 대응 서산/태안대책위원회' 일꾼들이 함께 서명을 받고 있었다.

서명하는 서산 시민들 서산 호수공원을 찾은 서산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 서명하는 서산 시민들 서산 호수공원을 찾은 서산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 안인철

관련사진보기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행사 사실을 모른 채 공원을 찾아 걷기운동을 하는 시민들도 서명에 참여했다. 한동안은 서명을 하려는 이들이 길게 열을 지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명을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우레탄 길을 밟으며 걷기운동에만 열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걷기운동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지가지였다. 현수막과 피켓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 잠시 눈을 돌려 애절한 말들을 접하면서도 그냥 모른 척 지나치는 사람, 어떤 짐작과 거부감 때문인지 조금 우회에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잠시 서서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듯이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연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저 사람은 왜 저토록 열심히 걷기운동을 하는 걸까? 저 사람의 걷기운동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저리 무심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 저런 사람이 무병장수한다고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서명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걷기운동을 중단한 채 행사에 참석하여 자리를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이렇게나마 희망의 불빛을 안고, 그 불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 터였다.

서산을 찾은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 6월 29일 서산 호수공원을 찾은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학무모들 중에는 서산 출신 아빠도 한 명 있었다. 아들과 함께 고향의 호수공원에서 뛰놀았던 추억을 얘기히며 다시는 호수공원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 6월 29일 서산 호수공원을 찾은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학무모들 중에는 서산 출신 아빠도 한 명 있었다. 아들과 함께 고향의 호수공원에서 뛰놀았던 추억을 얘기히며 다시는 호수공원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 안인철

관련사진보기


나는 단원고 학생 유족들에게 선물하려고 최근 발간된 <태안문학> 제32호를 10여 권 준비해갔다. 세월호 관련 특집이 실려 있는 책이기 때문이었다. '한국문인협회 태안지부/태안문학회'(회장 조우상 시인)는 애초 <태안문학> 제32호를 준비하면서 세월호 관련 특집은 기획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원고들을 모으고 보니 세월호 관련 글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글들을 따로 묶어 특집을 꾸밀 수 있었다.

덕분에 최근의 내 신작시 두 편도 그 특집에 수록될 수 있었다. 한 편은 지난 5월 5일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 서울 대한문 앞 광장에서 거행한 '세월호 희생자들과 모든 이웃들을 위한 참회 추모미사' 때 낭송했던 <세상을 깨어나게 한 우리 아들딸들아>라는 시이고, 또 한 편은 5월 19일 서울광장에서 거행한 참회 추모미사 때 낭송했던 <노란 리본은 생명의 깃발이다>라는 시였다.

나는 그 두 편의 세월호 관련 시 중에서 <노란 리본은 생명의 깃발이다>를 서산 호수공원 행사에서 낭송하기로 마음먹고 프린트 물을 챙겼다. 그런데 나를 잘 모르는 사회자 청년이 이미 프로그램이 꽉 짜여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감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행사를 주최하고 주관하는 서산 갈산동감리교회 안인철 담임목사가 나를 보고 반색을 하고는 사회자 청년에게 가서 뭔가 지시를 한 모양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행사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가 6월 29일 저녁 서산 호수공원에서 열렸다.
▲ 세월호 희생자 추모행사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가 6월 29일 저녁 서산 호수공원에서 열렸다.
ⓒ 안인철

관련사진보기


덕분에 나는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시낭송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을 처음 지역주민들에게 알릴 수도 있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 서울 대한문 앞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들과 모든 이웃들을 위한 참회 추모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는 것도 알렸고, 우리 지역에서도 세월호 관련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할 수 있었다.

내가 시낭송을 한 다음, 두 분이 자유발언을 했다. 이어서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학부모   열두 분이 무대 앞으로 나와 감사 인사를 했다. 세 분 아빠의 인사말을 경청한 다음에는 모두 함께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뜨거운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안겨 드렸다.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은 행사 도중 안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나는 그들을 배웅하며 <태안문학> 10여 권을 건네 드렸고, 그들이 승합차에 오르는 것을 보며 성호를 그었다.

'시대의 상징'이 된 노란 리본에 대한 의무와 사랑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학부모들 중에는 서산 출신 아빠도 한 분 있었다. 그는 노부모가 서산에서 살고 계신다고 했다. 해매다 명절이나 방학 때는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찾았다고 했다. 고향에 오면 아이를 데리고 호수공원에도 와서 함께 뛰놀기도 하고, 배드민턴도 했단다.

그런데 이제는 고향 찾는 일이 허전하고 슬프기만 할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호수공원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와 아내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을 배웅하고, 행사를 끝까지 지켜본 다음 여러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 태안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부부는 말없이 묵주기도를 했다. 우리 부부의 옷깃에 달린, '시대의 상징'이 된 노란 리본과 배지를 변함없이 뜨겁게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인 6월 30일 저녁 서울 대한문 앞 광장의 참회 추모 미사에 참례하며 영성체 후 모든 교우들에게 6월 29일 저녁의 서산 호수공원 행사 이야기를 전했다. 연대와 공유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 글을 마치면서 내가 지난 5월 19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그리고 6월 29일 저녁 서산 호수공원에서 낭송했던 세월호 관련 추모시 <노란 리본은 생명의 깃발이다>를 다시 한 번 소개한다.

학무모들의 감사 인사 서산 호수공원을 찾은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학부모들이 서산시민과 태안군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 학무모들의 감사 인사 서산 호수공원을 찾은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학부모들이 서산시민과 태안군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 안인철

관련사진보기


<노란 리본은 생명의 깃발이다>

2014년 4월 어느 날
산천의 노란 개나리들이 무참히 작별을 고하면서
노란 나비 꽃들이 온 산하에 피어났다

슬픔 속에서 피어난 꽃들이다
분노와 비탄 속에서 환생한 꽃들이다
합장한 수억만의 손들
뭇 생령들의 날숨과 들숨 속에서 탄생한 꽃들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생명 꽃이다
오늘을 살게 하고 내일을 열게 하는 꽃이다

리본 모양의 노란 생명 꽃은
겨레의 간절한 소망을 안고 왔다
슬픔과 비탄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 왔다
기원이라는 이름
연대라는 이름
공유라는 이름을 데불고 왔다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바랐던
간절한 기원들은 허무하게 스러졌을지라도
그 기원을 승화시키려는 의로운 마음들이
찬란한 봄날의 개나리들처럼 만개했다

그리하여 수억만의 노란 리본들이
생명의 나비처럼
새 생명의 약동처럼
온 산하에서 힘차게 날아오른다

오랜 세월 경제와 성장만을 위해
폭주를 거듭해온 자본의 횡포에 짓눌려
좁쌀처럼 졸아들었던 생명의 가치들이 새롭게 움을 튼다
권력의 발톱에 채여 나뒹굴던
진실과 양심
정의와 평화
민주주의의 깃발들이
노란 리본을 껴안고 새롭게 펄럭인다

바닷물 속에서 숨져간 우리 아들딸들이
세상을 깨우기 위해 환생한 꽃들이다
우리가 잊기도 하고 거리를 두기도 했던
때로는 의심하고 부정하고 무시하고 홀대하기도 했던
그 생명의 깃발들이
다시금 우리들 가슴에 깃대를 꽂는다

자, 우리 다 함께 눈을 뜨자
손잡고 일어서자
어깨동무하고 나아가자
힘차게 나아가자

너와 나, 우리들 가슴에 달린 작은 리본은
행동하는 양심의 표본이다
거대한 인간 사랑의 깃발이다
신념과 희망의 몸짓이다

우리들 심장에 깃대를 꽂은
신비롭고도 우람한 깃발을 높이 들고
저 인간회복, 민주회복의 등마루를 향해
우리 다 함께 뜨거운 발걸음으로
힘차게 나아가자
우리 아들딸들에게 다시는 미안하지 않도록! 


#세월호 참사#안산 단원고 유족들#서산 호수공원#노란 리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