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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미술관 뜰 잔디밭 가운데 무늬버드나무로 나는 이 정경을 가장 좋아한다.
 자작나무숲미술관 뜰 잔디밭 가운데 무늬버드나무로 나는 이 정경을 가장 좋아한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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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쏜 화살과 같다

"세월은 쏜 화살과 같다"고 하더니 내가 삶의 근거지였던 서울을 떠나 강원도 횡성, 원주지역으로 내려온 지 그새 만 10년이 넘었다. 서울에서 고교와 대학을 다닌 뒤 학교에서 33년을 근무하고, 조기 퇴직했다. 그런 뒤 2004년 봄에 전혀 연고도 없는 이곳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으로 내려왔다.

세 집밖에 없는 동네에서 살았다. 앞집 노씨 부인이 당신은 인천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신랑 따라 왔더니 "앞도 산이요, 옆도 뒤도 산이었다"고 하여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재미있어 함께 웃었는데 살아보니까 정말 그랬다.

날마다 눈만 뜨면 산이었다. 멧새들의 노래에 잠을 깬 뒤 뒷산에 올라 군불용 삭정이를 줍거나 텃밭에 나가 남새밭을 가꾸거나, 그래도 심심하여 흙집 내 방으로 들어가 자판을 두들기며 살았다.

그러다가 몸부림이 나면  송한리 길 주천강 둑길을 산책했다. 때로는 안흥 장터 찐빵가게에서 찐빵을 한 봉지 산 뒤 아이들처럼 그걸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코레스코 지하 목욕탕을 찾아가 지하 600미터 암반에서 끌어올린 맑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게 가장 행복한 즐거움이요 문화생활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횡성읍네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길섶에서 한 팻말을 보았다. '자작나무 미술관' 이 산골마을에 미술관이라니? 나는 호기심 끝에 어느 날 카메라를 메고 그 팻말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30여 분 들길을 걷자 마침내 자작나무 숲속의 미술관 - 나는 그곳이야 말로 낙원처럼 보였다.

자작나무숲미술관으로 가는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자작나무숲미술관으로 가는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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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휴식처

초면의 자작나무숲 원종호 관장에게 물었다.  

- 언제 문을 여셨습니까?
"2004년 5월 29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꼭 1년이 지났군요."

- 흔히들 우리나라 시골은 '문화의 사각지대'라고 합니다. 외진 곳에다가 이런 훌륭한 미술관을 여셨는데 운영이 됩니까?
"먼 훗날을 내다보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만든 겁니다. 오래 전부터 조상에게 물려받은 이 땅을 잘 가꾸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언젠가는 운영이 될 테지요. 지금으로서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자작나무숲미술관 전시실
 자작나무숲미술관 전시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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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마을에 태어난 토박이로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다가, 좀 더 쉬운 예술을 한다고 카메라를 잡았다. 그런데 막상 카메라를 잡으니까 더 어렵다고 했다.

그는 제1전시장은 화가들의 미술작품을, 제2전시관은 그의 전용사진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대부분 당신이 태어나고 자란 횡성, 원주 일대의 산들을 앵글에 담고 있었다.

미국 뉴욕에서 서울에서 자작나무숲미술관을 찾은 내 제자들(오른쪽부터 신민철, 고순영, 신유철).
 미국 뉴욕에서 서울에서 자작나무숲미술관을 찾은 내 제자들(오른쪽부터 신민철, 고순영, 신유철).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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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곳에 미술관을 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동안 말없이 웃기만 했다. 도시의 때 묻은 사람이 볼 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무모한 발상이요,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이후 내 심신이 피폐하거나 멀리 뉴욕에서 LA에서 서울이나 부산, 광주, 대구 등지에서 내가 사는 마을로 손님이 올 경우는 꼭 이곳을 찾아 커피와 음악과 새 노래를 즐겼다. 그분들은 떠나면서 정말 지상낙원이었다고 말했다.

가장 행복한 삶

최근 나는 원주로 삶의 거처를 옮긴 뒤 그곳을 찾지 못하다가 며칠 전 오랜만에 시집간 여인이 친정을 찾듯 자작나무 미술관을 찾았다. 주인내외는 나보다 더 반갑게 일흔이 되어도 철없는 늙은이를 반겨 맞았다. 관장 부인 김호선씨가 물었다.

- 걸어오셨어요?
자작나무숲미술관 숲지기부부(원종호, 김호선)
 자작나무숲미술관 숲지기부부(원종호, 김호선)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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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자작나무숲미술관을 찾아오는 길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길섶 개망초꽃을, 파랭이꽃을 즐겼으며, 들머리 뽕나무에서 입술이 진보라가 되도록 오디를 따먹었습니다."

- 다음에 오실 때는 전화주세요.
"이곳에 올 때는 걷는 게 더 좋습니다."

나 혼자 카메라를 들고 자작나무숲 이곳저곳을 앵글에 담는데 새로운 팻말이 보였다.

인생을 내 의도대로 살기 위해
인생의 본질을 마주하기 위해
내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무를 심고, 이 숲에 살고 있다.

원종호 관장의 사진작품 '치악산'
 원종호 관장의 사진작품 '치악산'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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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호 관장의 인생철학이 담긴 말이었다. 나는 문득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영역을 이른 새벽부터 손수 한 작품으로 가꾸면서 살고 있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그의 영혼이 담겨 있다. 그는 그렇게 자작나무숲미술관을 가꾸면서 자연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나절의 쉼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 창작을 하는 예술가를 위해 그는 자작나무숲미술관 뒷산에 숙소를 마련해 두고도 있다.

자작나무숲미술관의 들꽃
 자작나무숲미술관의 들꽃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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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미술관 전시실의 작품
 자작나무숲미술관 전시실의 작품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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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미술관 뒷산의 숙소
 자작나무숲미술관 뒷산의 숙소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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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미술관의 쉼터
 자작나무숲미술관의 쉼터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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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자작나무숲미술관(www. jjsoup.com) 033-342-6833 / 011-9790-6833



태그:#자작나무숲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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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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