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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환의 <깊고 진한 커피이야기>의 표지
 장수환의 <깊고 진한 커피이야기>의 표지
ⓒ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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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다. 어느 공장에 사자 한 마리가 몰래 들어왔다. 사자는 직공 한 사람을 잡아먹었고, 다음 날은 공장장을 먹어버렸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 다음 날 사자는 커피 타는 아가씨를 잡아먹었다. 실수였다. 사람들이 그날로 사자를 죽여 버렸다."(5쪽)

징~한 커피의 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커피를 빼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거의 불가능합니다. 만약 누가 커피를 제거하려고 한다면 그가 제거를 당할 게 뻔합니다. 징~한 커피 이야기를 커피 애호가인 서양사학자가 들려주네요.

커피는 어떻게 이슬람권과 기독교권을 넘나들며 사탄의 음료에서 성스러운 음료로 전향할까요. 커피는 어떻게 부르주아지의 전유물에서 서민의 음료가 될까요. 커피는 어떻게 여성들에게서 제외되었으며, 그러던 여성들을 커피의 주역으로 만들까요. 책은 흥미롭게 이런 것들을 짚어줍니다.

이슬람과 기독교 사로잡은 커피의 매력

커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라면 커피 음용이 이슬람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겁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자생하던 커피는 예멘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죠.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일부였던 예멘은 16세기 초 널리 커피를 음용했습니다.

커피는 아랍의 고급문화 향유자 그룹인 이슬람의 수피파 승려들에 의해 확산되죠. 명상을 중요한 종교적 수행으로 여기던 수피파 승려들은 졸음을 쫓아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커피 음용을 장려합니다. 코란이 금하는 술 대신 커피를 마셨죠. 이슬람문화는 터키의 체즈베에 곱게 간 커피를 끓여 이브릭에 담아 컵에 분배하여 마셨습니다.

터키식 커피 끓이는 도구와 커피를 담아 서빙할 때 쓰는 주전자
▲ 체즈베와 이브릭 터키식 커피 끓이는 도구와 커피를 담아 서빙할 때 쓰는 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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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승려들에게서 차츰 서민들에게로 확산되는데요,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는 커피하우스 문화로 발전합니다. 커피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자연스레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게 되죠. 당연히 지배세력에 대한 반대여론을 형성하게 되고요. 급기야 종교·정치지도자들이 커피 음용을 금지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 무라트 4세는 커피하우스를 파괴해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커피는 계속 확산되었고요. 오스만제국에서 커피를 배운 사람들에 의해 유럽대륙에도 커피가 전해집니다.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 커피하우스가 최초로 들어서면서 기독교권에도 커피 음용이 본격화됩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커피 음용은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유럽은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가 주류를 이루고 있죠. 이슬람에서 들어온 커피가 환영받을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권은 처음부터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막지 못했고요. 공교롭게도 성직자들 사이에서 커피 음용이 확산됩니다. 반대자들은 교황 클레멘트 8세에게 커피를 금해 줄 것을 청원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커피 애호가들은 교황에게 커피를 마셔보고 판단하라고 하죠. 결국 교황은 커피를 마셔보고, '아 참 감미로운 음료구나. 이교도의 음료지만 커피에 세례를 베풀어 악마를 바보로 만들고 기독교의 음료로 하면 어떻겠는가'하고 선언합니다. 이른바 커피 세례식입니다.

이후에 포도주나 맥주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처에는 독특한 커피 문화가 정착됩니다. 마실수록 정신을 잃게 만드는 술보다는 마실수록 정신이 들게 하는 커피가 자연스레 확산되었죠. 기독교 문화와도 코드가 맞은 겁니다.

커피가 여성을 차별했다는 거 아십니까?

커피를 알아간다는 건 바로 인류 역사와 인권사를 알아가는 것과 맞물립니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이 커피산업에 종사하지만 열악한 환경과 가난에 찌들어 삽니다. 커피 생산자에게서도 그렇지만 커피를 향유하는 그룹에서도 여성은 소외되었죠.

유럽의 도처에서 카페가 확산될 때에도 여성은 카페에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커피 칸타타>의 내용을 보면, 딸에게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커피를 마시겠다는 딸, 그런 딸을 말리며 시집도 안 보내겠다는 아버지, 둘의 대립이 이 음악의 내용입니다. '딸은 고양이가 쥐잡기를 그만 두진 않는다'는 야무진 논리로 승리합니다.

"여자들은 커피하우스에 와서는 안 된다."

‘모든 남성의 권리, 모든 여성의 의무’가 커피라고 알리는 커피 광고입니다.
 ‘모든 남성의 권리, 모든 여성의 의무’가 커피라고 알리는 커피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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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당시 유럽의 진리였죠. 그러기에 여자들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집안에서 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커피 애호 여성들은 집안을 커피 향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여성들은 1920년대(에로틱의 시대)에 커피 광고에 등장합니다. 광고 카피는 '모든 남성의 권리, 모든 여성의 의무'가 커피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커피는 멜리타 벤츠 여사의 종이 필터와 멜리타 드리퍼의 개발로 이어집니다. 또 여성들이 커피 사교클럽을 만들죠. 이름은 '카페 크렌첸'입니다. 남자들이 여성들의 모임을 비하하여 '카페 클라취'(잡담 모임)로 부릅니다. 그래도 여성들의 커피 사랑은 잠재우지 못합니다.

실은 커피가 남자의 특권이라고 부르짖던 시대를 전후하여 여성들은 커피를 산업화하는 데 앞장섭니다. 여성의 미적 감각은 커피 잔에 이르게 되죠. 1716년경 마이센사가 유럽 최초로 도자기 산업을 시작했죠. 이때 커피잔 세트가 등장합니다.

브래지어의 사이즈를 말할 때, A컵, B컵, C컵 하고 부르게 된 것도 이때입니다. 프랑스의 세브르사가 커피 잔을 만들면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떼따떼뜨'라는 커피 잔 세트가 부부 잔의 효시이기도 하고요. '둘이서 마주 본다'는 뜻이죠. 남성들이 큰소리만 치고 있을 때, 고난 받던 여성들은 커피를 다른 각도에서 발전시킨 거죠.

"고난은 창조의 어머니입니다. 고난은 창조를 위한 선물입니다." (김필곤)

커피는 카페라는 소통의 장으로 나오고, 이미 말했듯 카페에서는 정치를 씹으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의 맛을 향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국의 찰스 2세는 카페를 폐쇄하라고 명령하죠. 그러면 그럴수록 카페는 뉴스들의 본거지가 되었고요. <가디언>도 버튼의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오늘날 미국의 카페문화 유입에서 벗어나 옛 다방처럼 앉아 정치를 씹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날까요?

용어 설명
*수피파- 이슬람의 한 종파. 전통적인 교리 학습이나 율법이 아니라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신과 합일되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수피즘의 유일한 목적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춤과 노래로 구성된 독자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 수피즘의 초기 수도승들은 금욕과 청빈을 상징하는 하얀 양모로 짠 옷을 입었기 때문에 수피라 불렸다.

*체즈베- 터키식 커피를 끓이는 작은 포트로 긴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브릭- 끓인 터키식 커피를 담아 접대하는 주전자

*무라트 4세- 1623년부터 1640년까지 오스만 제국을 다스린 제17대 술탄이다. 아흐메트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클레멘트 8세- 제231대 교황(1592년∼1605년)으로 가톨릭 개혁운동 시대의 마지막 교황. 앙리 4세를 프랑스의 왕으로 인정하였다. 성 프란체스코의 가톨릭 개혁을 지지하였고 불가타 성서의 개정본을 만들어 표준성서로 공인한 교황이다.

*멜리타 드리퍼- 멜리타 벤츠 여사가 놋쇠 그릇에 구멍을 하나 뚫고 큰 아들의 연습장을 찢어서 필터로 삼은 것이 시작이었다. 모든 드리퍼의 효시가 되었다.

*루이 16세-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왕(재위 1774~1792)으로 오스트리아의 왕녀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하였다. 입헌군주제 수립을 추진하던 중 프랑스혁명으로 처형되었다.

*찰스 2세- 1660년~1685년까지 영국을 통치하던 왕이다. 찰스 1세의 아들로 아버지가 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된 후 스코틀랜드에서 즉위하였으나, 던바·워스터 싸움에서 올리버 크롬웰에게 패한 후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찰스 2세는 과학과 연극에 관심이 많아 이를 보호·육성하였다.

덧붙이는 글 | <깊고 진한 커피이야기> 장수환 저/ 자음과모음 표냄/ 2012년 초판/ 101쪽/ 7000원



깊고 진한 커피 이야기

장수한 지음, 자음과모음(2012)


태그:#깊고 진한 커피이야기, #장수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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