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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음... 저, 저는요... 아워보이스 기자단의 편집장을 맡고있는 박용덕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워보이스에서 여러 기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취재할지 의논하고, 기자들이 취재해 온 기사를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파일이 그동안 제가 정리한 기사들이에요. 다른 기자들이 적어 온 것을 이렇게 정리해서 보관하고 있어요."

파일을 열어 보여주는 박용덕(29) 기자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목소리도 떨리고 콧등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아워보이스> 기자단을 이끄는 사회복지사 이경아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용덕씨를 비롯한 기자단이 외부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쓴 기사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라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것이란다.

<아워보이스>는 지적장애인들이 의기투합해 직접 제작하는 신문으로,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동문장애인복지관에서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신문은 종이 지면으로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1년에 두 번 제작한다. 2012년에 서울교육청 지원사업으로 선정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박태준 기자의 취재 수첩
 박태준 기자의 취재 수첩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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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목소리 담는다" 지적장애인 목소리 전하는 <아워보이스>

용덕씨의 소개가 끝난 후 다른 기자들의 소개도 이어졌다.

"작년까지 보호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 사회복지사가 되어서 저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요. 저는 엄마하고 사이가 좋지 않아요. 엄마는 제가 다 컸으니까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오거나 독립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거든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요. 그룹홈 같은 데를 가고 싶지만 어딨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이혜림(28) 기자가 말했다. 혜림씨는 고궁을 찾아다니며 유래와 역사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분야의 기사를 쓰고 싶냐는 질문에 당장 경복궁이나 덕수궁을 찾아가서 취재해 오겠다고 한다. 혼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 데도 문제가 없고 또 여러 번 다녀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씨를 쓰지 못하면 기자를 할 수 없나요? 저는 글을 쓰기 힘들어요. 그래서 사진만 찍고 있는데..."

윤대현 기자는 아워보이스 기자단의 분위기 메이커다. 필기구를 잡고 글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기사를 쓸 수는 없지만 스마트 폰이나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행사 때마다 사진기자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다소 주눅 들어 하는 윤 기자에게 글씨를 쓸 줄 모른다고 기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카메라나 휴대폰을 이용해 동영상 기사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사진 한 장으로도 훌륭한 기사가 되니 글 쓸 줄 모른다고 기자의 꿈을 포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저는 아워보이스 기자단에서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고 있는 박태준 기자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제일 형이고 오빠입니다. 저는 동문엔터프라이즈 보호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대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서 저와 같은 지적장애가 있는 어린 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쉬운 책 만들기를 하고 있습니다. 쉬운 책은 어려운 말도 없고 두께도 얇아서 누구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거든요. 이제 50%쯤 완성했구요. 며칠 후면 100% 완성할 수 있어요. 책이 만들어지면 중학생들 앞에서 발표도 할 겁니다."

편집회의 중
 편집회의 중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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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기자는 의젓하다. 그리고 가장 성실하게 기사를 준비해 오는 편이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좋아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한다. 특히 어릴 적 어머니와 시장에 갔던 추억들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맛깔나게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제는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어릴 적처럼 자식들과 나들이를 가지 못하시는 것이 안타깝다는 효자 아들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자기 소개를 한 기자는 서백령 기자. 얼마 전까지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을 했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그만두고 잠시 집에서 쉬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저는... 아 뭐라고 해야 하지? 할 말이 없는데... 그냥 저는 서백령이에요. 요즘에 하는 일은 없구요. 저기 이경아 선생님하고 박용덕 편집장이 같이 하자고 해서 왔어요. 근데 뭘 하는지 잘 몰라요. 끝이에요."

서백령 기자는 시내 대형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었다. 그녀는 일하던 식당이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몇달간의 월급도 받지 못하고 직장을 잃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매장에서 일을 하거나 햄버거를 만들지만 자신은 항상 청소나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처리 등 힘들고 냄새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시급도 5000원으로 비장애인에 비해 싼 임금을 받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아워보이스 기자단과 나의 첫 만남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매주 두 번 정도 자폐를 가진 장애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나였지만 아워보이스 기자단의 경우 비교적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계성 장애인인인데다가 30대 이상 청장년 층이라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기준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만 위한 신문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신문 꿈꿔

이들과의 첫만남으로 그 고민은 모두 사라졌다. 이들은 나와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이며 약간 어눌한 정도의 장애가 있을 뿐이었기에 아들 친구나 그 나이 또래의 청년들을 대하듯 자연스럽게 대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만큼 소통과 공감이 가능한 친구들이라는 뜻이다.

몇 번의 수업을 거치며 놀란 것은 이들이 내가 강의했던 그 어떤 집단 초중고, 대학생, 일반인, 시민기자지망생 등등보다 성실하다는 것이다. 수업 집중 시간이 짧아 30분 이상 강의가 지속되면 산만해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과제 수행률이 거의 100%에 가까워 매주 눈에 보이는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워보이스 기자단 활동의 또 다른 의미는 이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있는 그대로 신문에 게재한다는 것이다. 비문이 포함되어 있는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 존재하든, 단문으로 이어져 뚝뚝 끊겨도 전혀 말이 안되는 글이 아니라면 원문을 수정하지 않는 것은 원칙으로 한다. 이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는데 이를 비장애인이 읽기 좋은 문장으로 수정해 매끄럽게 만들어 버린다면 흔한 다른 신문과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게 복지관 측의 의견이다. 비장애인이 보기에 틀리고 읽기 불편한 것이지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과 감정들은 오롯이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들이 읽기 쉽고, 보기 좋은 신문을 만들라는 주문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비장애인들의 편의만을 생각한 차별적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저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하지만 그 기회 역시 비장애인들의 기준과 입맛에 맞춰줄 때만 유용하게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장애인 정책이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각도였다.

수료증을 받은 아워보이스 기자단
 수료증을 받은 아워보이스 기자단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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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4주차를 마치고 아워보이스 기자단은 <오마이뉴스>를 방문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오마이뉴스> 방문을 앞두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떨려서 잠도 오지 않는다는 기자까지 있었다.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오마이뉴스>의 이준호 기자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오마이뉴스>를 소개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마음껏 질문하셔도 됩니다."

이준호기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아워보이스 기자단
 이준호기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아워보이스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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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오마이뉴스 기자같은 멋진 기자가 될거에요
 우리도 오마이뉴스 기자같은 멋진 기자가 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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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으로 받은 취재수첩 가방속에 꼭 간직할 것

뉴스를 제작하는 언론사 사무실에 들어와 진짜(?) 기자를 만난 아워보이스 기자단은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안내를 담당한 이준호 기자에게 질문도 했다. 이들에게 오마이뉴스 방문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세상을 향한 기사를 써야겠다는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취재수첩은 너무나 소중해 글도 쓰지 않고 가방 속에 꼭 넣어 간직하겠다고 한다.

"기자들은 다 훌륭하신 분 같아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는 기자들 처음 봤어요. 너무 멋지세요. 우리도 열심히 해서 <오마이뉴스> 기자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읽는 신문을 만들고 싶어요.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지난 2일, 8주간의 교육을 마친 아워보이스 기자단에게 수료증이 주어졌다. 8주간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보람도 더 커 보였다. 그들은 나에게 어떻게 기사를 쓰는지, 무엇이 기사거리가 되는지, 인터뷰는 어떻게 하는지 정도의 아주 작은 노하우를 배웠을 뿐이다.

나야말로 그들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우지 못했던 더 많은 경험을 얻고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지적장애인이라고 해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사실. 나조차도 의심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그들의 능력... 이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또 배워야 하며, 사람보다 더 훌륭한 교재는 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수료식을 하는 날 친구들은 나를 위해 풍선을 달고 케이크를 준비하고 한 자 한 자 손수 눌러쓴 감사 카드를 주었다. 그 어떤 강의에서도 받아 볼 수 없었던 귀한 선물이다.

"선생님 강의는 끝났지만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 복지관에 놀러 오세요. 꼭 다시 뵙고 싶어요..."

다 큰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려고 한다. 나도 주책없이 눈물이 나려는 걸 감추려 하늘만 바라본다. 참 따뜻한 인연, 참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이제 나는 강의를 마치고 저들을 떠나지만 저들만의 소리를 담은 저들의 신문 <아워보이스>가 저들만의 신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신문이 되기를 응원한다.

박용덕, 이혜림, 박태준, 윤대현, 서백령 기자 파이팅! 그리고 복지관 이경아 선생님도 파이팅. 여러분들,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멋진 기자가 되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할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왼쪽부터 박용덕,서백령, 박태준, 윤대현, 이혜림 기자, 이경아 사회복지사
 왼쪽부터 박용덕,서백령, 박태준, 윤대현, 이혜림 기자, 이경아 사회복지사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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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동문장애인복지관, #지적장애인기자단, #아워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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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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