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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라 간돌피 에레라 여사가 에레라의 소년시절 추억이 담긴 공을 들고 한 컷
 피오라 간돌피 에레라 여사가 에레라의 소년시절 추억이 담긴 공을 들고 한 컷
ⓒ 신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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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 축구선수가 있는 곳, 신문기사, 그 모든 걸 수집했고 직접 보고 판단하길 원했다. 실제로 1971년 외부 축구협회들에 비밀로 하고 한국을 방문했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시골 구석구석까지 직접 가서 한국인의 정서, 몸 움직임, 근성, 음식, 생활습관 등 모든 걸 치밀하게 연구했고 노트에 적어왔다."

이탈리아 축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바로 '카테나치오'. 우리말로 '빗장수비'라 불리는 이 전술의 창시자는 1970년대말부터 1980년대초반까지 이탈리아와 유럽 명문팀에서 감독으로 활동했던 엘레니오 에레라(Helenio Herrera, 1910~1997)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FC인테르, AS로마, 라치오, 피오렌티니를 비롯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로셀로나FC, 레알마드리드, 아틀래틱 마드리드,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3국의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그는 특이한 축구전술법을 내놓아 '매직맨'으로 불리는 천재감독이다. 이런 명성을 가진 에레라 감독이 고안해 낸 전법들 중 일부가 한국인의 특성을 관찰한 후 만든 것임이 밝혀졌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인이자,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부인인 피오라 간돌피 에레라는 최근 기자와 만나 생전 에레라 감독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들을 전했다. 그녀는 에레라 감독 사망 후 출판, 전시, 세미나 등을 주관하며 세계축구계의 대모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이탈리아 정부와 롬바르디아 지방은 에레라 감독을 '이탈리아를 빛낸 역대 위인'으로 선정해 밀라노궁에서 6개월 동안 그를 기념하는 전시와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자신이 깨달은 모든 것을 축구에 적용한 에레라 감독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 부부가 한국을 방문해서 태권도장 청소년 소녀 단원들과 함께.(오른편이 에레라 감독)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 부부가 한국을 방문해서 태권도장 청소년 소녀 단원들과 함께.(오른편이 에레라 감독)
ⓒ 신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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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 1일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이탈리아 자택에서 에라라 감독의 부인인 피오라 간돌피 에레라와 나눈 일문일답.

- 에레라 감독은 평생 다국적 문화와 환경을 접하며 지냈다. 그래서 특정 문화나 종교에 얽매이니 않고 자신만의 칼라를 찾아내 축구에까지 연결시켰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그렇다. 그것이 그를 만들었고 그의 특징이다. 그의 부모는 알려진 대로 스페인 사람이었으나 그는 아르헨티나 출생이다. 이후 모로코로 이주했고 프랑스, 영국식 교육을 받았으며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에 거주했었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 국적은 아니었다. 그는 스페인 국적을 지녔었고 세 나라의 여권을 소지했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 무정부주의자로서, 모든 사람이 인종 종교 제도의 차별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것을 주장했고 그것이 자녀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엘레니오 에레라는 정서적인 감성은 스페인, 이성은 프랑스적, 교육은 영국적, 환경은 아랍권, 이태리, 히브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의 생활 스타일과 삶의 철학은 철저히 동양적이고 많은 부분이 한국방문과 그 연구 후에 나온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것을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소화했다."

- 그는 요가와 명상을 열심히 하는 등 다분히 동양적 철학과 생활습관들을 갖고 있던 걸로 유명하다.
"그는 평생 하루도 빠짐없이 요가와 명상을 해왔고, 단전호흡을 했다. 모두 인도 영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적이다. 이유는 인도적 명상이나 철학은 자신만의 명상, 깨달음인 걸로 안다. 명상을 통해 '참 나'를 찾고 깨달은 바를 자신의 실생활에 직접 적용하고 실천하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주위에 권하는 등, 실용적인 태도는 한국적 철학과 연관돼 있다."

- 그러나 에레라 감독은 특정 종교를 갖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그는 종교들이 가르치는 바가 공통적이라고 생각해 특정 종교성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한국적 동양철학에도 관심이 있었듯이 가톨릭에도 관심이 있었고, 그 공통점을 찾아 자신만의 철학과 명상법을 만들어 이것을 축구선수들에게도 가르쳤다. 여담이지만, 그는 원래 예수의 어머니가 누군지도 이름도 몰랐었다. 내가 가르쳐주었다.(웃음) 그러던 중, 병원에서 접한 성경을 읽게 되었고 특히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에 대해 접하면서 가톨릭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깨닫고 알게 된 모든 것을 자신의 삶 그 자체였던 축구에 그대로 활용했고 접목시켰다. 그가 고안해낸 축구선수들의 식단, 금욕주의, 명상, 호흡, 집중력 키우기, 축구심리학 등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는 원칙주의, 금욕주의자였고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했다."

청소년들 태권도 시범 연습 중(왼쪽 뒤편에서 연습을 참관중인 에레라 감독)
 청소년들 태권도 시범 연습 중(왼쪽 뒤편에서 연습을 참관중인 에레라 감독)
ⓒ 신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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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자세히 알려 달라.
"그는 매사 직접 연구하고 검증하는 타입이었고, 그런 후에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금연, 금주를 요구했고 와인 한 잔 이상을 허용치 않았다. 체중조절에도 엄격했고 절제 있는 생활규범을 요구했다. 또 선수들에게 요가, 명상, 호흡 그리고 유산균 섭취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담백한 식단을 요구했다.

유명한 독서광이었던 그는 모든 걸 직접 연구했다. 선수들에게도 늘 '머리를 먼저 쓰고, 그 후에 발을 움직여라'라고 말했다. 꾸준한 실력연마, 영리한 머리, 뚜렷한 목표의식의 마인드, 절제되고 통제된 생각과 감정, 생활습관들을 요구했다. 심지어 경기를 앞두고는 축구계 사람들과의 개인적 만남을 자제했다.

자신이 무심코 한 말이 전략노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언제부턴가는 이탈리아 축구의 폐단이 된 도박성 축구, 짜고 치는 축구 등으로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인맥 관리도 철저하게 했다.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도 스스로 분별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에레라 감독, 이탈리아 축구 내리막길도 예견"

- 그런 자기 통제적 삶에 대한 선수들의 반발과 오해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당시 선수들은 절제된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반발도 심했다. 에레라 감독은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지 않은 선수들은 제외하기도 했다. 또 경기 전 상대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것을 선수들에게 요구했는데,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라 선수들이 참 힘들었을 것이다."

-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이탈리아전 이후 한국 교민들을 향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행패와 폭력 보복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무식한 자들의 소행이었다. 다분히 마피아적이다. '똑똑한 안'(안정환)은 정말 잘해냈다. 실력이 있고 똑똑하기에 나온 골이다. 그걸 인정치 못하고 행패를 부린 것이라고 본다. 당시 한국팀엔 '똑똑한 안' 외에, 그를 받쳐주고 팀워크를 이뤄낸 다른 선수들 또한 일품이었다. 그게 에레라가 늘 말했던 한국축구의 저력 중 하나이다. 팀을 위한 희생정신과 강한 팀워크. 분데스리가의 전설 '차 붐'(차범근)이 있었고, '똑똑한 안'이 있고, 그 외 희생적이었던 명장들이 있었기에 한국축구가 발전한 거라고 본다.

이제 한국선수들은 신체, 체력 등에서도 유럽에 뒤지지 않고 유럽 진출도 꽤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엘레니오 에레라가 이미 예견했던 대로다. 그는 이탈리아 축구의 내리막길도 예견했었다. 이유 중 하나는 마피아에 연루된 상업적 도박성 축구 분위기였다."

- 에레라 감독은 한국 축구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었나.
"그는 한국 축구선수가 있는 곳, 신문기사, 그 모든 걸 수집했고 직접 가서 보고 판단키를 원했다. 실제로 우리 부부는 1971년 외부 축구협회들에 비밀로 하고 한국을 방문해 한국을 연구했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시골 구석구석까지 직접 가서 한국인의 정서, 몸 움직임, 근성, 음식, 생활습관 등 모든 걸 치밀하게 연구했고 그의 습성대로 빼곡하게 노트에 적어왔었다."

에레라 감독의 서재방들 중 트로피와 상패들만 따로 모아서 만든 방
 에레라 감독의 서재방들 중 트로피와 상패들만 따로 모아서 만든 방
ⓒ 피오라 간돌피 에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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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어떤 연구를 했고, 그는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
"그는 한국 축구선수들의 민첩함에 놀랐고 그 부분을 집중 연구하고자했다. 평소 그는 한국태권도에 상당히 반했고 최고라고 칭찬했다. 많은 시간을 한국 태권도장에서 보냈고 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물론 한국축구의 장단점도 연구했다. 한국의 명상, 호흡법도 연구했다. 한류를 연구한 뒤 그는 자신의 유명한 전법 '빠르게 생각하고, 빠르게 대처하고, 빠르게 하는 플레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태권도, 한류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그는 70년대에 한국청소년축구팀 창설의 필요성을 강조했었는데 이유는 한국이 미래에 축구 강국이 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 국민들 모두가 순수한 마음으로 한국축구를 지지하고 관심 갖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국민들의 관심과 열정이 결국 한 나라의 축구성패를 쥐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베트남과 한국, 두 나라 국민성에 흥미를 보였다. 결국 그가 예견한 미래의 주인공들은 한국 축구선수들이었다. 일본은 몇 가지 국민성을 이유로 제한을 두었다. 물론 지금 밀란팀에 일본 선수가 뛰고 있긴 하지만, 그는 일본축구의 향후발전에는 부정적이었다."

- 2002년 경기 이후 다소 냉랭해진 한국-이탈리아 축구교류에 가교 역할을 할 생각은 없나.
"요청이 온다면 기꺼이 하겠다. 한국을 많이 연구했고 관심있어 했으며 한국축구의 미래를 믿었던 엘레니오 에레라를 위해서라도 기꺼이 하겠다. 또한 그가 축구전술을 연구하기 위해 외부인출입을 금한 서재 등에 한국축구의 명장들을 초청할 마음도 있다."

- 이번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 중 '에레라 감독의 마음에 꼭 들었겠다' 싶은 선수를 한 명만 꼽는다면? 또 어떤 경기를 가장 관심 있게 봤는가.
"단연코 '메시'다! 그리고 경기는 '독일-알제리'전이다. 투혼을 불사르며 팀을 위해 희생하던 알제리 선수들이 인상 깊다."

덧붙이는 글 | * 바쁜 일정가운데서도 한국축구의 재도약에 용기를 실어주고자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준 피오라 간돌피 에레라에게 감사를 전한다.



태그:#엘레니오 에레라,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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