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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은 잘라도 또 나온다. 일주일 전 두 달 된 수염을 밀고 난 후 다시 올라오는 수염을 관찰하고 있다. 두 달 전에는 그냥 길렀다면 이번에는 좀 더 관찰을 하며 길러 볼 심산이다. 무관심하게 기르던 때와 관심을 갖고 관찰하며 수염을 길러 보니 수염들이 자라는 속도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생각보다 참 빠르게 밀고 올라온다. 수염이 자라는 속도만큼 내적 성장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수염이 또 자란다 7월 1일 수염 자른 후 모습(위)와 7월 8일 자란수염(아래).
▲ 수염이 또 자란다 7월 1일 수염 자른 후 모습(위)와 7월 8일 자란수염(아래).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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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수염에 얽힌 이 사회의 편견과 오해 또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수염의 상관관계가 궁금해졌다. 머리털도 아니고 그저 신체 일부(턱과 그 주변에 나는털)의 털일 뿐인데 수염과 사람들의 삶은 분명 연관된 이미지가 있었다.

사실 수염이란 남성호르몬의 작용에 의한 신체 변화의 일종일 뿐이다. 원래 모낭세포에는 털이 자라는데 사춘기 이후 턱 주변에 있는 모낭세포가 남성호르몬의 작용으로 잔털이 굵은 털로 변하면서 생긴 게 수염이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면 남성호르몬의 작용으로 남성은 머리털의 성장을 억제하는 대신 수염과 털의 성장을 촉진 시킨다고 한다.

반대로 여성호르몬은 수염, 털 등의 성장을 억제하고 대신 머리털의 성장을 촉진 시킨다. 여성들의 턱수염이 드문 이유는(일부 민족 중에는 여성도 수염이 난다) 여성호르몬의 작용으로 모낭세포 속 잔털들은 잘 자라지 않게 하여 작은 솜털 형태로 머물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생물학적으로 여성도 수염의 기초공사는 이미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여성이 애초부터 긴 머리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궁금증도 어느 정도 풀린다. 예전 선배들이 머리가 빨리 자라면 "야한 생각 많이 했지?"하고 놀렸던 말은 전혀 근거 없는 놀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선배는 이 사실을 알고 그랬을까?

삼국지 속 영웅들의 수염들

수염을 기르게 되면서 수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수염은 현재에도 있지만 역사 속에도 수염은 있었다. 특히 삼국지 속 많은 영웅호걸들의 수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삼국지만큼 긴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도 드물다. 사람들이 삼국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수천 년 전 이야기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많은 남성들은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로 의형제를 맺고 그 의리를 지키며 촉한(蜀漢)을 세워 야망을 달성하는 과정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삼국지 속 인물들의 수염을 살펴보면 시대를 같이 살아 보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의 성향과 삶에 대한 자세 등을 알 수 있다. 작가가 그 사람들의 성향에 맞추어 수염을 형상화 했는지 아니면 원래 수염의 형태와 그 사람의 성향이 연관되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부드럽고 유약해 보이지만 덕을 부르는 유비 수염

먼저 도원결의 삼형제의 맏형,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초대 군주 유비의 수염에 대해 알아 보자. 유비는 수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실제 많은 삼국지 번역서들에 그려진 유비의 인물상은 수염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몇 가닥 붙어 있지 않다.

돌아가신 고우영 화백은 유비 평가에 야박했는데 만화삼국지에서는 '쪼다 유비'로 표현하며 간신처럼 달랑 세 가닥 수염만 그려 놓았다. 황석영 번역본 삼국지에서도 유비는 그 다지 많지 않은 수염을 달고 나온다. 그 당시 수염이 적다는 것은 사내다움의 부족으로 비쳐지던 때라 유비는 그것이 콤플렉스였으리라. 이를 덮어 줄 유비의 무기가 바로 덕을 쌓아 베푸는 것이었다. 유비는 자가 현덕(玄德)이다. 이름에서 보듯이 유비하면 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유비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바로 이 덕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과 용인술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유비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대단하였으며 유비와 가까이 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인간성에 매료되었고 백성들도 그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한다. 유비 자신은 비록 조조에 비해 실력이 뒤졌지만 주변에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 쟁쟁한 조력자들과 함께 강력한 조조와 대적할 수 있었다.

실제 정사 삼국지에도 유비의 인물평은 "임기응변과 재략이 조조에 미치지 못하였다"라고 나와 있다 한다. 본인 스스로의 역량은 부족했지만 덕으로 수많은 조력자를 만들고 그들의 도움으로 군주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이런 면으로 볼 때 털이 많지 않고 간결한 수염을 가진 이는 온순하고 덕이 많은 사람의 인상을 가졌다고 봐야 할 듯 하다. 우리도 이런 군주가 있었으면 좋겠다.

용맹과 의리의 상징 관우의 수염

의리와 용맹함의 대명사이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중국인들에게 추앙 받고 있는 관우의 수염에 대해 알아보자. 관우는 도원결의 삼형제 중 둘째이며 그의 자는 운장(雲長)이다. 삼국지에서 관우는 '대추빛처럼 붉은 얼굴과 키가 9척(약 2m7cm), 수염 길이가 2자(약 46cm)이며, 기름을 바른 듯한 입술, 붉은 봉황의 눈, 누에가 누운 듯한 눈썹' 등의 풍모로 묘사된다.

특히 그의 트레이트 마크는 길게 자라 쭉 뻗은 아름다운 수염이다. 이같이 관우 하면 청룡언월도, 적토마와 함께 멋진 수염을 빠뜨릴 수 없다. 따라서 그를 미염공(美髥公)으로도 부른다. 이런 용모를 가진 관우는 용맹함과 충의, 의리로 대표된다. 일단 관우의 얼굴이 붉은 대추빛으로 묘사된 것부터가 충의의 상징이다. 중국에서 빨간색은 충의(중국인은 일단 붉은 색을 좋아함)를 나타낸다. 그가 타는 말도 붉은 적토마이다. 여기에 미염공으로 불리게 한 곧고 수려한 수염은 지조와 의리 있는 그의 품성을 보여주는 키포인트다.

'의리를 돌보 듯 하고 배신을 밥 먹 듯 하던 혹독한 난세에 탁현에서 돗자리를 짜던 유비를 만나 도원결의로 의형제를 맺은 후 황건적의 난 이후로 쭉 아우 장비와 함께 군신의 관계를 뛰어넘어 평생 유비와의 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관우에 대한 한 줄 평이다. 시원하고 풍성하게 길게 아래로 뻗은 수염을 보거든 관우의 충의, 용맹, 의리를 생각하라. 의리 없고 비겁이 판치는 이 시대에 쭉쭉빵빵 관우의 수염이 더욱 그리워 진다.

호탕한 대장부 장비의 호랑이 수염

우락부락, 다혈질, 사고뭉치, 호탕한 대장부 이미지로 표현 되는 장비의 수염에 대해 알아보자. 장비의 자는 익덕(益德)이다. 장비는 누구보다 용감무쌍한 맹장으로 성격이 매우 급하고 과격한 성격이었으며, 술을 무척 좋아하고 싸움을 즐겼다. 요즘으로 치자면 마초 냄새 물씬 풍기는 사내대장부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삼국지연의>는 장비를 '키가 팔척(약 1m84cm)에 표범 같은 머리, 번쩍이는 눈, 근육질의 아래턱, 호랑이 같은 수염에다, 목소리는 우레와 같고 힘은 거친 말과 같다'고 묘사했다.

장비의 수염은 호랑이 수염이다. 그의 용맹하고 과격하고 불 같은 성격을 표현하는 수염이다. 관우의 수염이 잘 뻗은 미남형이라면 장비의 수염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맹수이다. 황석영 번역본 <삼국지>에서도 장비상을 보면 길들여지지 않은 한 마리 사자를 보는 것과 같다. 장비의 성격처럼 수염도 거칠고 자유분방 하다. 장비의 수염은 한마디로 정돈되지 않은 터프함이 물씬 풍기는 숫컷 그대로의 수염이다. 요즘 '의리'로 잘 나가는 김보성씨가 길렀으면 좋을 수염 같다. 장비와 같이 진짜 터프함과 의리가 필요한 시대이다.

사실 삼국지에 묘사된 인물상은 실제 보다 많이 과장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수염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일정부분 담아 형성화 했던 이유는 수염이 가진 이미지가 그 사람의 성향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극을 보면 그가 맡은 배역에 따라 수염분장으로 그 사람의 역할을 일정부분 표현하고 있다. 왕이나 장군의 배역에는 풍성하고 곧게 아래로 뻗은 멋진 수염을, 간신이나 야비한 인물로 그려지는 배우는 듬성듬성 많지 않은 수염을, 산적이나 시정 잡배들은 장비같이 사방팔방 뻗친 더부룩한 수염을 달고 나온다. 그 수염을 통해 그 배우가 맡은 역할을 추정하고, 극에 더 몰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격이나 품성에 따라 수염의 모양새가 결정 되는 것일까? 아니면 수염의 모양새에 따라 사람의 성향이 쫓아가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혹시 어떤 수염의 형태든 그런 수염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 놓은 최초의 이미지가 굳어져 후세 사람들은 수염의 형태에 따라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일까? 나는 제일 후자라 생각한다.

같은 수염 다른 삶, 히틀러와 채플린

코밑 인중에 달려 있는 굵은 칫솔수염을 보면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간 두 사람이 떠오른다. 한 명은 2차 대전의 전범, 유대인 학살, 잔인한 독재자며 인류역사의 큰 범죄자 아돌프 히틀러이고 또 한 사람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희극배우인 찰리 채플린이다.

코 밑 인중의 칫솔수염을 보면 우리는 독재자의 이미지와 희극배우의 웃음을 떠올린다. 사실 채플린 수염은 그가 히틀러를 희화하기 위해 콧수염을 달고 나왔던 것이기 때문에 원래 히틀러 콧수염이다. 다만 채플린이 달아 희극배우를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 하나를 더 갖게 해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콧수염 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에 김흥국씨와 노홍철씨가 있다. 자신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기르는 것이겠지만 그 작전은 확실히 성공한 작전이다. 콧수염하면 김흥국, 노홍철이 일단 떠오르니까 말이다.

 히틀러와 채플린
 히틀러와 채플린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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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수염과 그 사람의 이미지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 이미지라는 것도 채플린처럼 바뀔 수 있다. 수염은 신체의 일부인 털일 뿐이지 그 사람 성향을 모두 대변하지 않는다. 간신 수염을 달았다고 해서 다 간신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을 보면 간신 같이 생긴 사람이 간신 짓을 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 수염처럼 이미 굳어진 이미지대로 살아 가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잘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지에 갇힌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생각해 보자. 내가 오늘 살아갈 인생이 곧 내 수염의 이미지를 정한다. 애초 굳어진 수염의 이미지대로 살아 갈 것인가? 아니면 살아가는 내 삶대로 수염의 이미지를 만들것인가?

덧붙이는 글 | ※지난번 턱수염에 대한 글에 주변에서 많은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응원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몇몇 분들이 주신 의견도 질문이라 생각하고 답변드리면 글의 취지는 수염을 무조건 기르자는 것이 아니라 기르든 안 기르든 자유의사이고 그것이 사회적 편견을 갖게 해서는 안 되다는 취지였습니다. 또한 수염을 기르는 행위 자체가 무조건 자유를 상징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혹시 제가 표현력이 부족해 그런 의미로 받아 들이셨다면 그런 의도가 아니였다는점 밝혀둡니다.



#턱수염#삼국지#유비 관우 장비#히틀러 콧수염#채플린 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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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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