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중국 음식을 좋아했다. 꼭 이사하는 날이 아니더라도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자주 먹곤 했다. 식당에 가서 먹는 것 보다는 배달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학생들이 자주 찾아올 때마다 늘 중국 음식을 시켜 주었다. 그래서 집에는 항상 중국집 쿠폰이 많이 있었다. 쿠폰 50장을 모으면 탕수육 무료 서비스를 받았을 수 있었다. 그런데, 쿠폰에는 이런 글씨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말 사용 불가. 주문 전 쿠폰 사용 알릴 것.'한 번은 탕수육을 주문했는데, 쿠폰을 사용할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배달하는 청년에게 탕수육 값 대신에 쿠폰을 내밀었다니,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다음부터는 주문 전에 말씀해 주세요"라는 차가운 대답을 들어야 했다. 이 일이 거의 10년 전이었는데,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11일은 미국의 유명한 치킨 버거 브랜드인 칙필래(Chick-fil-A)에서 '소 감사 날'(Cow appreciation day)로 지키는 날이다. 광고 효과와 일종의 고객을 향한 서비스의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날은 소(cow)처럼 꾸미고 매장을 방문하면, 모든 음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
8살과 4살 아이들을 둔 나는 아내의 미술 실력을 발휘해서 소 모양의 가면을 만들고, 하얀색 티에 동그란 검은색 도화지를 붙이고, 꼬리도 만들었다. 4식구가 오후 6시쯤 매장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는 갖가지 모양으로 소 분장을 한 사람들이 버거(burger)를 먹고 있었다.
쭈뼛거리며 정말 공짜냐고, 이정도 꾸민 것으로도 괜찮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Of course"였다. 아이들과 함께 버거와 콜라, 감자튀김을 하나씩 주문해 놓고, 다른 손님들은 어떤 분장을 했는지 살펴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 귀 모양을 머리에 붙이고, 몸에 검은 반점 몇개 붙인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검은 반점 두 세개만 몸에 붙인 채 무료로 버거를 주문하고 있었다. 커다란 하얀색 비닐봉투를 뒤집어 쓰고, 매직으로 검은 반점을 듬성 듬성 그린 사람도 있었다. 매장 홈페이지에는 직원들이 분장의 여부를 판단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직원 누구도 "당신은 분장이 너무 성의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미소를 가득 머금은 얼굴로 허술한 분장을 한 고객들의 무료 주문을 받고 있었다.
미국 생활에 조금씩 젖어 들면서, 한국의 배달 문화에는 엄지를 치켜들며 칭찬하고 싶지만, 쿠폰 사용이나 A/S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쿠폰 사용에도 제한이 많고, 서로 다른 2개의 쿠폰 사용도 쉽지 않고, 하자가 있는 제품의 수리나 반품도 쉽지 않은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했던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이익을 취하는 작은 가게부터 큰 기업까지, 작은 것을 아까워 하면 결국엔 소비자를 잃게 될 것이다. 꼭 박리다매(薄利多賣)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얻는 모든 이윤이 소비자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